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업의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 전략,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일본 수출 규제의 타깃이 되고 있는 SK하이닉스 (160,200원 ▼4,100 -2.50%)의 수장이 '소재 국산화'의 현실을 직접 언급한 점에서 이례적이다. 소재 국산화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솔직한 견해'란 평가도 있다.
그간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납품받아온 스텔라와 모리타 등 일본의 불화수소는 순도가 '트웰브 나인(99.9999999999%)'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나다.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할 때 고순도 불화수소를 써야 불량률을 낮출 수 있어 우리 업체는 오랜 기간 검증된 일본 업체와의 계약을 선호해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축적의 시간과 중소벤처기업 중심 경제구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업계 관계자는 "국내산 불화수소는 일본산 불화수소보다 순도는 떨어지지만, 반도체 생산에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실제 공정에 적용시 불량률 등을 테스트 중"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 박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며 "만약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례는 소재 국산화를 둘러싼 대·중소기업 간 입장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그간 국내 중소 소재·장비업체와 협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본 수출규제 이전에는 품질 관리를 이유로 국산 소재 도입을 꺼려온 게 사실이다.
중기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재 국산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국산 소재·부품을 대하는 대기업의 태도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품질이슈 때문에 국내산 제품을 받지 못한다면 영원히 일본 기업을 키워주며 종속 관계에 있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이 이제부터라도 잠재력있는 국내 중소기업과 손잡고 네트워크 파워를 키워가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기업의 경영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의미가 없다"고 제언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의 신보호무역주의에서는 위기관리 차원에라도 소재 국산화는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본다"면서도 "최 회장의 발언은 모든 불화수소를 쓸 수는 없다는 상식적인 발언이다. 국산화가 무조건 정답은 아니며 불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조치가 필수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