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의에 대한 19가지 근원적 질문들

머니투데이 이인선 동네북서평단 주부 | 2017.03.25 05:11

[동네북] <34>폴커 키츠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편집자주 |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자살에 대해 논쟁했다. 생명이 신의 선물이라면, 끝까지 선물을 간직해야 할까 아니면 중간에 돌려줘도 될까?”

독일의 법은 삶에 지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며 자살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살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어디까지 받아도 될까?”

이 책의 저자 폴커 키츠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법’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가 언급하는 사례들은 독일헌법에 기초한 것이지만 다른 국가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첫번째 장에서는 정의, 특히 법의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이 자신의 인격을 발현할 권리”를 가지지만 법치국가에서는 행동 자유권을 제한하는 국가권력이 있다.

국가권력은 어떤 ‘조건’에서 우리의 행동 자유권을 제한해도 될까? 이에 대해 독일 헌법 제 2조 1항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헌법 질서나 윤리에 반하면” 개인의 행동 자유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자연법 옹호자에게는 정의가 곧 법이다. 정의롭지 못한 법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법실증주의가 발달한 오늘날엔 모든 법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의롭지 못한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은 이가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긍정적인 법을 적합한 잣대라고 생각했다. 법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의롭지 못한 법 역시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여겼다. 다만 인간이 유효한 법을 만들지 못할 때는 자연법을 소생시키려 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오늘날,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에서라면 이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예전엔 부부의 전통적 역할 분담이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여졌다. 아내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남편은 아내의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가졌다.

엘리자베트 젤베르트가 제안한 “남녀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은 혁명적 발상이었다. 심지어 이 제안을 불편해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수 차례의 반대와 사회적 논의를 거치며 젤베르트의 제 3조 2항 헌법은 사회의 고정관념을 바꾸게 된다.

표현의 자유는 뜨거운 감자이다. 얼마전 모 작품을 패러디한 예술가에 대해 분분한 논의가 있었다. 독일 헌법 제 5조 1항은 “모든 사람은 각자 말이나 글, 그림으로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전달할 권리를 가진다” 이다. 이 때 ‘의견’이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판단으로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다.

의견의 대표적 특성은 다양성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좋은 의견만 가져야 하는 건 아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서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목적이다.

총 19가지 질문은 부드러운 흐름으로 전개된다. 챕터 간의 연결고리도 논리적이다.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가는 주제들이고 현 우리사회에서도 논의가 되는 이슈들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다시 법학을 전공했던 저자는 사회제도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양상을 주목한다.

특히 의대생 마르쿠스의 이야기에선 법적인 가족과 생물학적인 가족,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고뇌를 볼 수 있다.

사회가 변화하며 법도 진화하고 있다. 가족관은 많이 달라졌다. 독일 최초의 남남커플 하인츠와 라인하르트, 여여커플 군드룬과 앙겔리카의 혼인서약을 가능하게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의 발효를 보면 머지않아 혼인에 대한 개념 정의가 새롭게 될 것 같다. 유교적 문화바탕에서 살아 온 우리들에겐 다소 생경하겠지만.

헌법재판소에 관한 뉴스가 연일 헤드라인으로 올라오고 있다. 지금처럼 헌법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헌법은 저 멀리 높이 있는 법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알아야 할 법이란 것을 깊이 깨닫는다.

◇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 폴커 키츠 지음.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279쪽/1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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