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이주 여성이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했다. 사진은 해당 영상 캡처/사진=페이스북
앞서 지난 5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한국인 남편 A씨(36)가 울부짖는 아들 앞에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B씨(30)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경찰은 지난 7일 A씨를 긴급 체포하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베트남 국적 지인을 만난 B씨가 베트남어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A씨의 한국어는 서툴렀는데,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라는 말은 자주 사용해 잘 한다고 전해졌다.
◇끊이지 않는 폭행 사건… 살해 사건도
사실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는 부부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남편 사이 갈등이 문제적인 이유는 많은 경우 가정폭력이 수반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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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920명 응답자의 42.1%가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대상 결혼이주여성의 출신국가는 베트남 42.4%, 중국 29.4%, 필리핀 11.4% 등의 순이었다.
가정폭력 유형(복수응답)으로는 △심한 욕설(81.1%) △한국식 생활방식 강요(41.3%) △폭력위협(38%) △생활비나 용돈을 안 줌(33.3%) 등의 순이었다. 이 밖에 부모님과 모국 모욕, 성행위 강요, 본국 방문·송금 방해 등의 답변도 있었다.
한국인 남편이 결혼이주여성을 가정폭력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심지어 살해 사건도 적지 않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가정폭력이 직간접 요인이 돼 사망한 여성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지혜 디자인기자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런 일은 저희 주변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 여성은 그래도 똑똑한 편이라 이렇게 (영상을) 공개한 것(이고 더 한 사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내게 얼굴에 피가 묻은 사진을 보내는 이주 여성도 있다. 신체적 폭행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학대로 고통받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결혼이주여성 보는 시각과 우리 사회 여성 대하는 태도 변해야"
이처럼 지속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더욱 문제적인 건 결혼이주여성들 대부분이 결혼한 남편이나 시가 식구 등만을 유일한 한국 내의 지인으로 두고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돼있어서다. 이들은 문제적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호소할 곳이 없다.
여성가족부는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결혼이민자·귀화자'의 30%가 사회적 관계 맺음에 취약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즉 도움이나 의논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맺은 이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 거주기간이 늘어나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좋아지고 있음에도 한국인과의 사회적 관계는 위축된 채로 지속됐다.
왕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도 "신고 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 입국한지 얼마 안 된 이주 여성들이 신고하는 절차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2~3차 가해가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거나 신고해도 철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덧붙였다. 왕 회장은 "이주 여성에 대한 동정심 보다는 제대로 된 울타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주 여성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남편들에게도 인권 교육, 가정 폭력 방지 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을 보도한 베트남 국영방송사 'VTC'./사진=VTC 캡처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결혼이주여성을 보는 시각과 우리 사회 여성을 대하는 태도 등이 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한국사회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이주여성에 대한 성·인종차별적 인식이 깊다"면서 "이주민과 함께 공존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 사회는 여성 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사회라, 이게 그대로 이주여성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여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용인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있어야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에 있어서도 그 민감도가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