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후배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영화에서만 봤다. 땅콩이나 조개를 먹고 두드러기가 나고 호흡이 가빠지는 경우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학계에 따르면 식품 알레르기는 성인 100명 중 약 2명이 앓는 꽤 흔한 질환이다. 유병률(인구 집단 중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비율)이 5~8%에 달하는 유아보다는 낮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고 지냈던 알레르기 환자들의 고충은 무엇일까. 일주일 동안 식품 알레르기를 체험해봤다. 성인 알레르기 환자 비중이 높은 견과류, 해산물(생선, 조개류), 계란을 골랐다.
━
먹는 줄도 모르고 먹었다━
변화는 체험 첫날부터 찾아왔다. 한식, 중식, 양식을 떠올리며 점심 메뉴를 고르던 순간은 못 먹는 음식을 지우는 과정으로 변했다. A 중국집에는 짜장면에 새우가 들어가니 안되고, B 타이 음식점 음식에는 땅콩버터가 들어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결국 한식 음식점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없이 먹은 닭죽에는 계란물이 풀어져 있었다. 만약 기자가 식품 알레르기를 앓고 있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함께 있던 식품 알레르기를 앓고 있던 후배는 "저는 예전에 모르고 먹었다가 기절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
'알레르기=편식'?…빼달라 하니 '눈치'━
체험 4일 차, 인터넷에서 반죽에 계란이 들어있지 않은 가게를 검색한 뒤 찾아갔다. 닭강정을 주문한 뒤 따끈하게 튀겨진 치킨이 상자에 담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기다릴 새도 없이 닭강정 위에 땅콩 조각을 뿌렸다. 놀란 마음에 땅콩을 빼 달라고 했지만 주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빼 달라는 부탁에 귀찮은 듯한 모습이었다.
'환자'로서 당연한 요구였지만 오히려 '나를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차라리 다른 곳을 갈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식품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알레르기 환자에 대한 부족한 배려와 인식은 체험을 힘들게 했다.
━
질병 만큼 힘든 '무관심'…알레르기 환자 인식 높여야━
지난 7일을 끝으로 알레르기 환자 체험을 마쳤다. 많은 음식을 포기했다. 영양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은 번거로웠다. 하나씩 따지다보니 식사를 건너 뛰고 싶은 적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알레르기 환자에 대한 부족한 배려였다. 음식점에서 특정 음식을 빼 달라고 부탁할 땐 유별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돌아왔다. 아예 영양성분이 표기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흔했다.
체험을 시작한 계기가 된 후배는 "군대에서 알레르기가 일어나 온 몸에 발진이 생겼는데도 근무를 내보낸 지휘관도 있었다"며 "알레르기를 앓는 사람들 중에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형 음식점은 그나마 성분표시가 된 경우가 많지만, 작은 곳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며 "최소한 유발 물질이 포함됐는지 여부라도 게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행 알레르기 유발 물질 표시제도 대상에는 점포수 100개 이하 소규모 프랜차이즈나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아닌 업소는 제외되어 있다. 또한 '포장된 식품'이 아닐 경우 표시 대상에서 빠진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유럽연합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혼입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표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