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온라인쇼핑할 때 편해", 현금카드 쓰는 평양 주민들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이학렬 기자, 한은정 기자, 주명호 기자, 전혜영 기자 | 2018.08.07 05:30

[북한속쏙알기(6)-금융](종합)

편집자주 | 북한에서는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은행에 계좌가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돈이 필요하면 ‘돈주’라 불리는 일종의 대부업자를 찾아야 한다. 반면 온라인 쇼핑이 등장하면서 충전식 현금카드를 이용한 전자결제는 늘고 있다.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은 없고 모바일 결제는 막 활성화하기 시작한 곳, 북한의 금융생활에 대해 살펴봤다.


북한에선 돈 필요하면 '돈주'를 찾는다



[북한속쏙알기(6)-금융]<1>돈주에게 금리 연 60~120%로 6개월 이내 대출

지난 7월 5일 오전 평양에서 한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보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뉴스1
북한에는 ‘은행’이란 이름이 붙은 기관은 여러 곳이지만 여·수신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조선중앙은행 하나뿐이다. 북한은 ‘인민이 벌어들인 돈은 인민을 위해 국가가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관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해방 직후 58개였던 금융기관을 조선중앙은행으로 통폐합하고 국가정책금융은 물론 기업과 개인 대상의 금융까지 모두 담당하도록 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조선중앙은행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돈을 맡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인출은 자유롭지 못해서다. 특히 1994년 극심한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과 여러 차례에 걸친 화폐개혁으로 조선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했다.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하려면 자산 전액을 조선중앙은행에 맡겨야 한다고 선전한 뒤 돈을 맡기면 인출은 극히 일부만 허용하거나 예금 만기를 무기한으로 늘려 사실상 주민들의 돈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은행에서 개인 대상의 대출은 아예 금지돼 있다. 기업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자금 공급능력에 한계가 있어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 정부는 기업대출 활성화를 위해 2004년과 2006년 각각 ‘중앙은행법’과 ‘상업은행법’을 제정해 조선중앙은행 ‘단일은행제도’에서 상업은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실제 설립돼 영업 중인 상업은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급한 일이 생겨 돈을 빌리거나 목돈이 생겨 자금을 운용하려 해도 마땅한 금융기관이 없다. 돈이 필요하면 직장에서 월급을 가불 받거나 암시장에서 고리를 부담하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2002년 한국은행의 탈북주민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사금융을 통해 돈을 빌린 가구는 전체의 30% 정도였다.

여윳돈이 생기면 집에 보관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저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경제’에서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극심한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은행은 점차 기능을 상실해 인민들에게는 ‘은행에는 돈을 맡겨도 찾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불가피하게 돈을 직접 집에 보관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1994년 이후 은행을 이용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 사금융은 돈주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돈주는 상업은행의 기본 업무인 대출, 송금, 환전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북한 내 지역별로 돈주의 기준이 다른데 평양 이북 지역에선 미화 1만 달러 이상, 평양 이남 지역에선 5000달러 이상 소유한 사람을 돈주로 본다. 다만 이는 2006년 조사로 현재는 돈주의 자산 규모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연구학회보에 따르면 돈주의 이자율은 2000년대 초 월 13~15% 수준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5~10% 수준으로 안정화됐다. 자금 유통이 원활해지고 리스크 역시 완화된 영향이다. 연 금리로 환산하면 평균 60~120% 수준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차등 적용된다는 점이다. 고위층 외화벌이 일꾼에 대한 이자율은 월 3%, 중규모 상인에게는 10%, 밀수꾼에게는 20~30%가 적용된다. 대출기간은 단기로 1~6개월 이내가 일반적이다.

여유자금을 월 평균 5% 내외로 빌린 다음 자금 수요자에게 2~3%포인트를 더 얹어 월 7% 내외의 이자로 빌려주는 대부 중개업도 성행한다. 이는 주로 리스크가 낮은 차주들이 대상이다. 대부 중개업자들은 원금 상환이 어려운 차주에게는 위협과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형태의 사금융 기관은 전당포다. 북한의 전당포는 단기자금을 공급하거나 돈주들이 저당물을 넘겨 원금을 회수하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당포는 북한 정부가 ‘전당포 관리 운영지침’을 바탕으로 관리하고 있어 사금융이지만 국가 통제를 받는다.

변휘 기자




북한 사금융 이끄는 '돈주', 그들은 누구인가



[북한속쏙알기(6)-금융]<2>신흥부유층, 대부업에서 주택 건설까지 다양한 사업

북한의 사금융 시장은 '돈주'라는 신흥부유층이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서 전주(錢主)라 불리는 사채업자와 비슷하지만 제도권 금융시장이 없는 북한에서는 사실상 민간 금융회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돈주는 북한 시장화를 이끌고 있는 집단으로 막강한 현금 동원능력을 가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5만~1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돈주는 24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돈주는 초창기에는 재일교포, 화교 중심이었다. 시장화 초기에 여유자금을 가질 수 있는 계층은 해외에서 달러를 가져올 수 있는 집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무역 및 외화벌이 일꾼, 밀수꾼, 탈북자 가족, 장마당 장사꾼, 노동당 간부 부인 등 돈주의 출신성분과 직업이 다양화되고 있다. 장마당 등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내에서 돈을 축적할 수 있는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돈주는 개인 대부업을 주된 사업으로 한다. 민간 은행이 없는 북한에서는 일반 사람이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돈 많은 돈주한테 찾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자본을 축적한 돈주는 중국 접경지역의 정보망을 활용해 환차익으로 이익을 거두기도 한다. 또 주택도 건설하고 무역회사도 운영한다. 평양의 랜드마크 거리인 '여명거리'의 대부분 빌딩도 돈주의 돈으로 지어졌다. 정부만 가질 수 있는 석탄기지를 자기 관리 아래에 둔 돈주도 생겼다.

돈주가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각종 이권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노동당 간부 등 정치세력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노동당 최고위 간부의 부인이 유명한 돈주일 정도로 정경유착이 심하다.

이에 돈주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을 야기하면서 계층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의 집중 및 독과점, 매점매석 등으로 체제 불안전성이 심화될 수 있다. 반면 돈주를 비롯한 사금융의 발달은 옛 사회주의국가들의 체계전환 초기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북한이 바뀔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학렬 기자




북한 은행은 통치자금 관리·무기금융이 주업무



[북한속쏙알기(6)-금융]<3>내각 및 노동당 산하 설립돼 주로 무역결제 기능

북한의 은행들은 정책 금융 및 기업 금융을 통해 주로 북한지도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이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개인금융을 위한 상업은행은 아직까지 설립되지 않았다.

북한에는 1959년 유일한 외화관리 기관으로 조선무역은행이 설립됐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경제가 내각이 관장하는 국가계획경제·인민경제와 노동당이 직접 관리하는 '김정일 궁정경제'로 분리되면서 외화관리시스템도 이원화돼 노동당 산하 특수단위의 자체 외환은행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조선무역은행 산하에는 조선광선은행과 조선금강은행이 있다. 조선광선은행은 행정적으로는 무역은행 소속이지만 맡은 역할과 자금관리는 무역은행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거래를 하는 모든 무역은행 거래자들로부터 의무적으로 3%의 납부금을 징수하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아왔다. 즉, 김씨 일가의 비자금 및 특수자금을 별도로 관리하는 은행으로 전해진다. 조선금강은행도 김경희가 맡던 노동당 경제정책검열부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며 조선광선은행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조선대성은행은 1978년 노동당 39호실 소속으로 창설됐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씨 일가의 통치자금, 혁명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노동당 39호실이 운영한 조선대성무역상사 등의 외국환 업무를 주로 관장한다. 초기에는 소속기관들의 호황으로 번성했지만 북한 지도부의 무차별적인 자금 차출, 부실채권 증가, 강제 고객자산 동결 등으로 오래전부터 사실상 파산 상태로 알려진다. 조선대성은행은 마카오, 싱가포르, 홍콩 등에 해외대표부(사무소)를 두고 오스트리아 빈에는 현지법인으로 금별은행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사무소만 남아있는 상태다.

단천상업은행은 1986년 설립돼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맡은 군수산업부분인 2경제위원회 소속회사들의 자금관리와 대외결제를 담당한다. 북한의 외환은행 중 자본금, 현금흐름 규모가 가장 큰 은행으로 알려졌다. 은행정보 제공기관인 뱅커스 앨머낵에 따르면 2011년 7월 기준 자산총액은 5억2560만달러, 영업외수익은 1171만6000달러다. 단천상업은행도 베트남, 미얀마, 중국, 싱가포르 등에 사무소를 운영했다. 단천상업은행은 무기 수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에 관여해 미국의 제재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려은행은 당 38호실 소속이다. 1994년에 남한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합작, 기업교류 활성화를 위해 탄생했지만 지금은 호텔, 백화점, 식당 등 북한 내 외화벌이 서비스기관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

북한은 선진국 자본과 기술유치를 위해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해 외국계 은행과 공동으로 지분을 투자한 합영은행도 운영하고 있으나 기존에 설립된 은행들과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동북아시아 은행은 1995년 네덜란드 ING은행과 김경희의 남편으로 숙청된 고 장성택이 맡은 조직지도부 행정부문의 대외보험총국이 합영한 ING-동북아시아은행으로 출발했다. ING 철수 이후에는 동북아시아은행으로 영업하면서 김씨 일가의 별장 건설을 전업으로 하는 인민보안부 소속 1여단을 비롯해 사금 채취, 무역, 외화식당, 외화상점 등 외화벌이 회사들과 거래했다.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장성택에게 할당된 혁명자금을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매월 자금 집행, 잔고, 이자를 산출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하기도 했다. 이후 장성택의 실각으로 현재는 노동당 군 총정치국에 속해 운영되고 있다.

화려은행은 1997년 조선중앙은행과 중국 인민은행 칭다오 분행이 각각 40%와 60%를 출자해 설립돼 중국 선양, 베이징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북한 무역잡지 등에 따르면 화려은행은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여유자금을 일정기간 위탁받아 운영하며 경제적 효과와 이윤이 높은 부문에 투자해 이익금을 분배하는 투자신탁 업무를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북한금융연구센터장은 "북한의 은행은 당과 군의 외화벌이 등을 위한 목적으로 상업은행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 은행의 기업여신 중 상당부분이 부실채권일 가능성이 높다"며 "상업은행 출범 이전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자본확충은 북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부담하고 남한이 부실채권 정리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정 기자




모바일 결제하면 배달서비스까지…엄지족 느는 북한



[북한속쏙알기(6)-금융]<4>충전식 현금카드, 평양만 가능하지만 편의성에 인기

북한에는 개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은행의 개인대출은 금지돼 있다. 은행은 북한 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존재인 셈. 미리 돈을 당겨 쓰는 신용공여의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도 없다. 하지만 충전식 현금카드는 활발하게 이용된다. 특히 최근 북한에선 온라인 쇼핑몰이 배달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려 현금카드를 발급받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의 현금카드는 달러 등 외화 상품 구매에 쓰는 외화카드와 북한 원화 결제에 쓰는 내화카드로 나뉜다. 외화카드는 북한의 유일한 외화 관리기관인 조선무역은행이 2010년부터 발급하기 시작한 나래카드, 북한의 호텔, 백화점, 식당 등 외화벌이 기관을 고객으로 영업하는 고려은행이 2011년 선보인 고려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내화카드는 한국은행 격인 조선중앙은행이 2015년부터 발급한 전성카드가 있다.

충전식 현금카드는 체크카드나 직불카드처럼 은행 계좌와 연동되지 않는다. 카드에 현금을 미리 충전해 쓰는 선불카드다.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은 평양뿐이다. 지방에는 아직 카드 결제가 가능한 제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는 현금카드를 결제보다 송금용으로 쓴다. 김영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지방에서는 카드로 결제 가능한 곳이 없는데 현재 지방도 결제 시스템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져 향후 사용영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결제 시스템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온라인 쇼핑몰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온라인 쇼핑몰은 현금카드 번호를 휴대폰이나 PC에 등록해 놓고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금카드 발급이 크게 늘었다. 김 팀장은 “현금카드로 온라인 쇼핑몰 결제는 물론 택시 예약도 가능해 평양 주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는 정책적인 이유로 지방에도 카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카드 보급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 극심한 경제난으로 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인출을 제한하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해 불법 사금융시장이 확대됐다. 대부업, 환전업 등 사금융시장에서만 자금이 돌고 금융기관으로는 유입이 안 되다 보니 외환관리나 기업자금 융통 등에 어려움이 많다.

북한은 상업은행법을 제정해 상업은행 설립을 허용하고 국가 발권력 회복을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사금융을 공적금융으로 전환하려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충전식 현금카드와 전자상거래 도입을 통해 점진적으로 민간 자금의 양성화가 이뤄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남북간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은행만큼이나 결제 수요도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신용카드 도입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팀장은 “신용거래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도입할 경우 자칫 신용불량자를 대량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며 “현금카드에서 은행 계좌와 연계된 체크카드 등으로 단계적인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명호 기자




북한도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사는 국영 1곳



[북한속쏙알기(6)-금융]<5>정부가 독점으로 국가보험제도 운영, 자동차보험 등은 의무보험

북한에는 민간 보험사가 없이 국가가 직접 보험을 운영한다. 북한에서 보험은 사유재산 보호 목적이 아니라 국가소유 시설물 등의 사고 피해를 복구할 재원 조달을 위한 국영공제기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진, 선봉 등과 같은 특수경제지대에서는 외국투자가와 해외 조선동포, 기업대표부 등도 보험업을 할 수 있지만 활성화되진 않았다.

결국 북한에는 보험사가 조선민족보험총회사 한 곳 뿐이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북한 기관이나 기업,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보험상품을 제공하고 매년 보험 순수익을 중앙은행 국고국에 납부한다.북한에서는 개인들이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실제로 보험계약서를 발급하지 않고 발급하더라도 가입자가 아닌 정부기관이 보관한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은 자신이 가입한 보험약관이나 규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북한의 보험상품은 가입대상에 따라 인체보험과 재산보험으로 구분돼 다른 나라와 유사하지만 실제 운영되는 상품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우선 인체보험은 가입 대상이 16세 이상 65세 이하인 근로자로 노동력이나 생명, 재산상 손실을 보장한다. 인체보험은 월급의 일정액을 의무적으로 자동납부하면 국가가 이를 복지예산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북한 주민에게 보험은 월급에서 의무적으로 공제하는 일종의 강요된 세금의 성격이 짙다. 가입한 근로자의 노동력이나 생명, 재산상 손실이 발생하면 국가가 예산을 통해 지원하는 식이다.

또 여행을 갈 때면 여객보험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차량 및 선박요금의 5%를 보험료로 내면 여행기간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동능력상실에 대한 보험금과 사망보험금을 지급 받는다.

인체보험 중 생명보험과 어린이보험은 장기저축성 보험의 성격이다. 생명보험금은 저축성 성격의 만기보험금과 사망보험금으로 구분되며 피보험자는 보험계약기간이 종료될 때 만기보험금과 이자를 지급 받는다. 계약 기간 중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피보험자들은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입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보험은 순수 보장성보험으로 운영된다. 재산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만기에 보험금은 돌려주지 않는다. 북한도 자동차 배상책임보험이나 수입화물보험 등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특히 외국대사관이나 대표부, 외국계 합영·합작회사는 소유한 모든 자동차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자동차 사고 시 국가에서 과실 비율을 정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농축산업 종사자가 많은 만큼 농작물보험, 집짐승 보험, 과일보험도 의무보험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한에도 재보험이 있지만 해외에서 수재를 꺼려 유명무실한 상태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지역을 찾아 손해사정을 해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현장조사가 어려운데다 일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 재보험은 북한 원화로 결재되는 국내보험 위험을 담보로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보험 분쟁이 생겼을 경우엔 ‘국가보험관리기관’이 나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국가보험관리기관은 남한으로 치면 보험을 담당하는 금융당국에 해당된다. 보험계약자가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거나 보험사고와 관련해 거짓통보로 보험금을 더 받으면 국가보험관리기관에서 벌금을 부과한다.

전혜영 기자




자원 개발 펀드·P2P 소액대출, 북한 진출 '시도'



[북한속쏙알기(6)-금융]<6>국제단체 북한 농민대상 소액대출…민간회사 진출 시도했지만 지지부진

2000년대초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대북 제재로 북한과 직접적인 금융거래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금융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지원이지만 북한의 가능성을 보고 진출을 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가장 먼저 나선 건 국제단체들이다. 국제농업개발기금(IFAD)는 북한 농촌 빈곤퇴치를 위해 저소득 농민과 여성을 대상으로 소액대출을 진행했다. IFAD는 세계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개발도상국의 농업개발을 위한 자금지원을 위해 1978년에 설립된 UN 특별기구다.

IFAD는 1996년부터 2008년 6월까지 양잠개발, 곡식 및 가축재건, 고산지역 식량 안전성 등 3개 프로젝트에 약 9810만달러를 조선중앙은행을 통해 투자했다. 조선중앙은행은 5% 고정 금리로 협동농장을 통해 농가에 대출했다. 농가 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등 사업은 성공적이었으나 대북 금융제재로 자금지원이 중단됐다. 특히 IFAD는 2013년까지 투자금액 중 4070만달러를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금융회사도 나섰다. 2004년 호주의 마라나타 신탁회사가 북한의 재무성과 금융합작법인 코리아 마라나타 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북한의 공장과 소기업, 일반 주민들에게 평균 2000유로를 대출했으며 금리는 약 12%였다. 금리가 높았지만 대출 회수율은 100%에 이를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시행되진 않았지만 북한 지하자원을 노린 국제사모펀드와 P2P(개인간 거래)를 통해 북한 금융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05년 런던의 앵글로시노캐피탈파트너스와 홍콩 투자자문사 고려아시아가 합자한 조선개발투자펀드(CDIF)는 북한의 금광석과 광물자원 개발 등 북한기업에만 투자하는 북한전용펀드로 5000만달러(약 550억원) 규모의 국제사모펀드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북한도 높은 관심을 보였으나 FSA(런던금융감독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미국의 P2P업체인 키바(KIVA)가 대북 소액대출사업에 관심을 갖고 추진했으나 북한당국과의 합작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기한 연기했던 사례도 있다. 키바는 2005년 설립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비영리단체로 '빈곤 퇴치를 위해 대출로 사람을 연결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윤병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해외 금융회사가 관심을 많이 보였으나 북한의 금융시스템 미비, 불투명한 금융구조 등이 북한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이학렬 기자




아무도 모르는 남북한 보험사고의 비밀




[북한속쏙알기(6)-금융]<7>북한에서 사고 발생시 손해사정 어려워…비공식적·비공개 방북해 사고 조사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 / 사진=이기범 기자
남북한은 남북경협과 관련해 해상적하보험, 남북한주민왕래보험, 건설공사보험 및 선박보험, 경수로건설보험 등을 운영해 왔다. 보험상품이 인가된 후 현재까지 각종 보험사고가 수 차례 발생했으나 남북한의 특수성 상 사고 배경이나 피해규모, 처리방식 등은 국내에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북한에서 사고나면 손해사정 어려워=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는 발생한 손해가 가입한 보험이 담보하는 것인지, 손해액과 보험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결정하는 손해사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남북한 간에 보험사고가 나면 손해사정을 하기 어렵다.

손해사정을 하려면 손해사정인이 사고현장을 직접 방문해 조사해야 하는데 보험 분야에서 남북한 간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지역의 사고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북한지역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남측 보험사가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손해사정을 하거나 예외적으로 남북한 협의 하에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손해사정을 진행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모든 절차와 비용은 남측 보험사가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북한과 관련된 보험사고는 필요한 경우에도 외부 손해사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경수로 건설과 관련해 사고하면 손해사정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외부 전문가 의견이 필수지만 다수의 인원이 북한에 위치한 사고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1998년 6월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리에 소재한 경수로 건설 공사 현장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 현장이 북한지역이라 당시 남측 손해보험사가 신속하게 손해사정을 할 수 없었고 사고 발생 약 1달 후에야 사고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또 재조사를 위한 재방북은 아예 불가능했다.

특히 사전에 남북한에 보험분야에서 교류가 없었던 터라 사고발생 후 손해사정을 위해 북한 측의 협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각적인 손해사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측 손해사정인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고현장이 원상복구 돼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 등을 가리기 힘들었다.

1999년 9월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건설 중인 방파제의 일부가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의 발주사, 시공사, 보험사 모두 남측 회사였는데 사고원인이 북한지역의 자연재해인 경우 기상자료 등 증빙자료를 구비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현지에서 사고를 조사한 후 남한에서 사고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북한측 자재를 구입해 수리를 하는 경우 북한은 물물교환을 통한 대금결제를 원하므로 정확한 원가계산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해상적하보험은 큰 문제 없지만 北 협조 필요=다만 남북한 간에 물자수송을 위한 해상적하보험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손해사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해상적하보험은 북한 측과 관계없이 남한 선주가 남한의 보험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사고도 선상 내에서 물건 선적이나 하역 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까지 해상적하보험에서 발생한 보험사고 처리 시에 크게 문제가 생긴 적은 없지만 앞으로 남북경협이 증가하면 북한 측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북한의 통관절차 및 방법, 선적 및 하역 시 고의적인 손해, 북한의 특수사정에 의한 통상손해 등도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이라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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