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클래식카를 타면 쿠바가 보인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8.06.30 08:36
주차해놓은 대형 클래식카.

“가난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 쿠바에 머무는 동안 여러 번 되뇐 말이다. 특히 아바나에서 카리브해를 따라 길게 이어진 말레콘(방파제)을 타고 묵직한 엔진소리를 내뿜으며 달리는 올드카를 볼 때마다 떠오르고는 했던 말이다.

쿠바를 상징하는 것들은 헤아리기 숨찰 만큼 많다. 시가, 럼, 살사,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체 게바라, 헤밍웨이, 사탕수수밭, 카리브해의 오묘한 물빛…. 하지만 클래식카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아바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옛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올드카, 즉 클래식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바나의 풍경을 묘사할 때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도시’라고 쓰고는 하는데, 굳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내놓으라면 당연히 ‘움직이는 자동차 박물관’ 혹은 ‘뚜껑이 열린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바나 시내를 지나다 보면 1950~70년대에 생산된 클래식카들이 신형 자동차 같은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며 거리를 누빈다. 그중엔 엄청난 크기의 캐딜락도 있다. 도색을 못해서 폐차장에서 꺼내온 것처럼 보이는 작은 차들도 있지만, 1950년대의 뷰익, 캐딜락, 벤츠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차들은 거액을 들여서 도색했기 때문에 날개를 펼친 수컷공작처럼 화려해 보인다. 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도시에 번쩍거리는 고급차의 행렬이라니. 더구나 어느 땐 마차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사연을 모르거나 처음 가보는 사람은 이질적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기 일쑤다.


쿠바가 클래식카의 천국이 된 데에는 뼈아픈 배경이 있다. 그 배경 때문에 ‘가난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혁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의 놀이터였다. 탐욕스러웠던 바티스타 정권은 미국이 손을 내미는 거라면 뭐든지 팔아먹었다. 그러다 보니 아바나는 1958년까지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환락도시였다. 마피아가 진출하고 미국의 부호들이 안방 드나들 듯 하면서 돈을 뿌렸다. 호텔과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말레콘을 따라 카 레이싱이 펼쳐졌다. 1958년 아바나를 찾은 미국인만 30만 명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는 경제 개혁에 착수한다. 사유 토지를 몰수하고 외국인 토지 소유를 금지한다. 10월에는 미국의 이권을 폐기하고 미국 자본의 착취를 제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계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이런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여러 차례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시도했다. 쿠바는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고,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로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클래식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여파로 새 자동차를 구할 수 없었던 쿠바 사람들은 과거 미국에서 들어온 차나 소련에서 만든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한데 차만 있으면 뭐하나? 고장이 나도 부품이 없으니 고쳐 쓸 방법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아무 부품이나 비슷한 것으로 차를 고쳤다. 예를 들어, 엔진이 못 쓸 정도로 고장 나면 뜯어내고 현대나 미쓰비시 등의 엔진을 얹는 식이다. 또 부품을 직접 깎아서 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듭 거친 차들은 결국 껍데기만 뷰익이고 캐딜락이다.

한번은 트리니다드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자동차 정비소(?)를 본 적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야말로 옛날 우리의 자전거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풍경이었다. 그곳에 자동차 한 대와 택시 한 대가 서 있고, 정비사가 뚝딱뚝딱 무언가를 고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쿠바에 가면 클래식카를 타볼 수 있을까? 당연히 타볼 수 있다. 클래식카를 타고 아바나 구시가를 1시간 정도 돌아보는 상품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클래식카로 영업하는 택시를 얼마든지 탈 수 있다. 썩 좋아 보이는 클래식카를 타게 됐다고 해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외장은 무조건 도색의 힘이라고 보면 된다. 차에 앉는 순간 시트는 조금의 안락감도 제공하지 않는다. 정말 고급차가 아니면 유리창 정도는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였을 수도 있다. 문짝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차를 타면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신난다. 오픈카일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클래식 카와 관련된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다. 예를 들면 오래된 차일수록 값이 비싸다는 것. 이제는 거꾸로 미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단종을 넘어 멸종된 전설의 차가 번쩍거리며 돌아다니니, 미국인으로서는 신기할 수밖에. 그래서 비싼 값에 사들이는 것이다. 근래에는 2000만 원짜리 차가 6억 원에 팔렸다나? 15억은 너끈히 받을 수 있는 클래식카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클래식카를 타고 가다 말레콘에 차를 세운 관광객들.


아바나 가면 꼭 클래식카를 타 보시라. 돈 많이 들여서 고급차를 타지 않아도 괜찮다. 오픈카라면 더욱 좋다. 덜컥거리며 말레콘을 따라 달리다 보면 괜히 우쭐해지고 근심걱정은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쯤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쿠바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다.


베스트 클릭

  1. 1 "만날 때마다 '대빵님' 호칭…현송월, 여걸이더라"
  2. 2 이재용·최태원·박용만, 삼지연에서 김정은과 '작별주' 나눠
  3. 3 김정숙 "운동합니다!"-文대통령 "지난주, 그 지난주도 안했고"
  4. 4 송이버섯 2톤, 국내 가격으로 따져보니 '최대 17억원'
  5. 5 김정은, 백두산에서 '손하트' 만들며…"모양이 안나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