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학]망원경 이름붙이기

머니투데이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 2015.10.02 03:10

<6>갈수록 커지는 망원경에 과학자들의 '통큰 장난'도 점입가경

Very Large Array/사진=미 국립전파천문대

슈퍼문에다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었지만, 개기월식까지 겹쳤던 추석 연휴가 끝난 수요일 아침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이 쓴 '슈퍼문은 없다'라는 칼럼을 읽었다. "슈퍼문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과학자들은 이런 호들갑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출처 불명의 '슈퍼문' 운운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꼴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맞는 말이다. 슈퍼문에서 시작해서 멸치에 이르는 풍자가 맛깔나고 멋진 칼럼이었다. 이정모 관장이 칼럼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호들갑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란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전파망원경의 이름은 'Very Large Array'다. 우리말로는 '아주 큰 배열' 정도 되겠다.

직경 25m짜리 안테나 27대로 이루어진 간섭계 전파망원경이니 '베리(Very, 매우)'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인도에 있는 45m짜리 안테나 30대로 이루어진 전파간섭계의 이름은 'Giant Metrewave Radio Telescope'다. 이번에는 '자이언트(Giant, 거대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멕시코에 있는 50m짜리 단일구경 전파망원경의 이름은 'Large Millimeter Telescope'다. 이 정도면 '큰(Large) 것'에 대한 강박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망원경에 이런 수식어를 붙이는 전통은 광학망원경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심해진다.

직경 8.2m짜리 망원경 4대와 1.8m짜리 보조망원경 4대로 이루어진 칠레에 있는 유럽남천문대의 광학망원경의 이름은 'Very Large Telescope'다. 우리말로 하면 '아주 큰 망원경'이다.

8.4m 망원경 두 대가 쌍안경처럼 붙어있는 망원경의 이름도 'Large Binocular Telescope'다. 그야말로 '큰 쌍안경'이다.

2025년 완공 예정인 유효구경 24.5m짜리 광학망원경의 이름은 'Giant Magellan Telescope'다. 우리나라도 10%의 지분을 갖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완성될 8,4m짜리 광시야 탐사망원경의 이름도 'Large Synoptic Survey Telescope'다. 'Large'나 'Giant' 정도는 이제 큰 망원경에 필수적으로 붙여야 할 훈장이 된 것 같다. 음식점 간판마다 붙은 '원조' 딱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앞으로 만들어질 예정인 다른 광학망원경들의 이름은 그야말로 진짜로 점입가경이다. 유럽남천문대가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칠레에 건설하고 있는 직경 39.3m짜리 망원경의 이름은 'European Extremely Large Telescope'다. 이제 '극히(Extremely)'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아직은 기획 단계에 있는 망원경의 이름은 더 가관이다. 유럽남천문대에서 구상하고 있는 직경 100m짜리 광학망원경의 이름은 무려 'Overwhelmingly Large Telescope'다. 드디어 '압도적인(Overwhelmingly)'이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다음에 만들 망원경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만 할까. 사용 가능한 단어 중에 언뜻 떠오르는 것이 '울트라(Ultra, 극도로)'다. 아참 문제의 '슈퍼(Super, 대단한)'도 있었구나.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Overwhelmingly Extreme Ultra Super Giant Large Telescope' 이런 이름은 어떨까.

과학자들은 보통 호들갑을 떨지는 않지만 이름을 갖고 통 큰 장난을 치기는 한다. 지구 보다 몇 배 큰 외계행성을 '슈퍼지구'라고도 부르니 '슈퍼문'이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다.

은하단 보다 더 큰 은하단을 지칭할 때도 'Super Cluster'라고 쓴다. 우리말로는 '초은하단'으로 쓴다. 이보다 더 큰 것은 'Super Super Cluster'라고 한다. '초초은하단'이랄까. 더구나 '극히'나 '압도적인' 같은 낯 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망원경 이름에 붙이는 세상이 아닌가.

'슈퍼마켓'도 더 이상 '슈퍼'가 아닌 세상이니 '슈퍼'가 아닌 '슈퍼문'도 추석 선물 삼아 귀엽게 받아주면 어떨까. 그래도 연휴가 4일이니 지속된 '슈퍼추석'이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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