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58년 개띠’] "환갑은 아직 청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 2018.01.20 09:24

[릴레이 인터뷰] ④ 연기인생 40주년 배우 남경읍 "산거리 캐스팅서 시작된 40년…앞으로가 더 기대"

올해로 연기 40주년을 맞은 배우 남경읍은 "환갑이지만 아직 청년기"라며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사진=김휘선 기자
꿈과 현실 앞에 좌절하고 오른 산자락에서 우연히 캐스팅돼 배우의 길에 입문, 대타 공연에 올랐다가 뮤지컬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전설적인 입지를 굳힌 이가 있다. 뮤지컬 무대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하고 있는 배우 남경읍이다. 올해로 환갑이자 연기 인생 40주년을 맞이한 그를 만나 드라마 같은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는 아직 청년기"라고 외치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에게서 긍정적이고 힘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배우의 길을 후원해준 어머니에게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안겨드렸고 스스로도 40대에 대학문을 두드려 학위를 땄다. 스스로 예상한 장년기의 시작은 66세라는 배우 남경읍은 이제 겨우 60세일 뿐인 인생과 무대에서의 영원한 청년이다.

- 연기 인생 40주년을 맞았다. 소회는 어떤가.

▶40주년. 참 많이 했구나 싶어요. 그동안 그저 달려왔는데 벌써 40주년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니 책임감도 느껴지고요. 내 앞으로의 날들은 어떻게 펼쳐질까 기대돼요.

어릴 땐 잘 하려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앞서서 관객들에게 무언가 많이 전달해야겠다는 욕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배우가 아무리 많이 표현을 해도 관객이 못 느끼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배우가 비극적 상황에서 눈물 콧물 다 빼도 관객이 안 슬프면 뭐하겠어요. 오히려 배우는 담담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데 관객이 그걸 오롯이 느끼고 감동을 받게 해야 하는 거죠. 나이가 드니까 어떻게 연기하는 게 가장 좋은 표현의 수위일까 생각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죠.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해주신 어머니께 고맙죠"

-가난한 시대, 배우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처음엔 음대를 가려고 했어요. 성악과 입시를 준비했는데 레슨비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건 뭐 쉽나요. 물감도 사야하고 재료비가 만만찮으니, 몸으로만 하는 걸 해야하나싶어 체대 준비로 돌아섰어요. 그런데 사실 그 시절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운동하니까 빈혈 생기고 픽픽 쓰러져버렸죠. 그때 ‘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화계산을 찾았는데, 거기서 ‘산거리 캐스팅’을 당한 거예요. 길거리 캐스팅도 아니고(웃음). 한 남자가 카메라로 뭘 찍고 있길래 신기해서 따라다녔더니, 제가 신경 쓰였는지 말을 걸더라고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연출 전공하는 분이었는데 졸업 작품을 찍는 중이라고, 그러면서 저보고 본인 친구 중 연극연출 전공자가 극단을 만들어서 배우를 뽑고 있는데 생각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그날 집에 가서 어머니께 물었죠. 당시 저희 어머니는 흑석동 시장에서 소라장사를 하셨거든요. 화덕에 냄비에 소라를 삶아서 하는…. 그때가 1975년인데 소라장사 하는 아주머니가 4남1녀의 장남이 연극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시는 거예요. 어릴 적 교회에서 연극 무대에 서고, 중학교 때는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이런 대본을 써서 동네 친구들 모아놓고 공연도 하고…제가 끼가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극단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이듬해 배우로 데뷔했어요. 그렇게 제 연기 인생이 시작된 거죠.

제가 연기 하겠다고 했을 때 믿고 지지해주신 어머니께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는 늘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이후에 제 동생 남경주가 고3되던 해에 연극하겠다고 했을 땐 어머니도 아들 둘이나 광대를 한다고 하니 반대하셨는데 그때는 제가 어머니를 설득했죠. 결국 어머니가 훗날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이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배우 남경읍은 무작정 연습에 몰두하기보다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사진=김휘선 기자
-우연히 시작한 연기, 힘든 점은 없었나.

▶1978년에 뮤지컬 데뷔를 하고 이듬해 운 좋게 시립뮤지컬단에서 주인공을 맡았어요. 신입단원이니 새벽부터 밤까지 목숨 걸고 연습했는데도 연출한테 늘 혼나니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심지어 죽으려고 유리창에 몸을 던진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다른 단체의 대타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하게 됐는데 당시 저명한 평론가 한 분이 제 연기를 너무 좋게 평가해주신 거예요. 이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좋은 배역들도 들어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참 드라마 같죠.(웃음)

배우를 하면서 어려움도 물론 많았어요.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 이치를 여행하면서 깨닫곤 해요. 한 번은 겨울에 드라마 촬영 때문에 용인 산자락에 있는데 참 적막하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겨울 산의 땅들은 참 좋겠구나 싶은 거예요. 나뭇잎이 다 떨어지니 땅이 오롯이 태양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인거잖아요. 그 안에 무한한 생명을 품고 봄에 틔울 싹을 준비하는…. 이때 느꼈어요. ‘내 인생의 겨울도 나를 쓰러뜨리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요.

제가 요즘도 정해진 틀 없이, 느낌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요. 그러다 고향에 들러 친구들과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처음 가는 언덕에 올라 경치를 즐기다 오기도 하고. 마음도 몸도 건강해야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과거엔 무작정 연습에 몰두하고 시간을 많이 쏟는 것만이 능사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알죠.

"연기할 때 살아있다고 느껴…내 인생 가장 잘한 일"

-무대와 스크린을 종횡무진 해 왔다. 어떻게 다른가.

▶대학교 때 처음 뮤지컬을 봤을 때 경험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어요. 이화여대 개교 몇 주년 기념 뮤지컬이었는데 ‘가스펠’이라는 작품이었죠. 보는 순간 이루 말로 표현 못할 충격에 빠졌어요. 노래, 연극, 몸의 표현 등 제가 좋아하고 해 오던 것들의 집약체였어요. 이런 게 있구나! 연달아 국립극장에서 ‘시집가는 날’이라는 정식 프로극단의 공연을 보고선 바로 시립뮤지컬단에 들어갔어요.

이후 뮤지컬을 떠나 스크린으로 가게 된 건, 거창한 이유를 대자면 배우로서 외연을 확장하고 싶은 생각의 일환이었습니다. 스크린에 대한 매력과 궁금증,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도 있고요. 무대는 제 고향이니 항상 그립지만 어떤 장르에서든 연기든 노래든 늘 하고 있는 것이라서 부담감은 크게 없어요. 무대와 스크린의 메커니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연기 자체가 제겐 참 재밌어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후 뮤지컬을 떠나 스크린으로 가게 된 건, 거창한 이유를 대자면 배우로서 외연을 확장하고 싶은 생각의 일환이었습니다. 스크린에 대한 매력과 궁금증,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도 있고요. 무대는 제 고향이니 항상 그립지만 어떤 장르에서든 연기든 노래든 늘 하고 있는 것이라서 부담감은 크게 없어요. 무대와 스크린의 메커니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연기 자체가 제겐 참 재밌어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살면서 가장 잘 한 일과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은 배우가 된 것, 그리고 느지막하게 43살에 대학에 들어간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2년제 대학을 갔는데, 그러다보니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계를 느꼈어요. 이론적 뒷받침이 없이 현장 경험만 가지고 가르치니까 늘 부족함이 있더라고요. 공연할 때 작품 해석이나 표현에 있어서도 그렇고요. 훈련의 양만 가지고 앵무새처럼 외워서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늘 고민이 됐습니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해보자고 결심해서 단국대로 편입하고 동국대에서 석사까지 마쳤죠. 그 5년간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고 젊은 학생들이랑 지내면서 생각도 유연해지는 계기가 됐어요.

살면서 가장 잘 한 선택은 '배우를 한 것'이라고 답하는 배우 남경읍은 연극배우를 하고 있는 딸과 올해 2인극 무대에 함께 설 계획을 갖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우린 아직 청년기…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

-올해 환갑을 맞았다. 은퇴를 앞두고 노후를 설계하는 동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58년 개띠인데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친구들이 56년생이에요. 다들 은퇴하고 귀농해서 살기도 하고 그래요. 친구들이랑 자주 모이는데 다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우리 아버지 세대엔 40대만 해도 할아버지 소리 들었는데, 이젠 아니잖아요. UN에서 구분한 인생주기 표를 보니까 18~65세가 청년기, 66~99세가 장년기, 91~99세가 노년기로 돼 있더라고요. 우린 아직 청년기에요. 저도 늘 스스로에게 “임마 넌 아직 청년기야”라고 최면을 걸거든요. 친구들한테도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있을까.

▶청년기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웃음) 어릴 때 성악가가 꿈이었으니 내 일생에 한 번은 뮤지션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장르도 소화할 수 있는 뮤지션이요. 20~30대 때 인생에 쏟던 열정으로 앞으로를 산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중 하나는 제 딸과 함께 무대에 서는 거예요. 제 딸도 연극배우인데 올해 같이 하는 2인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쓴 대본을 전문가 통해 각색 중이고 아마 하반기쯤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딸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이번 무대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배우 남경읍 연보>

1958년 경북 문경 출생
1976년 연극 하멸태자 데뷔
1978년 서울시립가무단
1987~1991년 서울예술단 지도위원
1994년 제18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
1996년 제2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1996년~ 예장연극영화학원 원장
1997년 뮤지컬 '돈키호테' '사랑은 비를 타고'
2000년 뮤지컬 '장보고'
2005년~ 남뮤지컬아카데미 원장
2006년 뮤지컬 명성황후
2008년 뮤지컬 '햄릿
2010년 영화 '용서는 없다' '아저씨'
2014년 영화 '명량' '몬스터'
2015년 드라마 '파랑새의 집' '빛나거나 미치거나'
2017년 뮤지컬 '벤허', 드라마 '마녀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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