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먹어서 이기자"… 여전한 알레르기 인식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9.09 05:03

[알러지를 알려주마-③]식품 알레르기, 아나필락시스 쇼크 유발시 생명도 위험하지만… 법 미비에 "유난떤다" "계속 먹다보면 낫는다" 인식도 부족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픽사베이
#2013년 4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 중이던 A군이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원인은 급식으로 나온 카레. A군은 평소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카레 속 우유가 문제가 됐다. 카레에는 우유가 30% 넘게 들어가있었다. A군은 호흡곤란과 저혈압으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숨졌다.

#2016년 유명 사업가 겸 엔터테이너 B씨는 방송에서 한 말로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낮다며 입길에 올랐다. 그는 맛있는 물회를 맛본 뒤 "회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맛"이라고 평하고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 회사에 닭을 못 먹는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은 '닭고기를 먹으면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래서 한 선술집에 그 직원을 초대해 닭고기 완자 쯔꾸네를 주문하고 돼지고기라 말한 뒤 먹였다. 그랬더니 한 개를 먹고 두 개를 더 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닭고기라는 건 나중에 알려줬다"며 웃었다.

식품 알레르기 질환을 보이는 이들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품 알레르기는 작게는 두드러기, 습진, 구토, 복통부터 심하게는 호흡곤란이나 중증 알레르기 반응(anaphylaxis·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목숨을 잃게한다. 하지만 인식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알레르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496만명이다. 국민 3~4 중 한 명은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알레르기 환자 발생률은 1980년대 초반 약 5%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후반 약 15%로 증가했고 2000년대 20% 이상으로 늘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생명 위협까지 오는 식품 알레르기… 법에도 허점
알레르기 환자가 늘면서 덩달아 알레르기 유발 식품에 반응을 보이는 '식품 알레르기 환자'도 점점 느는 추세지만 이들을 보호해줘야할 법에는 구멍이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5월30일부터 제과제빵·아이스크림·햄버거·피자 등 어린이 기호식품을 판매하는 '점포 수 100개 이상'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알레르기 유발 식품 표시를 의무화했다. 난류, 우유, 메밀, 땅콩, 대두, 밀, 고등어, 게, 새우, 돼지고기, 복숭아, 토마토, 아황산류, 호두, 닭고기, 쇠고기, 오징어, 조개류 총 21종 등 알레르기 물질을 포함하는 원재료를 사용할 때 알레르기 유발 식품임을 표시해 식품 알레르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대상은 30개 업체 1만5000개.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가서 케익 등 디저트를 자주 먹는 카페 프랜차이즈나 학교앞 분식점 등 소규모 업체는 빠져있다는 점에서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어린이 기호식품 업소에만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 의무가 주어지면서, 성인들이 자주가는 식당은 의무에서 제외됐다는 점도 비판받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식품 알레르기 관련 위해사고 1853건 중 10세 미만 영유아‧어린이 대상자는 26.6%, 성인 피해자는 50대 13.98%, 30대 13.27%, 40대 12.63% 순을 차지했다. 즉 20대 이상 성인 피해자만 전체 피해의 60.98%를 차지했는데, 이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표시 의무가 없어 피해를 더욱 키운다는 지적이다.
/사진=한국소비자원
어린이 대상 및 일반 다소비 식품 총 120개 제품의 알레르기 표시도 부족하단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소비자원은 업체들이 '알레르기 표시'를 오히려 면책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3월 한국소비자원이 중 유통 중인 초콜릿류·우유류·과자류(유탕처리제품)·어린이음료 등 각 30종 등 총 120개 식품의 알레르기 표시실태를 조사한 결과, 주의·환기 표시 제품이 75.8%인 91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어린이음료 30개 중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원재료로 사용한 제품은 8개(26.7%)에 불과했으나, 28개(93.3%) 제품은 별도의 주의·환기 표시를 통해 다양한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많은 제품에 주의·환기 표시가 돼있는 경우 해당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고 식품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 등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가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일종의 면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힘든 건 "유난 떤다"는 인식
하지만 식품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제도적 미비 보다도 사람들의 부족한 인식이 더 힘든 장벽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 한모씨(25)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데, 명절 때 이를 만지지 않는 내게 친척 어른들이 '요즘 어린 사람들은 민감하다'며 유난떤다는 식으로 말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닿기만 해도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주의했을 뿐인데 눈총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은 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극소량 섭취하거나 유발 음식이 이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세브란스 병원 알레르기-천식센터는 "식품 알레르기의 대부분은 음식물 섭취를 통해 나타나지만 식품항원의 흡입을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분말 흡입, 김이나 연기 흡입, 혹은 냄새를 맡음으로 인해서도 호흡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는 미국인 C씨도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큰 일이 날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조개·새우 등 해산물과 땅콩·마카다미아 등 견과류 음식을 먹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전에 한국 국적기 항공사에 알레르기 음식을 주의해달라고 신청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수차례 확인을 한 뒤 기내식을 먹던 중 음식 위에 뿌려진 게 마카다미아 가루라는 걸 알았다. 이후에도 매 끼니마다 알레르기 유발 식재료가 들어간 기내식을 받았다. 그대로 섭취했더라면 자칫 목숨까지 위험할 수도 있는데 큰 일로 생각하지 않는듯한 승무원의 태도에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유럽 거주 한국인 D씨는 "한국에는 그냥 알레르기 음식을 먹으면, 결국 알레르기를 신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이 알레르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큰 일이라도 날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알레르기 인식이 낮은 집단에서는 알레르기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지는 만큼 국가적 차원의 알레르기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7월 호주 방송사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는 아시안들의 알레르기 인식 부족에 염려를 나타내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SBS는 "호주에서 알레르기로 사망하는 아이들의 50% 이상이 아시아계다"라고 지적했다. SBS는 "아시아 이민자 사회의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한씨도 "당국이 공익 광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레르기가 무엇인지, 얼마나 위험한지, 왜 이들을 배려해야하는지 등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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