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용 '브래지어'를 팝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07.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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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상: 노브라가 불편한 이들, 준비물: 두통약과 소화제, 효과: 화사·설리 노브라가 달라보임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지난해 8월22일부터 23일까지 착용했던 브래지어. 90B 사이즈다. 혹시 구매를 원하는 남성 분은 human@mt.co.kr로 연락 바란다. 직거래는 피차 민망할테니 사양한다./사진=남형도 기자지난해 8월22일부터 23일까지 착용했던 브래지어. 90B 사이즈다. 혹시 구매를 원하는 남성 분은 [email protected]로 연락 바란다. 직거래는 피차 민망할테니 사양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남성용 '브래지어'를 팝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하고 들어오셨다면 반은 성공입니다. "이게 기사야?" 하셨다면 몰입도가 더 높을테고요. 혹시 남성 독자라면 격하게 반갑습니다. 여성 독자도 환영하지만, 아쉽게도 판매 대상은 아니에요. 농담하는 거 아니니, 진지하게 끝까지 봐주세요.

남성용 브래지어를 팝니다. 가격은 0원입니다. 무료로 드리고요. 근데 왜 판다고 썼냐고요. 저도 바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건 마지막에 얘기할 예정입니다. 이게 무슨 압력밥솥도 아니고 뜸을 엄청 들이네요, 참.



상품 사이즈는 90B입니다. 남성 분이면 이게 뭔 말인지 잘 모르실 거예요. 앞에 숫자는 밑가슴 둘레고, A·B·C·D는 컵 사이즈에요. 이걸 어떻게 재냐면, 윗가슴둘레에서 밑가슴둘레를 빼면 됩니다. 색깔은 남색이고, 레이스도 달려 있어요(까끌 주의). 와이어도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금속인데 가슴 모양 잡고, 받쳐주는 거예요. 쉽게 말해 '불편한 거'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상태는 A급입니다. 지난해 여름, 8월22일과 23일에 딱 두 번 입었어요. 착용 시간은 24시간 정도 됩니다.
땡볕에 브라가 불타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땡볕에 브라가 불타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잠깐, 제품 특징도 설명할게요. 섭씨 32도, 폭염에 바깥에 나가면요. 금방 습하고 땀이 차고요. 땡볕에 브라가 불타고요. 땀을 한 바가지 흘릴테고요. 땀 차서 축축한데 잘 마르지도 않고요. 레이스는 까끌까끌하고요. 등을 자꾸 긁게 되고요. 와이어는 가슴을 누르고요. 패드를 들었다놨다 했는데, 신축성 너무 좋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고요. 어깨와 뒷목은 뭉치고요.



팔 생각이 있는 거냐고요? 당연합니다. '브래지어' 뜻을 보세요. '유방을 받쳐주고 보호하며 가슴의 모양을 교정하는 역할'이라고 나옵니다. 쉽게 말해, 저게 브래지어 역할엔 어찌 보면 충실하게 잘 만든 거랍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여튼,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찢어버릴까 했는데, 다행히 잘 참았습니다. 그러니 판매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럼 냄새나는 거 아니냐고요. 걱정마세요. 제가(사실은 세탁기가)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참으로 뽀송뽀송하게 잘 빨아 뒀습니다.

그럼 또 입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사실 그 생각도 해봤는데요. 왜냐면 제가 가슴이 좀 큰 편이라, 흰 티를 입으면 유두가 돌출되거든요. 아내가 "젖꼭지가 민망하다"고 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테이프를 붙였더니 아파서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브래지어 생각도 나긴 했었습니다.


근데 이게 도저히 손이 안 가데요. 딱 이틀 입었는데, 너무 답답하고 힘든 기억이어서요. 보기만 해도 숨이 괜히 턱 막히고요. 누군가 등 뒤에서 내 가슴을 움켜쥐는 것 같고. 속도 안 좋고요. 머리도 왠지 아픈 것 같고. 과장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꽤 용기가 필요해요, 이걸 입는다는 건. 엄두가 안 나서, 옷장에 고이 간직해뒀어요. 1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어들지 않았고요.
브라를 하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다. 정신은 온통 여기에 쏠렸다. 화장실도 차마 못 갔다. 자꾸 사람들이 쳐다봐서./사진=지금은 이직한 남궁민 기자브라를 하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다. 정신은 온통 여기에 쏠렸다. 화장실도 차마 못 갔다. 자꾸 사람들이 쳐다봐서./사진=지금은 이직한 남궁민 기자
팁을 드리자면, 흰 티에 입으시면 좋아요. 남녀노소 불문, 온 우주의 모든 시선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이 좋은 분들에겐 제격이에요. 근데 좀 불편한 눈길이란 게 함정. 여성들이 '노브라'로 다니는 기분이 비슷할 거예요, 아마도.

좋은 게 하나도 없는데 왜 파냐고요. 있습니다, 없을리가요. 이거 딱 하루만 해보세요. 여성들 브래지어가 다르게 보일 겁니다. 가슴도요. 성적(性的) 대상이 아니고요. 답답해 보일 겁니다. '저리 하루종일 가둬야하나' 의문이 생길 겁니다. '아이고, 힘들겠다'는 공감(共感)도요. 깨달음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고요. 그리 느낀다면, 사이즈 맞게 가져가신 겁니다. 아니라면, 좀 더 작은 게 필요할 것 같네요.

그리고 나서, '화사'나 '설리' 노브라를 보면 이런 생각 들겁니다. "아, 편하겠다", "홀가분하겠다". 정말입니다. 제 얘기에요. 딱히 시선이 안 갈 거예요. 왜냐면, 이상한 게 아니라 편한 거니까.
가수 설리를 보면 홀가분하단 생각이 든다. 대단한 용기이고,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노브라가 점점 익숙해지게 해준다는 것, 그건 차츰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는 것. 아직 한국 사회에선 불편한 시선이 대부분이기에./사진=설리 인스타그램가수 설리를 보면 홀가분하단 생각이 든다. 대단한 용기이고,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노브라가 점점 익숙해지게 해준다는 것, 그건 차츰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는 것. 아직 한국 사회에선 불편한 시선이 대부분이기에./사진=설리 인스타그램
돈은 안 받는 대신, 조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다 입은 뒤엔 빨아서(매너) 다른 남성 분에게 주시고요. 둘째, 후기를 어디든 남겨주세요.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게.

그리고, 노브라가 기사거리가 안 될 때쯤, 의류수거함에 가만히 버려주시면 됩니다. '성인 인증'을 안해도, 포털사이트에 노브라 검색 결과를 볼 수 있을 때쯤이 될까요.

아참, 깜빡할 뻔했네요. 브래지어 착용 전에 준비물이 두 가지 있습니다. '두통약'과 '소화제'를 꼭 챙겨주세요.

이유는, 직접 해보시면 아마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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