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리메이크 총장선거

서울대 법학대학원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9.10 17:12
총장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던 인사가 성추행 문제로 사퇴한 후 우여곡절 끝에 총장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하고 서울대가 지난 6일 후보 공모공고를 냈다.

총장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생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먼저, 사퇴한 후보 자신이 문제였다. 본인도 사죄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그게 다라면 차순위 순서로 총장을 뽑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후보를 선출한 결정 과정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아예 선출 제도 자체가 잘못 되었던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중이 컸던 후보 2인이 빠지고, 새로운 후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실시하는 재선거이기 때문에 ‘리메이크’ 수준이 될 것 같다. 잠재적 후보들에 대해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교수, 직원, 학생, 이사회,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 모두 구성원 변동이 거의 없어 기이한 선거가 진행되게 된다. 같은 수험생이 같은 규칙에 따라 지난번 시험문제로 재시험을 보는 꼴이다. 채점이 잘 못 되어서 다시 하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채점자가 같다. 수험생, 규칙, 시험문제, 채점자 다 같은데 만약 결과가 달라지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래서 이번에는 ‘검증’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총추위는 고위공직후보자 7대 비리에 준해 면밀한 검증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부정행위, 음주운전, 성관련 범죄 등이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가장 역량이 뛰어나 보이고 실적이 많고 향후 총장으로서 학교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가장 흠이 없는 후보를 뽑게 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지난 선거에서는 일부 구성원들이 세상이 바뀐 것, 정확히 말하면 정상화 되어 가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정도 문제로는” 유능하다고 평가받은 후보를 탈락시키기 곤란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았기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7대 비리 전력자들이 즐비하지만 결국 대개 다 임명되는 현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서 엄중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되는 것은 옳지 않다. 검증은 탈락시키기 위한 것이지 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문제없다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남의 흠을 들추는 데 역점을 두는 후보는 잘 보아야 한다. 다른 면에서는 자신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검증도 제보가 들어오는 대로 다 공개해서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방식이면 총추위가 필요 없다. 책임 있게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후보들에게 바란다.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일단 응모하면 검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자체 결론 냈다는 뜻이다. 만일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후보가 나온다면 그 후보는 결국 서울대와 구성원들을 능멸하고 선거의 초점도 흐려놓은 것이 된다. 영구적으로 퇴출될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후보들은 비전과 발전계획, 그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하고 구성원들은 그 점을 평가해야 한다.

만일 또 한 번 파행이 온다면 그때 서울대는 자율성을 자진 반납한 것이다. 대학의 자치가 아무리 지고의 이념이라 해도 자치 능력이 없는 바에야 소용이 없다. 스스로 총장도 선출 못하는 대학에는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보는 영화가 가끔 볼만한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재미없지만 지난 번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보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 서울대 구성원들은 이번 리메이크 방송을 주의 깊게 볼 것이다. 시청자가 참여해서 결말을 바꿀 수 있는 방송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사회를 종종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산다. 온갖 인간관계와 이해관계에 엮여 헤어나지를 못한다. 학교도 작은 사회라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구성원들이 냉정하고 원칙적으로만 행동할 기회(핑계)가 된다. 씁쓸하지만 그렇다. 서울대 모든 구성원들이 사심과 감정을 뒤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다.

이 글은 내 주위 많은 교수들의 뜻을 모아 작성된 것임을 밝혀 둔다.

베스트 클릭

  1. 1 이재용·최태원 'K2 바람막이' 입고 백두산 오른 사연
  2. 2 '젠틀맨' 이재용 "가방은 제가…"
  3. 3 [2018평양]'디카왕' 최태원 회장, 그 사진 좀 보여주세요
  4. 4 송이버섯 2톤, 국내 가격으로 따져보니 '최대 17억원'
  5. 5 김정은 '송이버섯' 2톤 선물…文대통령, 이산가족에게 나눠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