'졸업' 정려원, 서서히 스며드는 마성의 쌤

머니투데이 조성경(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5.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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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을 부르는 24년차 베테랑의 우아한 치열함

사진=tvN사진=tvN


한해 한해가 전쟁과도 같다. 입시가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든 치열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대한민국 사교육 일번지라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목격되는 입시 전쟁은 드라마로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그런 전쟁통에서도 여유롭게 실력을 과시하는 베테랑이 있기 마련이다. tvN 주말극 ‘졸업’(극본 박경화, 연출 안판석)의 정려원이 그렇다.



게다가 극중 대치동 스타강사 서혜진으로 등장하는 정려원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아한 백조의 몸짓을 감상하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롭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알아주는 국어 강사로 살아가는 서혜진의 하루하루가 물 위에서는 유려한 자태를 뽐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을 젓고 있는 백조의 몸짓과도 같은 것이다.

서혜진은 자신이 몸담은 ‘대치체이스’의 대표 얼굴로 대치동 버스 정류장 광고 배너를 점령하고 있다.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인근 찬영고 내신 국어 만점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출중한 실력으로 학원의 에이스가 된 덕분이다. 정려원은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들에서 법복과 의사가운을 오가며 지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경험이 풍부해 이번에도 차분한 능력자로 활약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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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솜씨도 남다르다. 학원 상담 실장(길혜연)의 말마따나 학비를 벌기 위해 대치동에 발을 들인 대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가에서 잔뼈가 굵은 까닭이다. 그 덕에 학생과 학부형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학원 강사가 섣불리 넘기 어려운 문턱인 학교에 찾아가서도 노련함을 빛낼 수 있었다.

서혜진이 찬영고 국어 교사 표상섭(김송일)을 찾아가 시험 문제의 오류를 이야기하고 재시험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해당 에피소드는 결국 논란을 일으키며 증등교사노조 등의 반발을 샀지만, 서혜진의 치열한 삶을 하이라이트 하려는 제작진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평상심을 잃지 않고 조곤조곤 자기 할 말 다 하던 서혜진이 교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휘청거리며 벽에 기대 숨을 가다듬는 모습으로 악착같은 서혜진의 진면모를 알게 했다.


그런 서혜진이 최근에는 경쟁 학원인 ‘최선국어’에서 꽉 잡고 있는 희연고의 내신반도 신설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나섰다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주도면밀하게 희연고 무료 강의를 준비했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 ‘최선국어’에서 특강을 잡으면서 참석한 학생이 단 한 명뿐이었던 것. 대대적인 홍보로 성공을 기대했던 무료 강의가 대참패로 귀결되려는 찰나였다.

전의를 상실한 나머지 강의를 포기할 뻔한 서혜진은 신입 강사이자 공동 강의에 나서기로 한 이준호(위하준)의 설득에 심기일전할 수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뒤 자신의 매력을 한껏 장전하고 이날의 유일한 학생인 이시우(차강윤)의 마음을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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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 전략 수업으로 학생을 영업하려던 서혜진이 태세 전환을 해 공감을 일으키는 수업으로 이시우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전투태세일 때조차 부드러운 강인함이 장점이었던 서혜진이 전쟁터에서의 긴장감을 털어내자 편안하고 여유로운 즐거움이 수업에 물들며 이시우의 마음이 서혜진에게로 기울게 된 것이다. 이준호가 서혜진의 옛 제자이던 시절 좋아했던, 서혜진만의 소탈한 매력이 다시금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드라마 내내 긴장의 고삐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순간순간의 예민한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를 정려원이 섬세하고 노련하게 연기하며 드라마에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맹렬한 대치동 학원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서혜진의 일상을 정려원이 세련되면서도 정제된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우아한 옷매무새며 지적이면서도 다정한 말투에 이르기까지 정려원이 그려내는 서혜진의 매력이 팬심을 끌어모으며 드라마에 푹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의 전개에서 이준호가 서혜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고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는 상황이다. 그만큼 정려원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졸업’이다.

애석하게도 드라마가 공교육 왜곡이니 음주운전이니 하는 논란들을 연달아 일으켜 몸을 사려야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아함과 치열함이 수시로 교차하는 서혜진을 향한 응원의 마음이 사그라드는 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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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걸그룹 샤크라로 데뷔한 이래 지금껏 연예계에서 무수히 많은 풍파를 견디고 단련해온 정려원이니 이번에도 극중 서혜진처럼 고상하게 미소 지으며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하는 믿음도 있다. 총 16부작 중 4회까지밖에 방영하지 않아 아직 남은 회차가 많은 만큼 논란을 극복할 시간도 충분하다.

일할 때는 전장에 나선 베테랑 같은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하는 서혜진이지만, 연애할 때는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울까 하는 기대도 높아진다. 정려원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표현처럼 무해한 다정함으로 사람을 녹이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정려원이 올해로 연예계 데뷔 24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대치동 14년차 일타강사 서혜진도 범접하기 어려운 베테랑이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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