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이노크라스' 한국 본사에서 만난 고준영 희귀질환 디렉터(왼쪽), 이정석 이노크라스 공동창업자 겸 CIO(최고혁신책임자) (가운데), 오백록 CPO(최고제품책임자) (오른쪽) /그래픽=이지혜
소위 '정석' 엘리트 코스를 밟고도 '비인기 종목'을 택한 의과학자들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과학고를 졸업해 의대로 진학, 대학병원에서 내과, 소아청소년과, 안과 등 진료를 봤던 의사(MD)들이다. 이들은 현재 인간의 모든 유전자 서열을 완벽히 분석해 암·희귀질환 등의 진단법을 만드는 의과학자로 변신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이노크라스(INOCRAS) 한국 본사에서 세명의 의과학자들을 만났다.
내과 레지던트 4년 차 시절, 이 CIO는 '희귀질환을 앓는 어린아이의 유전체를 분석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마침 주영석 이노크라스 공동창업자(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가 최초로 한국인의 전장유전체를 해석해 세상에 내놨을 때였다. 이 CIO와 주 교수는 한 달간 분석에 돌입해 희귀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적 실마리를 끝내 알아냈다. 그는 "당시엔 희귀병 환자 1명에게 도움이 됐지만, 언젠간 누구나 유전체를 분석해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의과학자 키워도 '일자리' 보장 못하는 현실… "그래서 시작했다"
오백록 CPO(가운데)는 "연구와 진료를 도무지 병행할 수 없어 교수직을 던지고 이노크라스 연구팀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사진=박건희 기자
이 CIO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이면서, 그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왜, 어떻게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 '의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 디렉터는 "의과학자란 별칭을 붙일 필요도 없이, 양쪽의 현장을 오가며 '차세대 기술력은 어디서 나올까'를 고민하는 연구자"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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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세계 헬스케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은 국내에서 '연구하는 의사'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오백록 CPO(최고제품책임자)는 "의과학자가 학교 밖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애써 의과학자를 키워내도 관련 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이들은 국내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이 CIO는 "그래서 우리가 먼저 산업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과학자의 길에는 장래가 없다지만, 그 '장래'가 되고 싶다. 의과학자의 길을 가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웰컴트러스트 재단의 후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유전체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영국 생어연구소처럼, 언젠가 미래 세대를 위한 연구소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