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한시에 결혼한 쌍둥이 자매의 인생 변주곡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 2018.06.17 14:23

[웰빙에세이] 내 영혼의 문장들 -17 /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자매. 얼굴도 같고 성격도 같은 둘은 같은 집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며 늘 붙어 다니다가 또 한날한시에 결혼을 한다. 그런데 하나같은 두 운명은 여기서부터 엇갈린다. 언니는 주정뱅이 남편에 팔자가 꼬여 시장 통에서 아등바등 산다. 동생은 반듯하게 성공한 남편에 팔자가 피어 하릴없이 우아하게 산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자는 언니의 딸 안진진이다. 스물다섯 그녀가 보기에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엄마와 이모의 인생부터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지지리 궁상이고, 이모는 잘한 것도 없는 데 날마다 봄날이다. 덩달아 자기 인생까지 그늘이 지어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녀는 이제 온 인생을 걸고 그 이유를 탐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엄마와 이모를 탐구하고, 아버지와 이모부를 탐구하고, 불량배 남동생과 범생 사촌들을 탐구한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다니는 남자 둘도 탐구한다. 내숭을 떨면서 누구에게 사랑의 화살표를 그을지 저울질한다. 한 명은 부드럽고 순수하고 낭만적이다. 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요령부득이다. 또 한 명은 박력 있고 주도면밀하고 일목요연하다. 다 알아서 위해 주고 챙겨 준다. 하지만 너무 계획적이고 일방적이다. 몽상과 현실의 대결!

그녀는 이렇게 어긋난 것들을 탐구하면서 깨닫는다. ‘인생이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오묘한 진실을. 탐구하면서 산다면 이 모순 덩어리 인생을 어찌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미우나 고우나 먼저 받아들여 품고 살아야 결국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셀라비(C’est la vie)!

​간만 보면서 맛을 알려는 게 탐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 맛 저 맛 다 보면서 맛이 배는 게 살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누구나 삶 속에 풍덩 빠져 단맛 쓴맛 다 보면서 헤쳐 나갈 때 철이 들고 내공이 쌓인다. 그러면서 인생의 맛도 깊어진다. 행복의 단맛만 보아서는 그 인생에 깊은 맛이 배지 않는다. 나중에는 단맛마저 물려 그 인생 견딜 수 없이 심심하고 무료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소설 <모순>의 극적인 반전, 행복한 이모의 자살을 무어라 설명할까? 엄마는 씩씩하게 잘도 사는데!

엄마는 가히 철인의 무사다. 숨넘어가게 부르는 삶의 호출이 하도 많아서 도저히 심심할 틈이 없는 사람이다. 이모는 그런 엄마가 오히려 부럽다. 그것이 진정 살아가는 맛 같다. 모든 사람에게 불행으로 비쳤던 엄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으로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 이 모순! 이 난해한 인생이여! 이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조카 진진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이모는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인생을 탐구하던 진진도 깨닫는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던 불행”이라는 것을. “세상의 숨겨진 비밀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몹시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그것은 마치 평생 동안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설렁설렁 간만 보면서 맹탕으로 살지 말고,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떫은맛 모조리 즐기면서 살자. 행복도 불행도 다 끌어안고 통 크게 살자. 내 인생에 깊고 오묘한 맛이 밸 때까지! 법정 스님도 똑같이 당부한다. 어려서 한 방에서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촌 동생에게 쓴 편지다.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몇 백번 상하고 다치면서 괴롭고 절망하고 울부짖는 동안에 인간은 자란다. 자라면서 모든 것을 얻고 또 잃어버리고 그러는 동안에 인생을 알게 된다. 울지 마라.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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