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보부상의 손자', 박용만의 가벼운 발걸음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 2016.03.04 06:03

편집자주 |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박용만 (주)두산 회장이2010년 강원도 장평-진부 구간 트래킹을 마치고 임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2005년 6월.
서울 한 호텔 예식장에서 열린 박용만 당시 두산그룹 부회장의 장남 서원씨 결혼식. 혼주가 앉은 헤드테이블에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앉았다. 같은 테이블에 먼저 앉아 있던 재계와 친지 하객들의 표정이 순간 얼어 붙었다. '아니 왜 저 사람이...' 이런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어색한 분위기였다. 박부회장이 손가락을 입에 댔다. '쉿, 내 손님이에요...'

그는 작년 12월30일 김근태 의원 추모식에도 참석했다. 사회 '통념'상 대한민국 재계순위 11위 총수의 존재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추도사를 해달라는 주최측 요청에도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건지, 정치적 부담이 있었던지) 마이크를 사양했던 안철수 의원과 대조적으로 그는 추도사를 통해 고인과 함께 했던 시간을 되새겼다.

고 김근태의원은 박회장의 경기고 선배이긴 하지만, 학교때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을 박회장은 '근태형'으로 이어갔다. 부인 인재근씨도 그에겐 '형수님'이다.

좀 특이한 '재벌 총수' 박용만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김근태 의원 이야기를 했지만, 그가 진보 정치인 김근태까지 두루 인맥을 관리하는 '마당발 기업인'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혹자는 그가 나중에 정치하려고 한다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기업하다가 정치에 나섰다가 치도곤을 당한 정주영 김우중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박용만 회장을 아는 사람은 그가 정치를 할 가능성은 1%도 안된다고 말한다. 박회장은 김의원의 '친구'이긴 했지만, 정치 성향으로는 야권과 거리가 멀다(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민생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사람이 미래'라고 늘 말하는 박회장은 김근태를 만나듯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지인들을 대한다. 대기업 총수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언론과도 말을 '트고' 사는 사람이다.

지난해 두산의 한 젊은 임원이 암으로 별세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뛰어다니던 촉망받던 임원이었다. 그는 상가에 연이틀 문상해 오래도록 머물렀다. 투병 기간이나 이후 회사 측이 할 수 있는 배려를 한 것으로 유족들에 대한 상사의 미안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총수의 연이틀 문상 소식이 직원들에게도 전해졌고, 유족들에게도 여러모로 큰 힘이 됐을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상가, 특히 배우자상, 자녀상은 꼭 가려고 한다. 본인상은 허,,,참"
연초 한 가슴 아픈 상가에서 만났던 그는 이렇게 말을 흐렸다.

경영에서도 '사람'을 앞에 두고자 하는 건 그가 7년간 공들인 '두산 웨이(WAY)'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는 그에게 부끄러운 해였다. 20대 신입사원들조차 '명예퇴직'대상으로 구조조정을 한 비정한 기업인으로 뭇매를 맞았다.
"경기가 좋아지면 신입사원을 뽑기보단 명퇴로 나간 직원들을 뽑으라고 이야기들을 해뒀다" 그는 구구절절 변명하기보단 한숨을 내쉬었다.

"밥캣에서도 그렇게 했다. 거기 직전 주인이 '팔겠다 팔겠다' 공언하면서 경영을 했던 탓에 1000여명이 짐을 싸서 나갔는데, 내가 거기 직원들 만나러 가서 '나간 직원들 우선 뽑겠다'고 하니까 현지 직원들이 옛 창업자 사장이 돌아온 거 같다고 기뻐하더라. 실제로 미국 시장이 좀 좋아지면서 400명 정도 불러왔다"


소주 한잔 힘을 빌어 하는 말이지, 공식자리에서 밥 캣 직원들의 복직 스토리를 내놓고 밝히진 못한다. "나는 젊은 애들 내보내는 나쁜 사람인데..."라는 말 뒤에는 한편으론 앞뒤 사정 제대로 안 보고 몰아치는 인터넷 여론에 대한 실망감도 스쳤다. 그렇지만 '내 탓'의 경계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 "몇사람이 불만을 이야기하면 그사람들 잘못일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회가 잘못된거다. 우리 책임이다"

박 회장이 2일 '갑자기' 큰 조카 박정원 회장에게 그룹 회장 자리를 넘겨줬다. 회장 자리를 그만두는 당일에는 두산 인프라코어 공작기계 부문 매각까지 마무리지었다.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고, 내수 소비재 기업이던 두산을 글로벌 자본재 기업으로 키워낸 박회장이지만 지금 두산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글로벌 경기 탓만 할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경영을 잘못 했다. 건설기계 세계시장의 30%가 무너지고 중국시장 절반이 빠지더라도 버틸수 있게 미리 리스크를 분산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는 박용만의 사퇴를 '빅 배스(Big Bath)'라고 표현했다.
후임자에게 부담이 될만한 부실을 최대한 처리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욕 들을 걸 작년 한해에 다 먹었다.
그룹의 핵심동력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끝까지 책임지고 턴어라운드를 시켜야 할 '책임'이 그의 앞에 아직 남아 있다.

재계 서열 11위 '120년 기업' 수장의 자리를 3년만에 내놓기가 쉬웠을까.
그는 보부상의 손자다. 보부상에게는 발길 닿는 곳이 사업장이요 삶의 터전이다. 할아버지 박승직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돈을 모았고, 그 피같은 돈을 독립운동에도 선뜻 내놓았다. 어제 자리를 내놓고 동대문 두산타워 건물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도 할아버지만큼 가벼웠기를 바란다.

그는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 위해 틈만 나면 길을 떠난다.
2004년 두산의 출발인 종로 배오개에서 길을 떠나 구간을 쪼개 해남 땅끝까지 걸었다. 2년 동안 32차례에 걸쳐 550km에 달하는 여정이었다.
두번째는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공장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330km를 걸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이 걸렸다.
세번째 여정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남도천리'를 주제로 부산역에서 시작, 목포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2년 시작해 지금까지 365km를 걸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140km의 길이 남아 있다. 길은 거기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떠날 준비가 돼 있는 사람, 그리고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발걸음은 늘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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