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막으려 헬리코박터균 없앴더니 혈당·기억력 좋아졌다? [한 장으로 보는 건강]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5.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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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막으려 헬리코박터균 없앴더니 혈당·기억력 좋아졌다? [한 장으로 보는 건강]


위내시경 검사에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사실을 통보받는 사람이 적잖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의 이름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위장 내에 존재하는 세균으로 위장 점막에 주로 감염되는데, 세계 인구 50%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균은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위선암·위림프종 등을 유발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위암 발생률이 높은 나라에선 이 균 감염률이 더 높은데, 한국 성인의 55%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습니다. 이처럼 감염률은 높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고, 위암 발생률과 상관관계, 제균 치료 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생길 위험 등으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제균 치료를 시행하는 게 맞는지 학계에선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최근 여러 연구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으며, 위암으로 인한 사망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양성인 건강한 사람, 위 신생물로 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한 헬리코박터 양성 환자를 대상으로 2년 이상 추적 관찰했더니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50%가량 낮췄습니다.

미국에서 1997~2015년 헬리코박터균 검사·치료받은 71만6567명을 대상으로 2018년 12월 31일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제균 치료 10년 후에는 위선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49% 낮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위선종으로 내시경점막하박리술 후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한 경우 평균 5.6년의 추적 관찰 기간 이시성(동시가 아닌, 다른 시기) 위암 발생 위험이 12% 낮았습니다.



위암 막으려 헬리코박터균 없앴더니 혈당·기억력 좋아졌다? [한 장으로 보는 건강]
헬리코박터균을 놔두면 위암, 위장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계질환, 당뇨병, 퇴행성 신경질환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에 나왔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이 촉발한 만성적 감염이 혈관벽 손상 및 죽상판 발생에 영향을 미쳐 죽상경화증 초기 단계에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당 조절에 악영향을,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습니다. 이 균을 제균 치료한 후 당뇨병 환자의 미세알부민뇨가 호전됐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인체의 신경세포에 대한 교차반응을 유도하게 될 경우, 세포성 면역반응 및 체액성 면역반응을 일으켜 신경세포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데, 동물실험에서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뇌의 시냅스 기능을 망가뜨려 인지기능을 줄이는 게 확인됐습니다. 세계적으로 헬리코박터균과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 퇴행성 신경질환과의 연관성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맥길(McGill) 대학 의대 연구팀이 헬리코박터균 감염자 그룹과 비감염자 그룹을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생을 평균 11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그룹은 감염되지 않은 대조군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생률이 11% 더 높았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이 있는 '무증상 보균자'가 제균 치료를 받으면 위암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0년에 발표된 한국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치료 근거 기반 임상 진료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양성인 환자가 철분 결핍성 빈혈, 위선종의 내시경 절제 후 이시성 위암의 발생 예방,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 만성 위축성 위염 및 장상피화생 등이 있는 경우 제균 치료를 권고합니다.

우리나라 헬리코박터 진료 지침에선 소화성 궤양의 병력, 림프종, 조기 위암의 내시경 절제술 후에는 제균 치료를 받을 것을 강하게 권고합니다. 위축성 위염 환자, 위암 가족력이 있는 환자, 일부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는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도움 될 수 있습니다.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통한 환자의 병력, 가족력 등을 고려하고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환자 개인에 맞게 제균 치료를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정심교 기자 [email protected], 도움말=김범진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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