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은 인간세계에만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 마주친 자연의 섭리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 2016.12.03 03:05

[과학책을 읽읍시다] <15> 최삼규 PD의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편집자주 | 과학은 실생활이다. 하지만 과학만큼 어렵다고 느끼는 분야가 또 있을까. 우리가 잘 모르고 어렵다며 외면한 과학은 어느새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이름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우리 앞에 섰다. ‘공상’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더 익숙한 과학을 현실의 영역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더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로 과학을 방치할 수 없다. 과학과 친해지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는 책 읽기다. 최근 수년간 출판계 주요 아이템이 과학이란 것만으로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과학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싶은 독자라면 ‘과학책을 읽읍시다’ 코너와 함께하길 기대한다. 연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선정한 우수 과학도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X같은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이화여대의 모 교수가 자신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적경고를 하자 전화로 이 같은 폭언을 내뱉었다고 한다. 정씨의 잦은 결석을 지적한 고등학교 체육교사에게는 "교사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2016년 대한민국, 사람들은 '권력'과 '돈'을 무기로 휘두르는 '갑(甲)질'의 한복판에서 분노하고 있다. "돈도 실력"이라며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는,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함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자연의 섭리와 연결된다. 강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야생의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온 최삼규PD는 이 같은 고정관념에 제동을 건다. 자연은 "초식동물과 육식 동물이 각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강점을 잘 살리면서 서로 균형있게 생존해 나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이며 "갑질하는 강자도 없고 당하는 약자도 없다"고 말이다.

최PD는 한국 최초의 아프리카 야생 동물프로그램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를 비롯해 '라이온 퀸', 'DMZ는 살아있다' 등을 제작해 '한국방송대상' 등 각종 상을 받은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가다.

그는 책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에서 금단의 지역인 DMZ부터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까지 오가며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자연의 섭리를 털어놓는다. 그가 만난 자연은 '갑질'도 재산의 '축적'도 허락하지 않는 세계다.


흔히 치타나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이 '야생의 지배자'라고 생각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서 가장 자주 마주한 것은 바로 사자가 잠을 자는 모습이다. 사자는 한 번 사냥해서 배가 부르면 4~5일 이상 잠을 자기 때문에 사냥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찍어야 하는 촬영팀에겐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치타 역시 시속 112km를 달리는 빠른 발을 지녔지만 사냥 성공률은 30% 정도다. 전속력으로 뛸 수 있는 거리는 600m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는다. 육식 동물들은 최소한의 배고픔만을 해소하기 위해 사냥을 할 뿐 쓸데 없이 사냥하거나 자기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 만약 육식동물이 자지 않고 마구 돌아다니면 초식동물은 불안할 것이다. 초식동물의 개체 수가 지나치게 줄어든다면 생태계의 균형도 깨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진정한 야생의 본모습은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 갈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임을 말한다. 동시에 그는 "여기에 비하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거나 투기를 일삼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우리네 모습은 어떠한가"라고 반문하며 인간의 민낯을 자연의 세계에 비춰본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공명정대하고 평등하게 대해준다. 권력을 쥐고 있다고, 재산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학벌이 좋다고, 가문이 뛰어나다고, 외모가 출중하다고 차별을 하지 않는다."

저자가 마주한 자연의 세계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이 못내 부끄러워진다.

◇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최삼규 지음. 이상 펴냄. 320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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