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이 남긴 예금, 왜 못 찾나요?"

머니투데이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 2018.09.04 05:15

[the L] 이충윤 변호사의 '금융소비자를 지키는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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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A씨의 남편인 B씨가 사망해 C 은행에 B씨의 예금을 찾으러 갔더니, 외국에 취업한 A씨의 둘째 아들 D가 동의하지 않으면 B씨의 예금을 1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둘째 아들 D의 법정상속분을 제외한 나머지 예금만 반환해줄 것을 청구했으나, C 은행은 공동상속인 전원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지급할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결국 A씨는 C 은행을 상대로 재판을 불사하고도 반년이 훌쩍 지난 후에나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아픔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생활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 병원비에 아이들 양육비, 각종 세금 등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급하게 상속재산이 필요한 경우가 시시각각 발생한다. 그런데 가족 중 일부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이런 일에 봉착하는 것이다.

◇ 은행이 상속재산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

은행은 고객과의 예금계약상 원칙적으로 고객이 원할 때 고객에게 예금을 반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재판의 결과 또한 은행이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왜 은행은 지급하지 않는 것일까?

망인(법적으로는 피상속인이라 한다)의 상속재산은 상속개시 시점 피상속인의 사망시점에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 전부에게 상속되는데, 공동상속인 간에도 결국 그 공유하는 상속재산을 분할해야 한다.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방법에는 1)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상속재산의 분할방법을 정하거나(지정분할), 2) 공동상속인 전원이 분할에 합의(협의분할)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3)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정하는 방법(심판분할) 등이 있다.

제3자로서 상속재산에 대한 지급 방법을 알 방법이 없는 은행은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후, 우선 피상속인의 계좌를 사고계좌로 등록하고 지급을 정지한다. 이 때 은행이 유언장, 가정법원의 심판결정문이나 공증인이 작성한 분할협의서 등의 공식 문서를 확인할 수 있다면 사고 계좌를 해제하고 그에 따라 공동상속인에게 분할 지급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공식 문서가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은행은 실무적으로 분할 지급에 대한 공동상속인 전원의 합치된 의사를 확인하고자 서면으로 공동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한 명의 상속인이라도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은행은 그 상속인으로부터 이중지급 청구나 손해배상 청구를 받는 등 예측할 수 없는 공동상속인 간의 분쟁에 휘말리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 법원에서는 어떻게 판단할까?

이러한 은행의 업무처리는 1) 공동상속인의 예금채권 행사를 침해 내지 방해하고, 2) 공동상속인으로 하여금 은행을 상대로 예금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시간적·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은행의 입장에서도 3) 예금 지급을 거절당한 공동상속인으로부터 은행의 편의만을 도모한 실무 운용이라는 민원제기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법원에 따르면, 예금채권 등 금전채권은 상속으로 인하여 당연히 분할되어 상속인들에게 각자 귀속되는 것으로서 상속재산 분할 대상 자체가 아니다(대법원 2007. 3. 9. 선고 2006스88결정).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유언이나 상속인간 분할협의 등이 없는 경우, 상속예금은 상속개시 시점부터 이미 공동상속인 각각의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 각자의 재산이므로, 공동상속인 각자가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법원은 “피상속인 명의의 예금채권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당연히 공동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분에 따라 귀속되는 것이고, 은행들이 주장하는 유언, 상속포기, 상속재산 분할 협의 등의 사유는 은행 내부의 업무지침 내지 처리절차에 불과하여 공동상속인들의 상속예금 지급청구권의 행사를 저지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0. 22. 선고 2015가합524348 판결) 은행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결국, 공동상속인에게 법리상으로는 상당히 유리한 싸움인 것이다.



◇ 공동상속인들이 취해야 할 조치



우선 공동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을 정확히 파악해야 이후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피상속인의 사망신고 이후 금융감독원이 제공하는 상속인 금융거래 통합조회 시스템을 활용하면 조회신청일 기준으로 피상속인 명의의 모든 금융채권 및 채무 등을 효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상속재산을 정확히 확인했다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속재산 분할에 대해 공동상속인 전원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이 경우, 시중 은행들은 공동상속인 전원이 서명·날인한 지급청구서, 인감증명서 등의 증빙서류만 확보되면 특별한 이의제기 없이 지급청구서의 내용대로 상속예금을 분할 지급할 것이다.

그러나 상속재산 분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속예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법정상속분을 정확히 계산해 은행에 이에 대한 정식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이 때 자신의 법정상속분에 해당하는 지급 청구 금액, 지급청구일 등의 지급 청구 관련 사실을 잘 남겨놓는 것이 추후 진행 가능한 소송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은행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내용증명 등을 통해 정식지급을 청구했는데도 은행이 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소송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전통적인 예금이 아닌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의 경우에는 상속재산분할에 관한 위 법원의 판단이 그대로 적용가능한지,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환가 금액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 청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해당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피상속인과 은행 간의 계약에 해당하는 약관 조항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하여 효율적인 지급 전략을 구상해보는 것 또한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충윤 변호사는 서울대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유한) 주원에서 IT/블록체인 TF의 공동팀장을 맡아 핀테크, 정보보호 등의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NH투자증권, SK주식회사, AIP 특허법인·법률사무소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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