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레벨의 지정학: 흐려지는 기업과 외교의 경계 [PADO]

머니투데이 김동규 PADO 편집장 2024.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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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총력전'(total war)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쟁이니 외교니 하는 국가의 일은 소수만이 관심을 갖는 부문이었습니다. 국민의 범위가 상위 10%, 30%에 머물렀던 전근대 기간에는 국가들이 전쟁하면 농노들은 언덕 위에 올라가 요즘 사람들이 헐리우드 전쟁 영화 관람하듯 구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특정 영토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풀멤버십을 가진 국민이 된 민주적인 국민국가에서는 영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국가의 일에 동원됩니다. 모든 힘을 동원한 '총력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기업들이 외교와 전쟁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미국 연방하원이 중국계 애플리케이션 틱톡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렇게 소셜미디어 앱조차도 라이벌 국가들 사이에서는 첨예한 갈등 요소가 됩니다. 겉으로 봐서는 무해해 보이는 중국산 앱 틱톡이 미국인들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앱일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포린어페어스 2024년 3월 11일 자 기사는 다시 한번 국가의 대외정책과 기업 사이의 '융합' 현상을 조명합니다. 기업가들이 왜 국제문제를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외교관과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기업을 잘 알아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C레벨의 지정학: 흐려지는 기업과 외교의 경계 [PADO]


1914년 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난감한 요구에 직면했다. 다수의 영향력 있는 지지자들이 미국 무기 제조업체가 유럽 국가들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도록 공개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하거나 아예 유럽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윌슨은 당시 유럽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던 전쟁을 종식시키거나 적어도 완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고, 지지자들의 요구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답변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기 판매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제 권한이 명백할 정도로 부족해, 저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월슨이 대통령으로서 느꼈다고 주장하는 무력감은 평화 시기에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경제활동에 정부의 개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 미국에는 이상하게 들린다.

이를 2023년 12월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과 대조해 보자. 미 상무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기업이 인공지능과 같은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돕는 걸 막기 위한 수출 통제를 설계해 왔다. 레이몬도 장관은 이러한 통제를 교묘하게 우회하려는 미국 기업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했다.



"만약 여러분이 (중국이) AI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칩을 재설계한다면, 저는 바로 다음날 그것의 수출을 통제할 겁니다." 그는 정책가들과 경영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윌슨과 레이몬도의 발언 사이의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어난 변화는 심오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 동안에도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이 가끔 미국 재계를 침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거의 모든 경영자들은 지정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던 탈냉전 세계에서 국가적 이해관계가 개방시장 및 무역 확대와 상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의 경영자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지정학을 뒤흔든 변화는 미국 전역의 C레벨에 영향을 미쳤다. 500명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에서 지정학은 2024년 세계경제와 시장에 가장 큰 위험으로 꼽혔다. 이러한 우려는 부분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계속되는 전쟁, 대만 해협에서의 위기 우려 등 세계적 분쟁의 가속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을 지정학적 무대의 행위자로 만드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지정학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제재와 산업정책에 의존함에 따라 기업들은 점점 더 외교정책의 대상이자 도구가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선으로 삼는 외교정책 중 일부, 예를 들어 회복탄력성 있는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장려나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 늦추기 등은 수천 개의 개별 기업에 의존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미 정부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으며 기업들은 종종 공공부문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있다.

이는 일부 정책가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들은 지정학적 의사결정의 운전석에 앉는 것에 익숙하지, 조수석에 앉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궁극적인 역할이 미국의 국익을 판단하고 보호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관리들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 민간 부문과의 제도화된 협의, 산업 전문성에 대한 재정 지원, 더 나은 경제 정보 등이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는, 정책가들은 민간 부문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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