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밖 과학]'암 탐지견·암 판독 비둘기' 명의가 따로 없네

머니투데이 이성규 객원기자 | 2015.12.08 07:20

<28>냄새 탐지 훈련견, 환자 소변 표본으로 갑상선암, 양성 종양 여부 88% 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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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들의 집단 지성을 활용한 결과, 유방암 조직검사 영상에서 99%의 정확도로 암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사진=morgueFile free photo<br>


영국 스태포드셔에 사는 스테파니 두비라는 50대 여성이 기르는 고양이 3마리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2월부터였다. 갑자기 주인의 배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혀로 핥거나 발로 콕콕 찔러대는 행동을 했던 것.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드는 고양이들의 이상 행동에 스테파니는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물론 고양이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진단으로서, 당시만 해도 그녀는 몸의 불편함이나 건강상 이상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진단 결과는 놀라웠다. 암의 일종인 복막위점액종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이 질병은 상태가 악화되기 전까지는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방치했을 땐 충수 및 난소 질환과도 연관이 있어 후유증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장 수술을 한 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고양이 덕분에 암을 발견하고 목숨을 구한 사례로 올 초에 영국 '미러' 등 현지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300만 개 이상의 후각 신경을 가진 개들이 암을 발견한 사례는 더 많다. 미국 뉴욕에 사는 50대 여성은 생후 4개월 된 반려견 '트로이'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가슴에 코를 비벼대며 냄새를 맡는 행동을 수상히 여겨 병원을 방문했다.

진단 결과 그녀의 가슴에서 길이 3㎝의 악성종양이 발견된 것. 그녀는 즉시 유방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 유방암을 완치했다. 미국 애견협회는 트로이를 ‘영웅 견공 콘테스트’에서 1위로 선정했다.

개의 후각능력을 통해 암 진단을 연구하는 영국의 자선단체 ‘메디컬 디텍션 도그스’의 대표 클레어 게스트 역시 반려견 덕분에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자선단체의 대표를 맡게 된 케이스다. 이 단체에 소속돼 암 냄새를 맡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루시'라는 이름의 탐지견은 약 95%의 정확도로 방광암 및 신장암, 전립선암 등을 찾아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질병에 걸린 동료 판별해 멀리하는 습성

동물들의 암 탐지 능력을 최초로 보고한 것은 1989년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병원 소속의 의사들이었다.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랜싯'에 게재된 그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반려견이 주인의 다리에 생긴 점의 냄새를 계속 맡았는데, 진단 결과 그 점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초기 단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후 탐지견을 이용하여 흑색종, 방광암, 폐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진단하는 방법들이 각종 의학 저널에 게재되었다. 또 생쥐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하게 질병을 탐지하는 능력이 발견됐다. 생쥐들이 이런 능력을 지닌 이유는 질병에 걸린 동료를 판별하여 멀리하거나 건강한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물의 암 탐지 능력에 대한 연구 및 기술의 상용화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개의 후각을 이용해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가운데 연구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물의 암 탐지 능력에 대한 연구 및 기술의 상용화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개의 후각을 이용해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가운데 연구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암 같은 질병을 냄새로 찾아내는 개나 생쥐 같은 동물의 특별한 후각능력이 분자생물학으로 볼 때 근거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이반 로드리게스 박사팀이 '네이처' 지 온라인판에 게재한 이 연구결과는, 세균 및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염증이 생길 때 세포에서 분비되는 질병 관련 분자들에 반응하는 후각수용체가 생쥐들의 후각계 신경세포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기존 냄새를 맡는 수용체 외에도 질병의 냄새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추가로 존재한다고 보고, 생쥐의 유전체를 철저히 조사해 5개의 새로운 수용체와 관련된 4개의 유전자를 발견한 것. 이 유전자에 의해 코딩되는 단백질을 보유하는 신경세포는 서비기라는 뇌의 하부에 위치하는 후각계의 일부에 존재했다. 이 부분은 뇌의 감성중추인 편도에 직접 연결되어 페로몬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본에선 암 탐지견 활용한 암 검진 시험 도입

동물들의 암 냄새 탐지에 대한 분자적 근거가 제시된 이후 관련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3월에 개최된 미국 내분비학회 97차 연례회의에서는 아칸소대학 연구팀이 냄새 탐지 훈련을 받은 개가 환자의 소변 표본으로 갑상선암인지 아니면 양성 종양인지의 여부를 88% 확률로 식별해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오번대학 수의대와 협력해 이 연구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니혼의대 연구팀은 지바현 가도리시와 공동으로 올 가을부터 암 탐지견을 활용한 암 검진을 시험 도입했다. 암 검진을 받는 사람 가운데 희망자를 대상으로 암환자의 소변 냄새만으로 암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훈련된 탐지견 검진을 실시해 암환자 조기 발견 여부를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비둘기의 시각을 이용해 조직검사 영상에서 암을 판독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비둘기는 5가지 색깔을 감지하는 등 인간과 거의 비슷한 시각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UC 데이비스 및 아이오와 대학의 공동 연구팀은 16마리의 비둘기를 컴퓨터 화면이 설치된 박스 안에 넣고 유방암의 조직검사 영상을 보여주며 1개월 동안 훈련시킨 결과, 비둘기들이 악성과 양성 여부를 약 80%의 정확도로 판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80%는 인간 전문가들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그런데 비둘기들의 집단 지성을 활용한 결과, 놀랍게도 정확도가 99%까지 향상되었다는 것. 동일한 조직검사 영상을 여러 비둘기들에게 보여준 후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인간 전문가와 대등한 수준이며, 신뢰도 면에서는 컴퓨터 자동판독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둘기들의 실험 조건이다. 연구진은 비둘기들이 사람의 시선을 읽지 못하도록 박스 안에 넣고 훈련시켰으며, 비둘기들이 암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상의 크기와 색깔을 수시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이는 암 탐지 실험에 사용된 동물들이 연구진으로부터 무의식적인 암시를 받을 수 있었다는 이전의 지적을 의식한 실험 조건이다.

앞으론 개들에게서 소변 냄새만으로 암 여부를 조기 검진 받고, 비둘기로부터 조직검사 영상을 판독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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