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산통을 열어 한 사내를 열어주었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18.04.07 07:41

<144> 조유리 시인 '흰 그늘 속, 검은 잠'


2008년 '문학·선' 신인상으로 등단한 조유리(1967~ ) 시인의 첫 시집 '흰 그늘 속, 검은 잠'은 사람들로부터 '저만큼' 떨어져 홀로 살고 있는 한 고독한 영혼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 속에 같이 살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 섬처럼 떠 있고, 사막으로 떠나고, 때론 밀실이나 '누에의 방'에 조용히 숨어든다. 하지만 사람들 곁을 떠나서 살 수 없기에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감정은 고스란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의 안에는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는데, 시인이 한 문학잡지에 "타자와 세계를 향한 소통의 방식을 취하기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자아적 발현을 내 의식 속에 토설해내는 것일 뿐"이라고 쓴 문장을 떠올리면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삽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고

눈발들이 언 손 부비며 사람의 걸음걸이로 몰려온다
다시 겨울이군, 살았던 날 중
아무것도 더 뜯겨나갈 것 없는 파지破紙처럼
나를 집필하던 페이지마다 새하얗게 세어

먼 타지에 땔감으로 묶여 있는 나무처럼 뱃속이 차구나
타인들 문장 속에 사는 생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뺨을 오해하고 후려쳤던 날들이

흑빛으로 얼어붙는구나
어디쯤인가,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감정으로 꽃들이 만발한데

죽어서도 곡哭이 되지 못한 눈바람이 검붉게 몰아치는데
- '흰 그늘 속, 검은 잠' 전문

조유리의 시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눈동자"('마리네리스'), "타액들에 섞여 마지막 선곡을 내지르는 입술"('빨래들'), "오른쪽 귀를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혓바닥들"('검은 혀들의 축제'), "계절 없이 활활 피었다 고꾸라진 모가지들"('꽃에겐 바깥이 없다'), "짧은 사랑 끝에 사람의 생간이/ 까마귀 귀두로 둔갑하는"('지난밤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등과 같이 몸을 대상으로 한 시가 유독 많다. 그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요가강사를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타자와의 소통보다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흰 그늘 속, 검은 잠'도 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초봄, 목단에 영양분을 주기 위해 가져온 "검은 흙더미 한 채"는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은"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타의에 의해 "검은 흙더미"가 이사하는 것처럼 '나'는 "타인들 문장 속"에 산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는 사이 내 자아는 점점 피폐해진다. "흑빛으로 얼어붙는"다. 그때 문득 "어디쯤인가,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가 숨어든 밀실에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나를 "감정하고, 조작하고, 유린"('유리房')한다. 하여 그의 시에는 '검은'이나 '죽음', '저만큼'과 같은 시어들이 자주 반복된다.

표제시 '피안'은 충남 홍성 궁리포구의 낙조가 배경이다. 수평선이 아닌 안면도를 비추며 지는 노을에 철새 떼가 날아다니면 장광인 궁리포구에서 시인은 기껏 "파지, 상한 달걀, 시든 파뿌리"에 시선이 머문다. 도시 사람들 곁을 떠나와도 만나는 "파지, 상한 달걀, 시든 파뿌리"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그런 사실을 새삼 알게 해주는 "썩은 냄새 풍기는 저것들"이 "참 고맙다"고 하는 것은 강한 역설이다. 피안(彼岸)이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인 동시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는 곳이나 '말 이면의 세계, 혹은 관념의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오늘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둔다"는 것은 세속을 벗어난다는 말과 나에게 상처를 준 당신들을 생각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이 길을 감고 푸는 동안
이 길을 감고 푸는 동안
내 몸에는 실오라기 한 올 남지 않았네
바늘귀에 바람의 갈기를 꿰어
길게 박음질한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는 저녁
몸 바깥으로 향한 솔기부터
올을 풀기 시작하네

바람이 모래구릉을 만들어 낙타풀을 키우는 땅
결리고 아픈 생의 안감을 뒤집어보면
천년 전 행성이 반짝 켜졌다 사라지곤 하네
계절풍은 고름을 풀어 우기를 불러오고

초승달을 쪼개 먹다 목에 걸려 운 밤
캄캄한 잠실蠶室에 엎드려
산통을 열어 한 사내를 풀어 주었네
수천 겹 올이 몸에서 풀려나갈 때
살아온 시간 다 바쳤어도
바람을 동여매지 못하리란 걸 알았네

내 몸속엔 이 지상에 없는
성채가 지어졌다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 태실胎室 속

목숨을 걸고 돌아갈 지평선 한 필지 숨겨두었네
- '누란 가는 길' 전문

등단작 중 한 편인 '누란 가는 길'은 표제시 '피안'만큼이나 감정이 잘 절제되어 있는 수작(秀作)이다. 이 시는 관 없이 모직물로 된 천에 감싼 신체가 완벽하게 보존된 채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한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 '누란의 미녀'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 길을 감고 푸는 동안/ 내 몸에는 실오라기 한 올 남지 않았네"라는 관능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문장으로 시가 시작되지만 완성되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천년 전 행성이 반짝 켜졌다 사라지"는 시점에 "고름을 풀어 우기를 불러"왔지만 "캄캄한 잠실蠶室에 엎드려" 울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내를 풀어준다. "수천 겹 올이 몸에서 풀려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것은 "바람을 동여매지 못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 다 바"쳐 천 년(누란)의 사랑을 꿈꾸었으나 결국 남은 것은 "폐허가 된" 몸뿐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 바로 사막의 "지평선"이다. "반짝 켜졌다 사라지"는 "천년 전 행성"이 전생의 반짝사랑이라면 "목숨을 걸고 돌아가는 지평선"은 내 몸과 마음이 품고 있는 영원한 후생의 사랑이다.

시인은 '시로 쓰는 산문'에서 요가를 하려면 "바닥과 한 몸 되듯 힘을 빼야 한다"고 했다. 사랑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에 다르겠는가.

◇흰 그늘 속, 검은 잠=조유리 지음. 시산맥사 펴냄. 160쪽/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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