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블랙록' 회장의 편지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3.08 04:10
블랙록(BlackRock)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운용자산(AUM)이 지난해 7월 기준 5조7000억달러다. 약 600조원인 국민연금기금의 10배 정도 자산을 운용한다.

따라서 블랙록은 세계 유수 대기업들의 대주주거나 주요주주다. 블랙록이 기업의 경영이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한마디하면 모든 회사는 경청해야 한다. 지난 1월16일자로 투자대상 회사들에 나간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의 편지가 화제다.

핑크 회장은 회사들이 ‘뚜렷한 목표 감각’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뚜렷한 목표 감각이란 매 분기 경영실적이 양호해야 할 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문제의 개선에 유의미하게 기여하겠다는 의식을 말한다고 한다. 블랙록이 이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경우 인덱스투자펀드, 뮤추얼펀드 등 소극 투자자들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최근의 강세장 기조에서 그 증가 속도가 가속화했다. 그 결과 미국 자본시장의(따라서 회사 주주총회 의결권의) 3분의1 정도를 소극 투자운용사가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선 ESG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에 블랙록은 회장의 편지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투자 대상 회사들의 주위를 환기한 것이다.


블랙록은 회사의 주주, 고객, 회사가 활동하는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회사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해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고 하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블랙록은 ESG 이슈를 투자 프로세스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핑크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회사는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업원들의 다양성 도출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술의 변화에 적응해나가고 있는가. 우리는 점차 자동화되어가는 세계에서 종업원들의 재교육과 사업기회의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업원들의 은퇴 후에 대비한 투자를 돕기 위해 행동경제학이나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사실 이번 편지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간 학계와 실무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제기된 문제들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ESG 평가모형으로 등급을 산정한다.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의 시대에조차도 ESG 문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이 자산운용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뿌리 깊은 인식이 잔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와 같은 인식이 불식되기 위해서는 블랙록과 같은 업계 대표의 발언이 필요했다. 핑크 회장의 이번 편지가 분위기를 일신할 것으로 기대되며 국내 자산운용업계와 기업들에도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을 포함한 ESG 실무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블랙록은 최근의 파클랜드고교 총기사고 이후에 총기제조사와 유통업체에 대한 투자정책을 재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970년대에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은 열심히 돈 버는 것이 바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 돈을 더 잘 버는 기업이 되는 세상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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