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에서 美로 주도권 넘어간 세계화…'富의 불균형'이 '극우 득세'로 이어지다

머니투데이 신혜선 VIP뉴스부장 겸 국제경제부장 | 2017.12.02 03:22

[신혜선이 만난 사람들]<11>'영국사 깊이 읽기' 저자 이영석 광주대교수가 들려주는 '세계화 잔혹사'

#극우득세#반난민#반이슬람#분열
올해 유럽 각국에서 치른 여러 선거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프랑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반 난민(반이민), 반이슬람’ 등의 인종주의 구호를 앞세운 이른바 우파들의 등극이다. 독일은 과거 나치당의 후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3당의 자격으로 원내에 첫 입성 했다. 전조는 있었다. 2016년 6월 23일(현지시간) 영국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EU 탈퇴 찬성 반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이겼다. 그리고 1년 후인 올 6월 8일 영국이 치른 조기총선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50%에 달했다. 과반은 실패했지만 16년 만에 최고 지지를 끌어낸 것이다. 극우 광풍은 이렇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유럽연합(EU)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유럽은 어쩌다 분열과 극우의 전당이 됐을까. 영국 경제사회사 연구에 정통한 이영석 교수(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의 최근 저술 ‘영국사 깊이 읽기’(2016, 푸른역사)는 브렉시트와 유럽의 분화에서 극우 등극까지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교수는 최근 드러난 일련의 흐름을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정리했다.

이영석 교수는 유럽 전역에서 부는 '극우 등극'을 "세계화의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브렉시트부터 예고된 '우향우'는 일자리 부족과 심화하는 빈부격차로 인해 경제적 하층민인 백인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설명했다./사진=홍봉진기자
-2017년 한 해, 세계적인 공통현상 중 하나가 ‘극우 득세’다. 혹자는 ‘우파혁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브렉시트부터 검토해볼 만하다. 선거 결과를 분석한 연구가 많이 나왔다.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는 잔류, 즉 탈퇴 반대가 높았다. 도시 지식층이다. 나머지 지역 대부분은 탈퇴 찬성이 높았다. 도시와 지방, 중앙과 지방의 대립구조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본다면 도시는 번영이다. 영국 핵심 산업인 금융문화 지식산업의 중심점이다. 지방은 제조업마저도 쇠퇴하는 쇠락의 현장이다. 지역적 특성 외에 노년층의 탈퇴 지지가 높았다. 이들은 연금소득자다. 이들은 빈민층으로 분류된다.

-영국 국민 다수가 브렉시트를 택한 이유가 일자리, 빈부격차 등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조건이 우경화로 이어지는 이유를 좀 더 풀어달라.
▶여론조사에서는 백인 남성층의 탈퇴 찬성 응답이 높았다. 그리고 저학력자들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경제적으로 하층인 백인 남성들의 반란’인 셈이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소득 불평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또 영국이 서유럽 복지 수준보다 뒤처졌다 해도 복지형 국가로 성장해왔다. 더욱이 1990년대까지 가속화한 세계화 흐름에서 대표적으로 이득을 본 국가는 바로 영국이다. ‘영어 헤게모니’는 대단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개인적으로 세계화의 부작용이라고 본다.

-세계화가 경제적 불평등을 낳았다는 건데 세계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세계화는 개념에 따라 16세기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갈 수 있다. 세계화는 경제사적 개념으로는 범세계적 시장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초기 유럽 내에 그쳤지만 1880년, 1890년대 들어서면서 팽창했다. 상품수출입은 물론 자본투자, 노동력 이동까지 포함했다. 그 중심이 바로 영국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어진 이민의 물결은 세계화의 한 증거다. 미국으로, 캐나다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럽인(러시아 유대인)들이 옮겨갔다. 자본 역시 이동했다. 상품수출은 말할 나위 없고 노동력까지 모두 옮겨갔다. 세계화에서 큰 변수가 발생했다.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자본주의 세계시장이 2배로 커졌다는 변화다. 동유럽의 붕괴(페레스트로이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 동시에 이뤄진 결과다. 덩샤오핑의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지만 개방을 택하고 나니 세계시장 팽창에 큰 역할을 했다. 더욱 그 시기는 IT(정보기술) 경제, 디지털 문명이 확산하고 영향력이 커진 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각국 모두 정책적으로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웠고 한 국가가 주도한 세계화가 3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즉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화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주도권은 미국이 장악했다.

이영석 교수
이 교수가 ‘세계화’ 역사를 좀 더 들려줬다. 그는 세계화가 19세기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그 시기 세계화를 주도한 세력은 영국이었다. 철도와 증기선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를 보완한 것이 해저전신망이다. 해저전신망은 1890년대까지 전세계를 커버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880년대 영국 해군이 가설한 해저전선이 거문도에서 발견됐다. 영국은 1930년대 이미 전세계적인 민간 항공망을 갖출 능력이 있었다.

이동하는 노동력과 영국 자본이 세계시장을 장악했다. 자본과 노동력은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의 사회간접자본에 대거 투자했다. 광둥성 중국 노동자 수십만 명 역시 캐나다로 이동했다. 밴쿠버 빅토리아 아일랜드 건설공사를 책임진 노동력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현재 캐나다에는 중국인이 다수 거주하는데 19세기에 건너간 중국인의 후손이다. 로키산맥을 넘는 캐나다 대륙횡단철도는 영국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완성은 중국 노동자들이 한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 철도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인 1만몇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상품이나 노동, 자본이 이동하는 형태의 세계화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성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은 세계화와는 다르죠. 지금은? 지식문화, 무형적인 것도 어떤 경계나 방해 없이 거래되고 교환되는 시장까지 형성됐다고 봅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지만 세계화는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을 계속 발생시키면서 온 셈이다.
▶적어도 후반기 세계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자유경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 독점, 특권이 작용했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서 그런 속성을 줄였다. (나도 교수지만) 거만한 지식인? 지금은 안 먹힌다. 정보는 공개되고 도처에 숨은 고수들이 있다. 지식의 민주화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하고 획득할 수 있다. 정당정치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렇다. 수뇌부, 보스 중심으로 ‘밀당’하는 시대는 갔다. 민심을 진짜 적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는 그런 것 같으면서도(평등주의적 측면에서) 수많은 기술변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소수라는 점이다. 그래서 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 이것은 토마 피케티가 실증적으로 입증했다고 본다. 사회적 불평등이, 소득의 불균형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또 그렇지 않다면 과거든 현재든 본질은 같은 것 아닌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또 그렇지 않다면 과거든 현재든 본질은 같은 것 아닌가.
▶200~300년 동안 자본축적의 핵심은 토지였다. 19세기까지 노동력이 기본이다. 그러다가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자본의 위력이 배가된 것이다. 최근 30년은 어떤가. 또 달라졌다. GE, 포드 같은 전통적 기업의 자리를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차지했다. 전통적 의미의 공장은 없다. 지식산업이다. 지식 자체를 가공하고 활용한 결과로 부를 축적한다. 이들의 부는 19세기 록펠러나 카네기가 가진 부와 비교할 수 없다. 자본축적의 중심이 지식으로 넘어갔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문제는 자본은 더욱 투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경험한 상실감과 분노가 응축돼 있다가 특정 계기를 만나 분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정치현상은 절대 우파혁명이 아니다. 양극화 과정에서 자신의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영국사 깊이 읽기' /사진제공=알라딘 홈페이지
-세기를 이어온 세계화의 역사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낳았고 결국 인종차별(이민 및 난민정책의 퇴화) 등 극우 목소리를 키우게 됐다는 설명으로 귀결된다.
▶현상은 그런데 세계화가 지금과 과거가 다르듯 지금의 인종주의도 19세기 그것과 다르다고 본다. 식민지시대를 거쳐 1950년, 1960년대는 번영의 시절이었고 복지국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전통적인 백인 인종주의를 ‘다문화주의’로 전환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의미다. 여러 선진국이 이민자를 끌어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던 이유다. 속으론 편견이 있었어도 겉으로는 담대히 수용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할까.

그런데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각해지니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백인 하층의 적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19세기에는 타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더라도 내가 우월하다는 자신감이 있어 무시하면서도 혜택을 베푸는 강자의 자세였다.

당시 인종주의가 진짜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인종주의라면 지금은 수동적, 자기방어적인 인종주의다. 내가 실제 피해를 보고 있고 못났다는 자괴감과 패배주의에 빠졌다. 실제 성공한 부를 누리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이들 중 유색인종, 흑인도 적지 않다. 사회적 양극화 불평등을 어떤 형태로든 둔화, 완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 정책의 최우선 목표여야 한다.

이영석 교수
-대안은 뭐라고 보는가.
▶글쎄.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 먹고살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최소한 세율은 지금보다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비대하게 축적된 부를 세금으로 거둬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단 많이 버는 사람의 것을 뺏어 주는 개념은 안된다. 복지를 절대적으로 강화하는 데 따른 병폐는 이미 서유럽에서 드러났으니 ‘퍼주기식’은 100% 정답은 아니다. 선택적, 생산적 복지를 고민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를 추진할 정치인은 부패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 그간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았다고 본다.

세계 근대화에서 영국의 역할, 세계화 과정에서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만들어진 21세기 지구촌의 현주소를 이야기하면서 이 교수는 ‘전공영역’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우리나라에 국한해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했다. “10년을 허송세월했다고 봅니다. 전 지구적 변화 흐름에서 우리는 한 게 없다고 봅니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김영삼정부)부터 등장한 ‘글로벌라이제이션’ 구호는 강대국의 여러 요구를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부응하고 좇아가기 바빴죠. 그런데 그나마 지난 10년은….”

더불어 이 교수는 “부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이 많은 이들은 부동산 투기를 생각하지 생산적 일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죠. 즉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요. 그런데 그 부는, 나의 부는 나의 노력만으로 갖게 된 것일까요? 대부분 부는 사회적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평균적인 부를 넘어서는 터무니없이 많은 부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다 칩시다. 투기 흐름을 직접 찾아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우연히 운이 좋아서 돈을 번 경우도 있을 거예요. 두 경우 모두 개인이 독자적으로 전횡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축적 당시 내가 없었다면 그 부는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성격도 있고요. 그래서 모든 부는 사회성이 있다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영석 교수는 영국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21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세계화 부작용을 진단한다.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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