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든데스' 위기의 SK, 최태원 끌고 최창원 밀고…사업전선 재정비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4.02.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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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체질개선 드라이브/그래픽=이지혜SK그룹 체질개선 드라이브/그래픽=이지혜


"탄소제로 제품이 비싸도 '가치'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제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이천포럼에서 한 말이다. 재계는 친환경 사업을 대하는 최 회장의 진심이 드러난 메시지로 본다. 그저 선의에 따른 사업이 아니라, 미래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할 길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의 4대 미래 사업에 '그린'이 첨단소재·바이오·디지털과 함께 포함된 이유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비전 하에 그린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차전지를 만드는 SK온은 매년 '조 원대'의 투자를 하고 있다. 동박(SK넥실리스), 분리막(SKIET) 등 배터리 소재 사업도 전개하기 시작했다. SK지오센트릭이 만들고 있는 세계 최초 종합 재활용 단지인 울산ARC를 비롯해, SK그룹 계열사의 울산 지역 친환경 투자 계획은 8조원에 달한다. SK E&S는 수소를, SK이노베이션은 지속가능항공유(SAF)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추진한다.

SK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동박(SK넥실리스와 왓슨)과 수소(플러그파워와 블룸에너지)와 같은 중복 투자 문제가 내재돼 있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가 불안해지고, 그린 사업을 하던 계열사들이 일제히 부진한 실적을 보이자 이런 약점이 더 두드러졌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서든데스(sudden death)를, 지난 1월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변화를 촉구했다. 위기 속 쇄신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지난해 12월 그룹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최 의장의 미션은 전체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및 합리화에 맞춰져 있다. 그는 과거 SK케미칼의 섬유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바이오 부문을 키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최 의장은 수펙스 의장에 선임된 이후 각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
SK㈜의 그린 태스크포스(Green TF)도 이같은 맥락에서 구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장용호 SK㈜ 사장이 직접 나서고, 각 계열사에서 50여명의 인원이 모인 TF 특성상 그룹 차원의 아젠다가 논의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린 TF'를 두고는 "그룹 내 그린 사업 포트폴리오와 중복 투자한 사업들의 조정이 이뤄질 것", "계열사들의 역할과 사업의 중요도 등을 판단하게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차전지를 중심으로 한 그린 사업 재편 시나리오가 우선 거론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 비해 후발주자인 SK온은 BYD 등 중국 기업의 거센 도전에도 직면했다. 업황 부진으로 인해 올해 연간 목표를 '흑자전환'에서 '손익분기점'으로 변경했다. 그럼에도 올해에만 7조원이 넘는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배터리 관련 사업이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전 그룹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린 TF'의 결론은 전통적인 의미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업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린 사업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최창원 의장의 스타일도 '냉혹한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있다. SK케미칼의 바이오 사업에 힘을 줬고, SK가스의 사업 범위를 액화석유가스(LPG)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넓힌 것에서 보듯 신사업 추진을 주저하는 타입이 아니다.

재계 관계자는 "최 의장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사업 조정은 '합리화'를 통한 재정비에 가까울 것"이라며 "일정 기간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수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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