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 불안…美 국채시장 변동성, 코로나 이후 3년만에 최고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23.03.1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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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가 표지판 /로이터=뉴스1뉴욕 월가 표지판 /로이터=뉴스1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인 미국과 독일의 국채시장이 글로벌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15일(현지시간) 큰 압박을 받았다.

이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트레이더들의 말을 인용해 호가로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유동성이 미국과 독일 국채시장에서 급격히 감소했다고 전했다.



트레이더들은 가격 스프레드 확대와 체결 속도 저하 등의 어려움이 국채시장에서 옵션, 선물, 스왑 등 파생상품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스위스 대형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가 최대 투자자인 사우디국립은행의 "추가 금융지원은 없다"는 발언에 주가가 24% 폭락하면서 불안감은 더해졌다.



이 같은 금융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국채 수요는 늘어나며 거래량은 급증했다. BMO 캐피탈마켓의 미국 금리 전략팀장인 이안 린겐에 따르면 미국 국채시장의 거래량은 평소의 약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국채 가격도 오르며 이날 10년물 미국 국채수익률은 3.492%로, 10년물 독일 국채수익률은 2.12% 내려갔다.

그러나 국채와 국채 연계 파생상품 시장에서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는 스프레드는 지난주보다 훨씬 더 확대됐다. 트레이더들은 이같은 스프레드 확대가 시장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ICE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이동 지수는 최소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여 코로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시장 폭락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트레이딩 회사인 DRW 홀딩스 LLC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도널드 윌슨 주니어는 은행 위기의 출현으로 "채권 곡선이 극적으로 재조정되고 변동성이 급등했다"며 "이에 따라 매수 및 매도 호가의 규모가 현저히 작아지고 유동성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웨드부시 증권의 경영 이사인 아서 배스는 이날 금리 파생상품과 연계된 옵션 가격이 크게 요동쳤다며 많은 트레이더가 최근 며칠 동안 큰 폭으로 움직인 2년물 국채시장의 변동성을 헤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은 탐욕과 두려움으로 움직이는데 지금은 두려움이 탐욕을 압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인브릿지 인베스트먼트의 멀티애셋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하니 레다는 "국채 트레이더들과 국채 유동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 13일 2년물 미국 국채수익률은 1987년 블랙먼데이 증시 폭락 이후 하루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주 초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에 미국 금리가 기존 전망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주말에 실리콘밸리 은행(SVB)이 파산하면서 금리 전망치가 확 떨어져 국채 가격이 급변한 탓이다.

펜 뮤추얼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지웨이 렌은 채권시장이의 변동성이 이렇게 컸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스왑 스프레드가 최근 며칠 동안 일반적인 규모의 4배 이상으로 커졌다며 "거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전보다 늘었다"고 토로했다.

소시에테 제네럴에 따르면 상품 트레이딩 어드바이저(CTA)와 같은 컴퓨터 기반의 펀드는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보고 국채시장에서 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자산운용사 러퍼의 투자 이사인 맷 스미스는 이처럼 국채를 공매도한 많은 펀드가 국채 가격이 급증하자 "아마도 손절매 기준에 도달해 국채를 매수해야 했을 것"이라며 이같은 포지션의 급겨한 조정이 국채시장의 변동폭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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