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2교대 근무 폐지의 주역…동료 눈에 서린 핏발 없앤 '이 사람'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2024.05.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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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경찰서장⑩]김상형 서울 서부경찰서장 "직원 행복이 치안 서비스 질 향상으로 직결"

편집자주 형사, 수사, 경비, 정보, 교통, 경무, 홍보, 청문, 여청 분야를 누비던 왕년의 베테랑. 그들이 '우리동네 경찰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행복 가득한 일상을 보내도록 우리동네를 지켜주는 그들. 서울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연일 구슬땀을 흘리는 경찰서장들을 만나봅니다.

김상형 서울 서부경찰서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상형 서울 서부경찰서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된 2000년. 밤샘 근무를 마친 경찰관의 눈에 빨갛게 핏발이 서렸다. 피곤함에 눈을 감은 것도 잠시, 또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밤샘 근무에 나섰다. 이틀간의 당직 근무 뒤 주어진 단 하루의 휴식 시간에도 교육을 받기 위해 경찰서에 나왔다. 몸을 갈아 일하게 하는 이 폐단을 누군가는 끊어야 했다.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은 바로 이렇게 시작됐다.

많은 경찰관은 경찰 개혁이 획기적으로 이뤄진 기간으로 1999~2001년을 꼽는다. 당시 이무영 경찰청장은 "직원들 눈에 핏발은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며 경찰 대개혁을 추진했다. 개혁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100일. 이 기간에 경찰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하나씩 없애기로 했다.



당시 경찰청 기획과 실무담당자였던 김상형 서울 서부경찰서장도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에 투입됐다. 주요 해결 과제로 △2교대 근무 폐지 △시간 외 근무 근절 △과잉 의전 폐지 △감찰 카드 폐지 등이 선정됐다.

김 서장은 "개혁이라고 하면 대부분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기 마련인데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일도 중요하다"며 "경찰이 수사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회상했다.



김 서장은 자신의 일상을 반납했다. 작전 기간 첫째 딸이 태어났지만 1달이 지난 후에야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이 튼 물꼬로 현재 경찰 근무 체계는 3·4·5교대로 바뀌었다. 시간 외 근무가 금지됐고 승진을 앞둔 직원들에게 족쇄가 된 감찰 카드도 사라졌다.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은 경찰 개혁 역사에서 지금까지도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찰청 인사과로 보직을 옮긴 후로는 '경위 근속 제도' 도입에 앞장섰다. 당시 경위는 근속 승진 대상이 되지 않아 심사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경위 승진을 앞둔 경찰관들은 한창 일할 시기에 책상 앞으로 향해야 했다. 이는 경찰관들의 사기 저하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김 서장은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의 문을 직접 두드리며 경위 근속 승진의 필요성을 알렸다. 내부 경찰관들도 직접 설득했다. 그리고 2006년 마침내 경위 근속 제도가 도입됐다.


경찰 개혁 물꼬 튼 14년 '기획통'…치밀한 분석으로 은평 치안 책임진다
김상형 서울서부경찰서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김상형 서울서부경찰서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경찰의 미래를 위해 앞장섰던 경찰관이 서울 은평구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서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2월 부임한 김 서장은 입직 후 전 계급을 경찰청 기획 부서에서 보낸 '기획통'이다. 기획 부서에서 쌓은 경력만 14년에 달한다.

기획 업무에는 치밀한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은평구는 단독 주택과 연립 주택이 많은 전통적인 주거지역으로 주거지역의 특성상 타 경찰서보다 가정폭력·아동학대 등 여성·청소년 관련 범죄 비중이 높다.

김 서장이 취임 이후 최근 5년간 112신고 데이터를 분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범죄 예방'을 위해서다. 요일별·월별·시간별·계절별 범죄 발생 장소를 정리해 취약 지역을 분석해 순찰을 하고 있다.

은평구는 출·퇴근 시간 교통 혼잡도가 높은 편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비율도 높다. 김 서장은 교통사고 지점 분석부터 나섰다. 사고 발생 지역은 김 서장이 반드시 직접 가서 30분 이상 차량 흐름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점검한다.

범죄 예방과 대응을 위한 틀은 갖춰주되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준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대리기사로 위장해 손님으로부터 금품을 뜯어낸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범인은 흉기를 들고 은평구 일대를 배회하고 있었다.

서부서에 즉시 상황 대응반이 마련됐다. 지역 경찰들과 함께 형사들도 검거 작전에 투입됐다. 35년 경력의 형사팀장이 무전기를 잡고 상황을 지휘했다. 주택가 인근이라 CCTV(폐쇄회로TV)로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았다. 팀장은 CCTV에 보이지 않는 골목까지 다 꿰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결국 범인은 6시간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김 서장은 "서부서는 타 경찰서에 비해 장기 근속자가 많아 관내 지형지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 많다"며 "직원들이 일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은평 관내라면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베테랑들이라 믿고 일을 맡긴다"고 밝혔다.

경찰관들이 '서'로 '부'러워 하는 서부 경찰…지난해 직무만족도 조사 1위 차지
서부서는 지난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서 실시한 직무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사진=최지은 기자서부서는 지난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서 실시한 직무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사진=최지은 기자
서부서는 지난해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서 실시한 직무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평균 대비 9점 이상 높은 점수였다. 경찰관들 사이 서부서는 '서'로 '부'러워하는 경찰서로 불린다. 김 서장은 재임 기간 중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직원 만족도 제고를 꼽았다.

그는 "내부 직원들의 만족이 양질의 치안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며 "일할 맛 나는 경찰서를 만들고 싶다. 경찰관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근무 여건을 만드는 데 힘쓰려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 서장은 매일 청사를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부임 후 2달 동안은 경찰서 전 직원들과 돌아가며 차담회를 진행했다. 지금은 4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도 모두 외웠다.

김 서장은 "나를 두고 친한 옆집 아저씨 같다고 하는 말이 참 기분 좋다"며 "주민들도 직원들도 언제나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서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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