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 ETF 시대' 비트코인 투자 쉬워졌다…"변동성은 그대로"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4.01.1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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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일(현지시간) 가상자산(암호화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신청을 승인하면서 비트코인 투자 문턱이 크게 낮아지게 됐다. 업계는 SEC 결정은 가상자산 터줏대감이면서도 여지껏 비주류로 취급되던 비트코인이 명실상부 주류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은 역사적 사건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트코인 ETF로 막대한 자금이 쏟아지면서 올해 비트코인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란 낙관론도 넘친다. 그러나 가상자산 특유의 변동성 리스크까지 사라진 게 아닌 만큼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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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비트코인 살 수 있는데 현물 ETF 승인 왜 중요할까?
가상자산 업계는 SEC의 현물 비트코인 ETF 승인을 환영하고 있다. 암호화폐혁신위원회(CCI)의 셰일라 워런 최고경영자(CEO)는 "현물 비트코인 ETF는 전통 금융산업과 급성장하는 가상자산을 연결하는 다리"라며 "투자자들은 직접 투자라는 기술적 장애 없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미국에선 2021년 비트코인 선물 ETF가 출시됐지만 폭넓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진 못하고 있다. 미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사고팔기로 한 비트코인 파생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만큼 시세를 예측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데다 롤오버 비용(선물 만기일 전에 선물 계약 만기를 연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수익률을 잠식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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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물 ETF는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ETF 운용사는 실제로 비트코인을 구입해 코인베이스 같은 수탁회사에 맡겨두게 된다. 때문에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한다는 건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투자자는 증권사 계좌만 있으면 주식을 사고팔듯 비트코인 ETF를 거래할 수 있다.



지금도 투자자들은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같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직접 비트코인을 살 수 있지만, 지갑이 해킹당한다거나 거래소가 문을 닫는다거나 하는 등의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ETF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 등에 상장되기 때문에 증권사 계좌를 통해 투자할 수 있고 해킹이나 도난 등의 위험 부담이 적다. 때문에 업계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의 등장으로 투자자층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캐나다나 독일 등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가 이미 거래 중이지만 전 세계 돈이 몰리는 미국 금융시장에서의 승인은 시장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의 ETF 시장 규모는 6조5000억달러(약 8500조)에 달한다.

또 업계는 그간 비금융상품 투자 제한을 받던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통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 배런스는 "비트코인이 ETF라는 친숙한 포장지를 입으면서 기관투자자들의 접근이 쉬워졌다"고 평가했다. 비트코인이 앞으로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중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가상자산 플랫폼 제공업체인 앵커리지디지털의 네이선 컬리 최고경영자(CEO)는 CBS에 "현물 비트코인 ETF는 가상자산이 '신생' 자산군으로서의 시대를 끝내고 모든 포트폴리오의 일부가 되는 주류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시 따져볼 점은? 수수료와 유동성
전문가들은 일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고를 때 수수료와 유동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모닝스타의 브라이언 아머 ETF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수수료는 매수자나 보유자에게 가장 중요한 차별화 요소 중 하나"라면서 "비슷한 상품에 같은 돈을 투자하면서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은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수료 깎기 전쟁에 나서면서 투자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트와이즈의 경우 연간 수수료가 0.2%로 가장 낮고, 아크인베스트먼트는 0.21%, 블랙록, 반에크 등은 0.25%를 제시한 상태다. 또 일부는 일정 기간이나 ETF 자산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진 수수료를 아예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조지타운대학 제임스 엔젤 재무학교수는 "단기 투기꾼들에겐 수수료보다 유동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봤다. 유동성이 풍부해 매매가 활발한 ETF의 경우 매수호가와 매도호가 간격이 촘촘하기 때문에 잦은 매매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경우 쉽게 사고팔 수 있게 유동성이 더 중요하단 설명이다.

그레이스케일은 수수료를 다른 자산운용사에 비해 높은 1.5%로 제시했는데 이는 이미 기존 비트코인 신탁을 통해 상당한 유동성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레이스케일은 비트코인 신탁 상품을 비트코인 현물 ETF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했다가 SEC로부터 퇴짜를 맞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업체로 비트코인 현물 ETF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꼽힌다.

'현물 ETF 시대' 비트코인 투자 쉬워졌다…"변동성은 그대로"
"50만달러 가즈아" 낙관론에도…"가상자산 변동성은 그대로" 경고
가상자산 업계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등장으로 투자자층이 확대되면서 막대한 신규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자산으로 발돋움하면서 가상자산 전체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촉진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이는 전반적인 시장 상승 재료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에선 낙관론이 우세하다. CNBC는 10일 "시장 안팎의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추가 상승에 무게를 싣고 있다"면서 "그 범위는 6만달러에서 50만달러까지 천차만별"이라고 전했다. 한국시간 11일 오후 3시20분 현재 비트코인은 약 4만56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여전히 2021년 11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6만9000달러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로 돈이 얼마나 유입될지를 둘러싼 추정치도 엇갈린다. GTS의 레지 브라운 글로벌 ETF 판매 총괄은 블룸버그를 통해 "ETF로 상당한 돈이 들어올 수 있다"면서 "한 달 안에 20억~30억달러가 유입되고 올해 안에 100억~200억달러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재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9000억달러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는 아니다. 반면 올해 비트코인이 10만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스탠다드차타드의 경우 비트코인 현물 ETF가 올해에만 500억~1000억달러 자금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트코인 가격(달러) 5년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비트코인 가격(달러) 5년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
이처럼 엇갈린 전망은 가상자산 특유의 변동성으로 인해 예측이 쉽지 않단 방증으로도 읽힌다. 비트코인의 연간 움직임을 보면 2021년엔 60% 상승했다 2022년 64% 추락했고 지난해엔 150% 넘게 뛰었다.

SEC는 이번 ETF 승인이 비트코인 자체를 인정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날 ETF 승인에 대해 "우리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과 거래를 승인했지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범죄 자금으로도 쓰이는 "투기적으로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은 SEC의 결정에 실망을 나타냈다. 변동성과 시세 조작, 사기 등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현물 ETF를 승인하면서 투자자들을 위험에 노출시켰단 지적이다. 금융 규제 강화를 표방하는 비영리 단체 베터마켓츠는 이날 성명에서 "SEC가 쓸모없고 변동성이 크며 사기 행위가 만연한 자산을 친숙한 투자 수단을 통해 일반 미국인들에게 대량 마케팅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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