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세계

머니투데이 이영인 (필명)  | 2016.12.30 06:41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8> 고뇌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AT. 31

더글라스가 자살한 것 같다.

어제부터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래봐야 30분이면 전부 뒤져볼 수 있다.

우리가 조사하지 못하는 곳은 하나뿐이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검은 벽, 블랙필드, 통곡의 벽 바깥쪽.

빌어먹을. 별로 고통도 없었겠지.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저 검은 벽에 뛰어들고 싶다. 모두가 그렇겠지.

그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긍정도, 부정도, 애도도 없다. 다들 넋이 나간 상태다. 그래, 넋이 나갔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혹은 유리다리를 걷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지금은 날라갔지만 처음 시아를 발견하고 온 지구의 축하메시지가 쏟아질 때도 일지에 똑같은 말을 적었었지. 그러나 이제야말로 그렇다.

AT. 33

도대체 이해할수가 없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전부 없는 이런 세상에서 살기도 싫다. 뭔가 생각만 하려면 뱃속이 뜨끈해지고 머리가 띵해진다. 자료를 읽다 보면 뜬금없이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료들을 뒤적이게 된다. 살고 싶다거나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몽롱하게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지금도 귀 위쪽? 혹은 뒤쪽에서 혈관이 쿵쾅거리는 것이 들린다. 그렇지만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다.

오전에 일지를 쓰다 말았다. 일지를 쓰는 도중 돌연히 미친 놈처럼 히스테리를 부렸다. 선원들이 와서 간신히 진정했다. 아까 여기에 순수한 의문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아니야, 순수한 게 아니야. 이건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건 분노다. 아까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화가 났던 거야. 왜 이 꼬라지가 났는지도 모르고 죽기가 너무 억울한 거지. 그래서 밝혀내고 싶은거야.

시아의 구동원리를. 이 병신같은 시간이동의 구조를.

밖에 나가서 블랙필드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왔다. 그러다 오열을 했는데 다행히 선원들에게는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볼썽사나운 얘기이니 더 적지는 않겠다. 그래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요 몇일간 구상한 것을 적는다. 시아가 어떻게 시간을 역행하는지에 대한 구상이다.

먼저 ‘완벽한 역행’을 가정해보자.

디지털 동영상을 한번 생각해보자. 떨어져 깨지는 컵을 찍은 영상을 반대로 재생하면 알알이 깨진 유리 파편은 하늘로 치솟아 한데로 합쳐진다. 그 안에 음료같은 것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허공으로 떠올라 재생된 잔에 담겨야 한다. 그것이 '완벽한 역행'이다.

생각해보면 시아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때 우주의 모습이 그럴 것만 같다. 이런 세계는 우주의 인과율, 그러니까 물리적 법칙이 완전히 뒤바뀐 세계이겠지. 중력은 서로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밀쳐내고, 분자들은 서로를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합쳐지려 하고, 에너지는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흡수된다.

얼핏 가능해 뵈기도 한다. 만일 우주에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인지할 수도 없다. 뇌라는 것 자체가 시간이 정방향으로 흐를 때나 제대로 작동할 테니까. 시간과 물리법칙이 거꾸로 흐른다면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화학적 신호가 지금과 같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거꾸로 가는 세계에서는 사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우리가 발명한 기계들도 시간이 역방향으로 흐른다면 죄다 먹통이 될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완전히 거꾸로 가는 세계가 존재하고, 여태껏 우리가 인지를 못하던 것일지도 모르지.

허나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옛 석학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해 놨다. 분자나 에너지가 확산되지 않고 합쳐지는 것은 열역학 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하여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설령 우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말이다. 태풍이 방을 어지럽힐 수는 있어도 정돈하지는 못하는 것이니까.

그래, 열역학 법칙, 그 중에서도 제 2법칙. 업계인들은 학생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놈이고 물리학의 토대이기 때문에 가장 처음 배우는 내용이다.
열역학 2법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이동하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2. 열은 100% 일로 전환될 수 없다.

조금 비약은 있겠지만 간단하게 이야기기하자면 이런 얘기다. 수조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미지근한 물이 된다. 그러면 수조 안의 모든 장소는 온도가 동일해질 것이다. 이것을 열평형이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미지근해진 물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뜨거운 물과 찬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다시 뜨거운 물과 찬 물로 나누려면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 한다. 사람이 물을 반반씩 나누어 하나는 데우고 하나는 얼리는 식으로 말이지.

우주도 비슷한데, 우주에도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열평형상태가 되면서 모든 우주의 온도가 동일해진다. 마찬가지로 아무 이유도 없이 역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한 것이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라 함은 무질서도, 혹은 균질화도이다. 앞서의 비유에서 열평형에 점점 가까워지는 상태는 균질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우주의 상태가 점점 균질해지는 것이, 수조의 온도가 점점 균질해지는 것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뜻이 된다.
자연 현상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열역학 2 법칙을 대표하는 말이다.

곤살로에게 들은 설명을 적어보자면, 우리가 돈이 있으면 정부는 무조건 얼마를 세금으로 떼어간다. 돈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벌 때나 쓸 때에도 세금을 매긴다. 소득세, 소비세, 취득세 등 온갖 명목으로. 그런데 우주가 하는 짓거리도 똑같다는 내용이다. 우주는 돈 대신 열을 떼어간다. 열이란 건 좀 더 복잡하지만, 대충 얘기해서 에너지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물질이라 보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어떤 종류이건 에너지가 필요하다. 먹고, 배터리를 충전하고, 발전소를 돌리는 것이 전부 에너지를 획득하는 과정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매 순간순간마다 우주가 조금씩 세금조로 뜯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뭔가를 에너지를 만들고 쓰는 과정에서 소비세나 취득세를 또 떼어간다.

그러니까 석유가 100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가만 놔둬도 조금씩 에너지가 소멸된다. 그러니 시간만 지나도 100의 에너지는 90이 되어 버린다. 거기다가 우리가 그걸 이용해 전기를 만들면 한 80의 에너지만을 취득하게 되고, 그 전기로 기계를 돌리면 70어치의 에너지밖에 돌릴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언제나 100이 될 수가 없다. 우주가 우리를 언제나 엿먹이기 때문에.

이렇게 매 순간순간 온갖 핑계로 뜯기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열은 언제나 처음 가졌던 것보다 적으며, 처음 가졌던 열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법칙의 요지이다. 아주 깡패같은 놈이다.

바로 이 때문에 앞서 이야기했던 '물리학 법칙이 뒤바뀐 세계'가 불가능한 것이다. 뭐, 아예 물리 법칙이 다른 우주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빅뱅으로 생겨난 우리 우주에서는 불가능하다. 빅뱅으로 인해 우주는 확장하게 되었고 이 확장이 우리 우주의 상태와 물리 법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주적 대세가 뒤집히지 않는 한, 우리는 이런저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이 법칙 때문이다. 태양이 결국 죽게 되는 것도, 영구기관 따위가 불가능한 것도,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이동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항상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에. 시간이 역으로 흐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역재생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주가 그간 갈취해간 열을 토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깨진 유리잔을 붙이고, 찬물과 더운물을 세심하게 갈라서 따로 보관하며, 에너지를 융합해서 석유로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이런 세상이면 생명은 가만히 있어도 자라나겠군.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열역학 2법칙을 무시하는 이야기이며 시공간을 어떻게 돌려본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다.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우주에 끝없이 에너지를 공급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물을 이전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신이 움직여서 우주 전체를 재배열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시간을 역으로 거슬러 간다는 것은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정신나간 일이라는 얘기다.

내가 아는 한, 그리고 현대물리학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시아가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어도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설명이 되는가?

몇 가지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긴 했는데, 근본적인 물리학 법칙을 부정하지 않고서야 택도 없는 것들이다. 아니지, 이론이 아니라 헛소리에 가깝다. 근거가 하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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