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공무원이 쓴 '아버지와 나' 신해철 노래와 ‘이란성 쌍둥이 소설’

머니투데이 천상희 편집위원 | 2016.06.26 07:52

[MT서재] ‘아버지와 나’…노래 보다 더 두렵고 무자비한 감동의 우리시대 아버지 평전

“자식은 부모 마음을 모른다. 아버지를 아는 아이는 현명한 아이다.”

서양 격언이다. 남달리 똑똑하거나 영리하지 않으면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기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무지하고 어리석은 아이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 보면 아버지를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부모경험이 최고라는 것이다. 자녀 때문에 애간장을 녹여 보고 가장이라는 중압감도 느껴봐야 진짜 아버지가 된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말은 이래서 더 공감이 간다.

“언제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 이제 아버지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본문 중에서)

그렇다. 아버지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게 될 나이가 되면 가장이 된다는 게 누구나 두렵다. 아버지가 되어 보면 그 짐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려면 직접경험이 최고이지만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인생스토리도 좋은 인생수업교재다. 이런 맥락서 볼 때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와 신해철의 노래 ‘아버지와 나’는 아주 적절한 교재가 아닌가 한다. 특히 대학서 철학을 공부한 신해철의 노래 가사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아버지 철학’은 깊고 울림이 아주 크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중에서)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먹먹한 가사에 눈물이 저절로 나는 고통스러운 감동에 휩싸인다. 천재 뮤지션답게 그의 가슴 깊숙이 묻혀 있던 아버지가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묻혀 있던 아버지들까지 함께 불러낸 수작이다.

김정현의 경우 지치고 버림받은 아버지에 대한 자화상이라면 신해철의 경우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대중에게 화두를 던진 자기 반성문 혹은 처자식 때문에 ‘스타일’을 구긴 영웅을 위한 헌사라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버지는 본인에게 어쩌면 두려움이며 동시에 그리움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은 두려움과 그리움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배중섭의 소설 ‘아버지와 나’와 신해철의 노래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더 나아가 작가는 노래를 듣고 영감을 얻어 집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소설과 가사라는 장르만 다를 뿐 아버지 원형에 대한 메시지는 똑같다고 본다.

굳이 다른 점을 꼽으라면 소설 ‘아버지와 나’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강도가 조금 더 세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는 김정현과 신해철의 작품에는 없는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화해의 과정이 큰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 역시 기자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배중섭이 내놓은 소설 ‘아버지와 나’에서 우리는 신해철의 노래 가사보다 더 두렵고 무자비한 감동과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켜켜이 쌓인 시대의 소명과 가장의 책임감을 온전히 짊어지고 살아왔던 아버지의 어제가, 그와 또 다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오늘의 ‘나’와 애증으로 얽히고 충돌하면서 작가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작가는 나와 오버랩 된다. 시나브로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존재론적 질문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소설 속 작가의 아버지는 요즘 말로 흙수저다. 그것도 온전한 흙수저가 아니라 불량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최악이다. 일찍 머리가 깨인 그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빵장사를 하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교도관이 된다.
소설 속 작가의 아버지는 요즘 말로 흙수저다. 그것도 온전한 흙수저가 아니라 불량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최악이다. 일찍 머리가 깨인 그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빵장사를 하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교도관이 된다.

교도관 시험 때 답안지에 혈서로 각오를 쓸 정도로 열정이 남달랐던 작가의 아버지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엄격함과 권위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그의 이런 강직하고 빈틈없는 삶의 자세 때문에 작가는 아버지를 오해도 하고 마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잿빛 세상에서 살았다. 교도소 잿빛 날카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다. 아버지의 날카로움은 어머니와 나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조금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110쪽)

“아버지는 아버지의 높고 빛나는 천하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맨 처음 찾았던 잿빛 교도소가 당신의 천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아내와 애가 넷이나 딸린 남자가 어떻게 현실 세계를 버리고 전혜린의 그 자유를 찾아 떠나갈 수 있었겠는가! 아니, 겨우 중졸에 불과한 교도관이 남의 집 머슴을 조부로, 또 매일의 도락에 겨운 한량을 부친으로 둔 현실에서 어찌 감히 ‘대망’의 천하를 넘볼 수 있었겠는가!”(189쪽)

작가는 이런 숨 막히고 서슬 퍼런 아버지에게 달아나려고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심리적 가출’을 감행하고, 한 때는 가장의 탈선에 삐딱한 시선도 보낸다. 가능한 아버지의 눈이 닿지 않는 세상, 집 밖의 세상에서 나름 자유를 즐겼다. 하지만 집밖에서의 자유는 중학교에 진학 후 “조금만 더 노력해서 공군사관학교에 가라”는 아버지 한 마디에 없어진다. 이렇게 반복된 ‘심리적 가출’은 성인이 된 후에는 물론 아버지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도망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오히려 아버지와 대면한다.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나를 이 돌 비렁땅으로 무자비하게 밀어 떨어뜨려 놓고서 그저 나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내 이 고통과 울음은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아픔 속에 이제 혼자 버려졌다는 나의 끔찍한 두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내가 넘어야 할 언덕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였다.”(129쪽)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아버지가 죽은 후 물리적·심리적으로 가장 멀리 도망갔는데 아버지의 참모습을 본 것이다. 유학시절 완전한 절망의 고통 속을 헤매고 있던 때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똑같은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양극단에서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는 순간 두렵기만 했던 아버지는 그리움으로 바뀐다. 작가는 그때부터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묵묵히 개척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 추적의 결과물이 이 책이 아닌가 한다.

“나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작가의 마지막 외침은 아들로서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한 동시에 자신도 아버지처럼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묵묵히 살아가겠다는 맹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가 김영현의 서평은 이 책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우리 문학에서 아버지는 영원한 화두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품고 나아가는 강이라면 아버지는 언제나 내 존재의 변방에 서성이는 그림자요, 범접하기 어려운 산이다. 그런 아버지는 ‘나’에게 어쩌면 두려움이며 동시에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배중섭의 ‘아버지와 나’는 그런 아버지라는 존재가 지닌 원초적인 외로움과 고뇌를 보기 드물게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학이 자기 시대의 기록이자 고백이라면 작가 배중섭은 아버지의 일생을 관통하는 잿빛의 모습을 흥미롭고 사실적인 문체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있어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배중섭의 소설과 신해철의 노래는 ‘이란성 쌍둥이’다. 두 작품의 아버지상 혹은 아버지 DNA가 같다는 이야기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며 반항하면서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 자식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 연민, 존경과 그리움 등 성장하면서 그때 그때마다 느낌 감정을 두 작품 모두 순차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엮었다.

작가 역시 이 책은 내 아버지의 평전(評傳)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들의 평전이 되었다. 아니, 우리들 자신의 평전이 되었다며 글을 마쳤다.

◇ 아버지와 나 =배중섭 지음, 가디언 펴냄, 408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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