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남자니까 물통 좀 갈아줘"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이영민 기자, 최석환 기자, 유동주 기자, 정한결 기자, 조성훈 기자, 정혜윤 기자, 유승목 기자, 유엄식 기자 2019.07.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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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종합)

편집자주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일부 직업군의 직장 내 괴롭힘 '태움'. 여기서 출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범법을 저지르게 되고, 회사가 이를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과 법률 전문가 견해, 해외사례를 종합했다.

"여 커피 타…남 생수 갈아줘"…이것도 '직장내 괴롭힘'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달 16일부터 시행…수적 우위 이루면 하급자도 상급자 괴롭힐 수 있어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이달 16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두고 각 기업마다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직장내 괴롭힘에는 고정된 성역할 강요부터 암묵적인 집단 따돌림, 업무와 상관 없는 지시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기업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반드시 해야 한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이달 16일부터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직장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통해 각 사업장이 체계를 마련하는 걸 돕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뿐만 아니라 근로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원청-하청 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 사업장 안이 아니더라도 메신저, SNS 등의 괴롭힘도 해당된다. 아울러 △직장 내 지위·관계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의 요소가 모두 갖춰져야 인정된다.

지위의 우위는 직접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회사 내 직급, 직위상 우위성이 폭넓게 인정된다. 같은 직급이더라도 맡은 역할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뉠 수 있다. 관계의 우위는 나이·학벌·성별·출신 지역 등으로 다수 집단이 구성될 때 이들이 우위에 선 것으로 본다.

노조나 직장협의회 구성원 여부, 감사·인사부서 소속에 따른 직장 내 영향력, 정규직 여부 등도 관계의 우위로 규정된다. 여성에게 커피를 타오라거나, 남성에게 생수 물통을 교체하라는 등 고정된 성 역할에 기반한 지시를 강제로 하는 것도 괴롭힘에 해당한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것은 △개인적 심부름 지시 반복 △근로계약서에 나온 업무와 무관한 지시 반복 △폭언과 욕설을 수반한 업무지시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배제와 집단 따돌림 등이다. 다만 사내 휴게·운동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별 근로자간 발생하는 사적 분쟁 등 업무와 관련 없는 갈등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피해 진단항목과 일본·호주 등의 매뉴얼을 토대로 사례를 제시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고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에서 차별하는 것도 괴롭힘이다.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에 대하여만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줘도 괴롭힘에 해당한다. 반대로 일을 거의 주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휴가나 병가, 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서도 안된다.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의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만을 지나치게 감시하거나, 사적 심부름을 지속적으로 지시해도 안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하고,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괴롭힘이다.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하는 행위,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하는 것, 온오프라인 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해도 안된다.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해도 안된다.

한 업체 임원은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직원에게 전에 담당하던 창구 수신업무가 아닌 창구 안내 및 총무 보조업무를 주고, 직원을 퇴출시키기 위한 따돌림을 지시했다.

이후 책상을 치우고 창구에 앉지 못하게 했으며, 그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퇴사시켰다. 이러한 경우는 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하고,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을 동일 직무에 복귀시켜야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으며, 책상을 치우는 행위 등은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행위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선배가 후배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반복해 말하면서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 "술자리를 아직도 못잡은 사유서를 써와라" 등의 발언을 한 것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선배라는 우위를 이용해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업무상 지시에 따른 사례는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한 의류회사 디자인팀장은 조만간 있을 하계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소속 팀원에게 새로운 제품 디자인 보고를 지시했다. 디자인 담당자가 수차례 시안을 보고했지만 신제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완을 계속 요구했고 이로 인해 디자인 담당자는 업무량이 늘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부는 이 경우 직속관리자라는 지위를 이용했지만 신제품의 디자인 향상을 위해 부서원에 대해 업무 독려 및 평가, 지시 등을 수차례 실시하는 정도의 행위는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그 양상이 사회통념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일반적인 인사상 불이익도 괴롭힘과는 거리가 멀다.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승진하지 못한 한 업체 매니저가 낮은 실적에도 승진을 위해 필요한 A등급 인사고과를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은 사례는 괴롭힘이 아니라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세종=최우영 기자

'24시간 메신저' 직장 괴롭힘 대표 유형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따돌림·차별·사적지시 등 은밀한 괴롭힘도 징계 대상

[MT리포트]"남자니까 물통 좀 갈아줘"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직장인 A씨는 장시간 노동과 회사 임원진의 언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무리한 업무량 탓에 야근을 하면 임원진은 "능력이 없으니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지"라는 말을 일삼는다. 업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한테 뭘 바라겠냐"는 모욕적인 말도 일상이다.

A씨는 "대표나 임원진의 언행이 비슷하다 보니 사내에 고충을 처리해달라고 말할 곳도 없다"며 "경찰에 신고할 위법 행위는 아닌 것 같고, 혹여라도 했다가 일자리를 잃거나 업계 내 평판이 나빠질까 두려워서 참는다"고 토로했다.

16일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제76조 2)에 포함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법이 시행된다. A씨가 겪고 있는 일처럼 문제 삼기 모호한 사례도 개정안이 시행되면 징계 대상이 된다. 폭력·성희롱·부당노동행위 등 기존 법에 반하는 행위 외에 따돌림·차별·사적 지시 등 은밀한 괴롭힘에도 법 적용이 가능하다.

이 법이 정의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크게는 △폭언·폭행 △모욕·명예훼손 △부당 업무지시 △따돌림·차별 △강요 등 유형으로 나뉜다.

개정안에 맞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나온 직장 내 괴롭힘 예시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실제 사례에 적용해보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24시 메신저'= B씨가 일하는 회사 대표이사는 늦은 밤이나 새벽, 주말 가리지 않고 사내 메신저로 업무를 지시한다. 메시지에 바로 답을 안 하면 '왜 소통이 안되냐'는 짜증이 돌아온다.

△'말로만 휴가' 휴가를 못 쓰도록 영향력=C씨는 휴가를 썼다가 팀에서 쫓겨났다. 회사에서 남은 연차를 소진하라며 지정휴가가 나와서 팀장한테 쉬겠다고 말했더니 '매년 지정휴가 나오지만 쓰는 사람 없다'는 말을 듣고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심부름꾼 전락' 사적용무 지시 = D씨는 임원수행기사이지만 상사의 사택 청소·설거지·요리, 세탁소에 옷 맡기기, 골프장 방문예약, 사모님 관광 안내 등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지시받았다.

△'늦었으면 세잔' 음주·흡연·회식 강요=E씨의 상사는 출장 다녀오느라 회식에 1시간 늦은 E씨와 동료에게 '후래자삼배'(술자리에 늦은 사람에게 3잔 연속 마시게 하는 것)라며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밖에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주지 않음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회사 비품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급하지 않음 △특정 근로자의 업무·휴식 모습만 지나치게 감시 △업무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 △업무와 관련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 등이 새 법이 지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이영민 기자

300개 기업 직장 내 괴롭힘 원인보니…세대차가 문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4대그룹 취업규칙 반영·교육 진행..법시행 관련 조치 마무리 단계

/삽화=김현정 디자이너/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세대 간 인식차, 피라미드형 위계구조, 임직원 간 소통창구 부재, 직장 내 과도한 실적 경쟁, 획일화를 요구하는 문화…'

대한상공회의소가 오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300개 국내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괴롭힘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내용이다. 특히 직장예절이나 개인 시간 등에 대한 세대간 인식차는 전체 응답자의 35%가 지목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생)로 지칭되는 신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X세대와 문화적 마찰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도 "얼마 전 젊은 직원들과 얘기하는데 원치 않는 회식 강요도 괴롭힘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선 법적 조치보다 △수평적 문화 도입 △소통창구 마련 △결과·경쟁 중심 평가제 개선 등과 같이 직장 문화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 기업들이 내린 결론이다.

일단 대기업들은 삼성·현대차 (237,000원 ▼7,000 -2.87%)·SK (182,600원 ▼2,600 -1.40%)·LG (87,600원 ▼1,600 -1.79%) 등 4대 그룹을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조치를 속속 마무리 중이다. 공통적으로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을 반영했으며, 법 위반 시 처리 과정도 마련했다.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와 현대·기아차 (112,000원 ▼1,600 -1.41%),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이노베이션, LG전자 (96,800원 ▼200 -0.21%) 등 주요 계열사별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비롯해 국내 실태와 사례, 대처방법 등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교육을 진행했으며, 익명 상담·신고 채널 등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현대차의 경우 해당 취업규칙 개정을 위해 노동조합과 협의 중에 있다.

기업들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 중인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은 앞서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사례들이 주축을 이룬다. 구체적으론 △신체에 대해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행위 △지속 반복적인 욕설이나 폭언 △다른 직원들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거나 개인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등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합리적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개인 심부름 등 사적인 용무를 지시하거나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조롱하는 행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등이다.

[MT리포트]"남자니까 물통 좀 갈아줘"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중 9곳(93.1%) 이상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한 조치를 끝냈거나 곧 마무리할 예정이다. 세부적인 조치로는 △취업규칙에 반영 △신고 처리시스템 마련 △사내교육 시행 △취업규칙 외 예방 대응규정 마련 △최고경영자 선언 △사내 설문조사 실시 △홍보 및 캠페인 진행 등이 마련됐다.

법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의 우려도 존재한다. 괴롭힘 행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구체적인 적용사례가 많지 않아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종이나 규모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려운 근로기준법의 성격상 법률조문에 괴롭힘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련 판례가 쌓이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명확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법시행 초기엔 기업들도 괴롭힘 행위에 대해 보수적으로 넓게 판단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수석위원은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인 관점을 갖고 괴롭힘 행위 예방과 발생한 사건의 해결, 사건 이후 신속한 원상회복 등을 위한 제도적 절차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

변호사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모호해 혼란 불가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the L] "김영란법 시행 초기처럼 혼란 올 수 있어…가해자 처벌 규정 없어 '노동환경 개선노력'에 의미"

[MT리포트]"남자니까 물통 좀 갈아줘"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에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16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각 직장과 업무 현장에 바로 적용되는 것으로 기존엔 법으로 규제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문제 삼겠다는 시도다. 상사의 갑질 등 근로 현장에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게 주 내용이다.

법 전문가들은 대체로 김영란법(부패방지법)시행 초기와 마찬가지로 각 직장에서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16일부터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제76조 2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이 조항만으로는 해석이 어렵기 때문에 김영란법 매뉴얼을 내놨던 국민권익위원회처럼 고용노동부도 별도 매뉴얼을 발간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양지훈 변호사(법무법인 정상)는 “‘직장 내 괴롭힘’의 추상적 포괄적 규정으로 시행 초기 다소간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소연 변호사(리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이나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 실제 사안에서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에 직장 내 조사와 징계를 맡긴 점도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회사가 직접 조사해 징계 등 조치를 하는 것이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따로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배진석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직장 내에서 인사권을 가진 경영진의 눈치를 보는 다수의 직원이 침묵하고, 과연 회사가 이를 조사해 조치를 한다는 게 가능할 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개정 법률에서 ‘적정범위’라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예견하기 어렵다”며 “무작정 법률 규정을 포괄적이고 엄격하게 만들어 놓으면 요즘 학교폭력사건에서 그런 것처럼 분위기가 안 좋은 직장에선 신고가 남발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노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처벌'을 위한 법이라기보단 직장 환경 개선을 위한 장치라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양 변호사는 "현장에서 무엇이 괴롭힘인지에 대해서 노사 간의 나름의 합의가 더 필요하고 그러한 합의 과정에서 좋은 조직 문화를 함께 만드는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도 "법률 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기업이나 근로자가 입법취지에 맞게 근로관계를 운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종전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령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이나 따돌림을 하라고 돼 있던 게 아니었다"며 "'이 정도면 괜찮다 관행이다 이건 업무의 연장이다'라며 근로자들을 쉽게 보고 괴롭혀온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뒤 회사가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유동주 기자

프랑스는 경영진도 처벌…정신적 괴롭힘도 규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스웨덴 시작으로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직장 내 괴롭힘 규제…일본은 지난 5월 방지법 가결

[MT리포트]"남자니까 물통 좀 갈아줘"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세계 각국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정신적 괴롭힘도 괴롭힘으로 폭넓게 규정하며 형법으로 금지하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는 법안을 가장 먼저 마련한 곳은 북유럽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1980년대부터 이를 논의해왔으며 스웨덴은 1993년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례를 제정, 형법으로도 이를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가해자와 회사 경영진까지 처벌 대상이다. 2년의 징역형과 3만유로(약 4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프랑스는 노동법과 형법을 통해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 해를 끼치는 괴롭힘도 금지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독자적으로 다루는 법은 없다. 다만 차별금지법에 따라 나이, 성, 장애, 인종, 신앙 등과 관련된 괴롭힘은 금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평등법, 괴롭힘 방지법(스토킹 제재 목적), 고용권리법 등 다른 여러 법안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부분적으로 금지 및 예방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 등 3개 주에서는 주정부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시행 중이다.

캐나다 퀘벡주는 2004년 미주권 최초로 직장 내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으며, 캐나다 연방 정부도 2008년 관련 내용을 담은 직업 건강안전규칙을 제정했다.

호주도 2014년 공정노동법을 개정하며 괴롭힘 중재 수단을 갖추고 있다. 괴롭힘 피해자는 공정노동위원회(FWC)를 통해 가해자에게 괴롭힘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법안은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물론, 외주 및 하청 노동자, 교육생, 자원봉사자 등에게도 적용된다.

일본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파워하라(power harassment: 상사의 괴롭힘)'로 불린다. 직장 내 따돌림·괴롭힘 관련 상담이 연간 7만 건을 넘어서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자 일본 의회는 지난 5월 기업의 괴롭힘 방지 조치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가결시켰다. 일본 기업들은 내년부터 관련 상담 센터를 마련해야 하며, 상담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정한결 기자

'직원투신' 악몽 유통업계, 괴롭힘금지법도 선제대응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롯데·신세계 등 유통업계, 노사공동 선언·메뉴얼 배포 등 적극 대응...과거 직장갑질 사고로 대대적 업무문화 개선

전국여성노동조합·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1.22/뉴스1전국여성노동조합·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1.22/뉴스1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고용인원이 많고 감정노동이 대부분인 유통업계는 적극적으로 법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대표적이다. 롯데는 법에 규정된 교육과 사규개정 외에도 직장내 괴롭힘 예방 매뉴얼을 별도로 제작해 배포하고 노동조합과 직장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노사공동 선언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서 올 초 직장내 괴롭힘 근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미니웹툰 형태의 괴롭힘 유형별 사례교육 및 공유 캠페인, 예방 매뉴얼 제작 등을 진행했다.

유통업계의 경우 직장내 괴롭힘에 취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매장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인 데다 매출압박도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실제 유통업계에서는 과거 매출압박에 따른 직원 투신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법시행 이전부터 업무문화 개선작업을 진행해왔고,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자체적인 예방활동을 전개해 도리어 대응이 수월하다는 반응이다.

일례로 롯데쇼핑의 경우 사원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대화방(단톡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단체대화방은 일괄적인 업무지시에 있어서 용이하지만 직원이 휴무일에 메시지를 받을 경우 이를 확인하고 답변을 해야 하는 등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서다.

때론 상사의 메시지가 불필요한 업무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매출이나 영업실적이 언급될 경우 부담감과 함께 직원들간 오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롯데쇼핑 관계자는 "1대 1 메시지라면 몰라도 단톡방은 못 만들게하고 주 40시간제와 함께 PC오프제, 9시 이후 회식자제, 휴무일 등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면서 "이미 법수준 이상의 내부 규칙과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이 4월 배포한 직장내 괴롭힘 방지 매뉴얼/사진=롯데롯데백화점이 4월 배포한 직장내 괴롭힘 방지 매뉴얼/사진=롯데
신세계와 CJ, 대상, SPC, 농심, 하이트진로 등 다른 대기업들도 올 들어 취업규칙 규정 개정과 함께 온오프라인 임직원 교육을 위한 콘텐츠 제작, 임직원 대상 서약식, 가이드라인 배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법시행이후 시행착오와 혼선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장내 갑질을 막겠다는 취지는 동의하지만 괴롭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측면이 있어 억울한 경우나 다툼, 악용사례가 다수 나올 것 같다"면서 "업무성과를 개선하기위한 지시도 위축될 수 있어 직원간 소통이나 업무효율이 상당히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훈, 정혜윤, 유승목 기자

폭언·폭행 ‘사각지대’ 건설현장, 괴롭힘 급지법 해결책 되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대형 건설사들 사규 정비, 건설현장 구조 변화와 맞물려 순기능 기대

서울 한 건설현장 전경. /사진=임성균 기자서울 한 건설현장 전경. /사진=임성균 기자
#2년 전 한 대형 건설사의 수도권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A씨는 근무 중 현장소장이 걸어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앞으로 실업급여나 계속 받아”라는 모욕적인 말도 들었다.

근로자 안전관리가 최우선인 건설 현장에서도 갑질과 괴롭힘은 발생한다.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지만 건설 현장은 근로자들간 소속된 회사가 다르고, 비정규직이 많은 특수한 근로환경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설사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1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맞춰 사규를 정비하거나 기업문화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건설현장 특수성을 고려해 다른 회사나 파견, 용역, 사내하청, 특수고용 근로자들에게도 이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업계 관계자는 “본사보다 현장에서 폭언, 폭행 등 괴롭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은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과거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상급자가 부하 직원을 폭행하고, 원청업체 직원이 하청업체 직원에 부당한 지시나 갑질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십수 년 전 중동 플랜트 현장에 파견됐을 때 상사에게 몇 번 맞았다”고 했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중장비를 동원하는 위험한 작업을 하는 날엔 더 긴장하라는 의미인지 몰라도 큰소리로 욕하는 관리자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장 분위기가 달라져 이런 사례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한 중소 건설사 현장소장은 “이제 국내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는 50~60대 관리직이나 숙련공뿐이며 젊은 20~40대 근로자는 중국, 동남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단지 현장에서 오래 일했다고 이유로 폭언이나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과거 현장소장이 공사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역할에 방점을 뒀다면 지금은 현장 근로자 업무환경 개선이나 입주민들의 민원을 살피는 등 소통을 중시하는 자리로 점차 역할이 바뀌고 있다.

업계에선 근로환경 변화와 맞물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건설 현장에 안착되면 안전사고 감소, 시공품질 향상 등 순기능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엄식 기자

공직사회 내 '괴롭힘' 그만!...갑질시 신원공개 추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인사처, 올해 4월부터 '갑질' 별도 징계기준 마련...표창 등 징계감경 대상에서도 제외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A공무원은 업무 부담을 고려해 업무재조정을 요청한 직원들 건의를 묵살했다. 이후 명령 불복종을 언급하며 부당한 훈계와 회의에서 특정 직원에게 모욕감을 느끼는 발언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간 관리자를 배제하고 직접 보고를 받아 중간관리자인 B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A씨는 결국 공직사회에서 갑질로 징계를 받았다.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공직사회도 이와 발맞춰 공공분야 '갑질' 근절 대책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공직사회 내 갑질 근절을 위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 행위를 한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한층 강화하고, 중대한 갑질 행위자에 대해서는 신원도 전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7월 발표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대책 일환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갑질'에 대한 인식과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9일 "지난해 공무원 징계령 등이 개정돼 4월부터 시행 중에 있다"며 "이번 신원 전면 공개, 기관 공개 등의 추가된 징계강화 조치는 하반기나 내년에 개정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갑질'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채용 시 '갑질에 대한 인식', '상호 존중과 배려의식'을 평가할 수 있도록 면접시험을 개선하고, 공무원이 승진할 경우에도 공무원으로서의 정신자세나 '예의·품행' 등의 요소를 심층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 공공분야에서의 갑질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처리하고, 부실 처리기관에 대해서는 공개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갑질행위에 대해 상향된 구속·구형 기준과 강화된 징계 기준에 의거 엄중하게 처벌하고, 갑질행위로 징계가 확정된 경우 행위 유형, 내용, 징계처분 결과 등을 각 기관 홈페이지에 게시할 예정이다.

특히 신고된 갑질 사건이 묵인·은폐·축소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감사 등을 통해 확인된 경우, 기관명과 그 사실 등을 공개할 방침이다.

아울러 지자체 대상 정부합동 감사 등 각종 감사 시 갑질에 대한 감사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갑질 실태를 측정해 공개할 계획이다.

앞서 인사처는 지난해 12월 '공무원 징계령' 및 '공무령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후 올해 4월 30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공무원의 갑질은 엄정하게 징계하는 차원에서 기존 '성실의무' 위반 또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징계기준 적용과 구별해 '갑질'에 대한 징계기준을 신설했다.

표창 등을 받은 사람이 징계를 받을 시 감경되던 것도 '갑질' 관련 징계에서는 감경 대상에서 제외되게 했다.

이 밖에도 갑질이나 성 비위에 대해 관리자나 상급자 등이 은폐 또는 대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징계기준 신설은 물론 피해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징계절차 중 피해자 신청이 있을 시 징계위원회에서 의견진술권도 부여하도록 했다.

오세중 기자

中企·스타트업 "직원들 화풀이 대상 아닙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주 52시간 근무제 연장선 혼란 크지 않을 듯"…일부는 "현장 업무지시 위축 우려도"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직장갑질119와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갑질 피해자들이 그림이 그려진 종이봉투로 얼굴을 가린채 피해사례를 밝히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직장갑질119와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갑질 피해자들이 그림이 그려진 종이봉투로 얼굴을 가린채 피해사례를 밝히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오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중소·중견기업들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폭언·폭행·강요 등 잘못된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한편, 상사의 조언과 지도 등 업무지시에 필요한 부분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견기업들은 이미 시행안에 맞춰 회사규정 개정을 마쳤다. 문제가 발생 시 처리를 위한 자체 프로세스도 갖췄다. 일단 기존에 운영하던 임직원 고충 상담실이나 온라인센터를 활용하는 모습이다.

한샘은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관련해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보내 서명을 받았다. 가전렌탈업체인 코웨이와 교원도 관련법 시행을 알리고 사례 유형들을 공유했다. 제약·바이오업체인 GC녹십자는 적극적인 대응 방침도 세웠다. 문제가 발생하면 성추행 등과 같은 수준의 중징계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한 렌탈가전업체 관계자는 "이전까지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들이 다른 직원은 괴롭힘으로 느낄 수 있으니 더 조심하게 될 것"이라며 "최근 들어 성인지 감수성이 크게 바뀐 것처럼 사내문화 개선에도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제도가 빠르게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중견 가구업체 관계자는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이미 회식이나 야근 등은 많이 줄어들며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며 "괴롭힘 금지도 그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큰 혼란은 없을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가전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처벌 규정뿐 아니라 인식 자체가 크게 개선된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도 초기에는 당사자조차 피해를 받은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던 부분들이 점차 개선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우려 섞인 반응도 나왔다. 불법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애매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 회사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법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고 어디까지를 괴롭힘의 대상으로 판단할지 현장에서는 판단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많아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규정 적용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헬스케어기기업체 관계자는 "같은 말이나 행동도 팀 분위기나 성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다 달라서 명확한 규정을 세우기가 애초에 어려울 것 같다"며 "어떤 때는 괜찮고 다른 때는 규정 위반이라고 하면 제도가 안착도 하기 전에 혼란만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무 형태가 기존 기업들과 다르고 사내문화도 상대적으로 수평적이어서다. 상당수가 호칭부터 직급없이 이름으로만 부르는 식이다.

다만 스타트업들도 조직이 커질수록 사내문화가 변질될 우려는 남아 있다. 지난해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셀레브'의 임상훈 대표의 갑질·성희롱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신선식품 유통업체 대표는 "초창기 2~3명이서 같이 일할 때부터 같이 회사를 성장시켜온 동료들이라는 의식이 크기 때문에 '갑질' 같은 괴롭힘이 생길 부분이 적다"며 "다만 조직이 커질수록 인사 문제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사례들을 보면서 시스템을 변화시켜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민하, 김근희, 고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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