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대통령의 논문 발표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1.30 04:48
지난해 1월 미국 언론은 당시 아직 현직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이 법학 학술논문을 발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가짜뉴스인가 했으나 사실이었다. 찾아보니 바락 오바마라는 필자가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이하 리뷰)에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에 있어서 대통령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각주 317개가 붙은 56페이지짜리 정식 학술논문을 발표했고 그 아래에는 ‘미합중국 대통령’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세간의 즉각적인 반응은 “퇴임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업적 중 하나를 특별한 방식으로 부각시키는 것 아닌가?”였다. 그러나 이 논문은 백악관이 기획해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이 논문이 탄생한 경위는 이렇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학계와 법조계에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형사사법제도 개혁이 큰 논의거리였다. 법학 학술지가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주커만이라는 이름의 편집장은 뭔가 강력한 작품이 없을까를 고심하다 대통령에게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오바마행정부는 형사사법제도 개혁에 역점을 둬왔다. 26년 전 리뷰 편집장을 지냈고 법학교수였으며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가였던 현직 대통령이야말로 이 주제에 대해 영향력이 큰 말을 해줄 최적임자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주커만은 이 ‘드림 시나리오’를 가지고 즉시 미노우 당시 학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백악관과 접촉한 것이다.

오바마의 논문은 아무런 특별대우 없이 다른 논문들과 똑같이 엄격한 검증과 편집 과정을 거쳤다. 편집진과 대통령이 직접 작업을 같이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통령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보통 때보다 몇 배 더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학기말 시험 날이 다가오는데도 밤샘작업이 보통이었다.


주커만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법학 학술논문을 리뷰에 싣기 위해 작업하는 일이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전한다. 주커만은 13세 때 불법 가택침입으로 소년 형사 피고인이 된 경험이 있다. 유죄협상과 사회봉사로 풀려났고 다이버전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사회가 자신에게 그렇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백인이어서 그런 기회를 누렸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토로한다. 두 번째 기회를 포함하는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에 관한 오바마의 논문은 그런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논문에는 누가 논문의 작성을 도와주었다는 내용의 주석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는지 의문이 돌아다녔다. 교수들은 대통령이 직접 쓰지 않고 조수가 쓰고 이름을 붙이면 학술적 사기가 되니 대통령이 직접 썼을거라고 보았다. 오바마가 직접 쓸 능력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 그러나 대법관이 판결문을 쓰듯이 한 팀이 오바마의 지휘 하에 작성했을 거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래도 알쏭달쏭하다. 왜 많은 사람이 읽는 일간지의 칼럼이 아니고 일부 전문가들만 읽는 법학 학술지에 의견을 발표했을까. 퇴임 후 학계로 돌아오고 싶어서 그랬나.

지금 국내에서 대통령들 높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교하면 대통령이 한 특별한 행동을 놓고 미국 학계와 언론에서 이런저런 관측과 해석이 분분한 것이 신선하기만 하다.

하버드대학교의 파우스트 현 총장은 오는 6월 퇴임한다. 새 총장 후보로 지난 여름부터 오바마가 언론에서 거론되었다. 서울대도 그쯤 새 총장을 선출한다. 새 서울대 총장과 오바마가 국제 학술교류를 의논하는 그림이 나올까.

베스트 클릭

  1. 1 중국의 삼성 OLED 기술 탈취에 美도 화났다
  2. 2 "부모 덕에 호의호식"…'훔친 수저'에 분노하다
  3. 3 조수애, 이다희, 노현정…재벌家 며느리 된 아나운서들
  4. 4 대낮에 왜 대리운전 부를까…술 안 마시고 대리 부르는 사람들
  5. 5 조선일보 손녀 측 "미성년자 괴물로 몰아가, 법적 대응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