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1vs뷰티풀 너드, 래퍼와 유튜버의 디스전이 품은 의미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5.0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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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H-1인스타그램, 뷰티풀 너드/사진=pH-1인스타그램, 뷰티풀 너드


한국 힙합신에 오랜만에 재미있는 디스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디스전을 펼치는 대상이 흥미롭다. 한쪽은 분명 래퍼지만, 다른 한쪽은 래퍼라고 완벽히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래퍼라고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한쪽으로 인해 이번 디스전이 더욱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pH-1은 지난 5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BEAUTIFUL'이라는 곡을 공개했다. 이는 힙합크루 맨스티어를 직접적으로 디스한 곡이다.



pH-1이 디스전에 불을 지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맨스 티어라는 콘텐츠를 알아야 한다. 맨스 티어는 유튜버 뷰티풀 너드의 콘텐츠 '힙합다큐: 언더그라운드'에 등장하는 부캐로 'MZ를 찾아서'·'미식한 고독가' 등과 함께 이들을 대표하는 콘텐츠 중 하나다.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래퍼들의 행태를 패러디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맨스 티어 콘텐츠는 계속했고 발전했고, 이들은 정식으로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다. 최근에 발매한 'AK-47'은 허황된 가사와 의외의 음악성으로 1000만 조회수를 눈 앞에 두며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뷰티풀 너드 유튜브/사진=뷰티풀 너드 유튜브
그렇다고 pH-1이 뷰티풀 너드를 저격한 이유는 단순히 유튜버가 래퍼 흉내를 냈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뷰티풀 너드 외에도 다른 많은 유튜버들이 콘텐츠를 통해 랩과 힙합에 도전하고 있기에 이는 그렇게 색다른 부분이 아니다.

pH-1이 지적한 부분은 이들의 콘텐츠가 풍자를 빙자한 조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적절한 풍자는 힙합신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pH-1이 느끼기에 적절하다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디스곡을 발표한 것이다.


뷰티풀 너드는 바로 다음날인 6일, 맞디스 곡으로 대응했다. 맨스 티어 멤버 중 한명인 케이셉 라마의 이름으로 공개된 맞디스곡 'hp-1'은 pH-1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디스뿐만 아니라 힙합신 자체에 대한 풍자가 가득 담겨있었다.

/사진=뷰티풀 너드 유튜브/사진=뷰티풀 너드 유튜브
양측의 디스곡이 공개된 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힙합과 크게 접점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뷰티풀 너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다양한 대상을 풍자해온 뷰티풀 너드가 힙합이라고 해서 예외를 둘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디스곡에 맞디스곡으로 대응한 이들의 태도 역시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뷰티풀 너드는 SNS 스토리를 통해 설전을 주고받는 일부 래퍼와 달리 음악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 모습이 오히려 힙합에 가깝고 힙합의 한 문화를 존중했다는 것이다.

디스곡의 내용 역시 힙합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는 평가다. 디스곡 후반부에서 '자신의 디스 소재를 알려주겠다'며 늘어놓은 여러 이야기는 실제로 일부 래퍼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안되면 니 주변 한번 봐바'라는 마지막 가사는 자신들을 향한 디스가 결국은 pH-1 주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통해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뷰티풀 너드가 힙합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이미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비하된 힙합을 그저 보여줄 뿐이라는 반응은 현재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pH-1 유튜브/사진=pH-1 유튜브
그러나 pH-1의 문제 제기 역시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뷰티풀 너드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인물을 풍자하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모든 래퍼가 허세와 비윤리적 행동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보여주는 뷰티풀 너드의 행태는 힙합이라는 문화 자체를 매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풍자는 비판이지만 조롱은 비난이다. 최근 공개된 몇몇 콘텐츠에서는 풍자를 넘어 조롱의 의도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맨스 티어의 다양한 콘텐츠가 풍자의 위치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확실하게 꼬집어서 보여줘야 한다.

pH-1에 대한 맞디스곡도 자세히 살펴보면 pH-1이라는 메신저를 향한 공격으로 시작한다.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가 미국 국적을 보유한 pH-1을 향해 '검머외'라는 혐오성 가사를 담고 병역과 인종 정체성을 언급한 것들이 과연 적절한 풍자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스스로의 가사처럼 반응해도 긁혔냐는 반응이 돌아오고 가만히 있어도 긁혔냐는 반응이 돌아오는 상황에서 pH-1은 반응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성숙한 대화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유튜버와 래퍼의 맞디스전은 성숙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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