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 왜 결혼이주여성에게 유독 폭력적일까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7.0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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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42.1% "가정폭력, 당한 적 있다"… 결혼이주여성 보는 시각과 우리 사회 여성 대하는 태도 변해야

지난 5일부터 이주 여성이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했다. 사진은 해당 영상 캡처/사진=페이스북지난 5일부터 이주 여성이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영상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했다. 사진은 해당 영상 캡처/사진=페이스북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영상이 공개되면서 베트남 사회와 한국 사회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 관련 시민단체들이나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선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인 남편이 결혼이주여성을 가정폭력하는 경우가 워낙 많은 데다가, 살해하는 일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5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한국인 남편 A씨(36)가 울부짖는 아들 앞에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B씨(30)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경찰은 지난 7일 A씨를 긴급 체포하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4일 밤 9시쯤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B씨를 주먹과 발, 둔기 등으로 수차례 폭행하고 아이에게 폭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갈비뼈 등이 골절돼 4주 이상의 진단을 받고 현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베트남 국적 지인을 만난 B씨가 베트남어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A씨의 한국어는 서툴렀는데,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라는 말은 자주 사용해 잘 한다고 전해졌다.



폭행 영상은 A씨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한 B씨가 직접 휴대전화를 설치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적인 영상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놀랄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인 남편이 결혼이주 여성 아내를 폭행하는 사건이 그만큼 빈번하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폭행 사건… 살해 사건도

사실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는 부부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남편 사이 갈등이 문제적인 이유는 많은 경우 가정폭력이 수반돼서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920명 응답자의 42.1%가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대상 결혼이주여성의 출신국가는 베트남 42.4%, 중국 29.4%, 필리핀 11.4% 등의 순이었다.

가정폭력 유형(복수응답)으로는 △심한 욕설(81.1%) △한국식 생활방식 강요(41.3%) △폭력위협(38%) △생활비나 용돈을 안 줌(33.3%) 등의 순이었다. 이 밖에 부모님과 모국 모욕, 성행위 강요, 본국 방문·송금 방해 등의 답변도 있었다.

한국인 남편이 결혼이주여성을 가정폭력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심지어 살해 사건도 적지 않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가정폭력이 직간접 요인이 돼 사망한 여성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지혜 디자인기자이지혜 디자인기자
△레*** (2007년 3월 대구, 베트남)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 △후*** (2007년 6월 충남 천안, 베트남) 입국 한 달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18대 부러져 사망 △쩐*** (2008년 3월 경북 경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탓**** (2010년 7월 부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조현병 환자인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황** (2011년 5월 경북 청도, 베트남) 출산한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 △팜*** (2012년 3월 강원 정선, 베트남) 조현병 남편에 의해 사망 △응*** (2014년 1월 강원 홍천, 베트남) 남편이 목졸라 살해 △전*** (2014년 1월 경남 양산, 베트남 ) 남편이 목졸라 살해 △서** (2014년 7월 전남 곡성, 베트남) 남편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 △응*** (2014년 11월 제주, 베트남) 한국 남성이 살해 △누*** (2014년 12월 경북 청도, 베트남) 남편이 살해 △이** (2015년 12월 경남 진주, 베트남)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남편이 아이와 함께 살해 △부*** (2017년 6월 서울, 베트남) 시아버지가 살해 등이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런 일은 저희 주변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 여성은 그래도 똑똑한 편이라 이렇게 (영상을) 공개한 것(이고 더 한 사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내게 얼굴에 피가 묻은 사진을 보내는 이주 여성도 있다. 신체적 폭행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학대로 고통받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결혼이주여성 보는 시각과 우리 사회 여성 대하는 태도 변해야"
이처럼 지속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더욱 문제적인 건 결혼이주여성들 대부분이 결혼한 남편이나 시가 식구 등만을 유일한 한국 내의 지인으로 두고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돼있어서다. 이들은 문제적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호소할 곳이 없다.

여성가족부는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결혼이민자·귀화자'의 30%가 사회적 관계 맺음에 취약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즉 도움이나 의논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맺은 이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 거주기간이 늘어나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좋아지고 있음에도 한국인과의 사회적 관계는 위축된 채로 지속됐다.

왕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도 "신고 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 입국한지 얼마 안 된 이주 여성들이 신고하는 절차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2~3차 가해가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거나 신고해도 철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덧붙였다. 왕 회장은 "이주 여성에 대한 동정심 보다는 제대로 된 울타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주 여성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남편들에게도 인권 교육, 가정 폭력 방지 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을 보도한 베트남 국영방송사 'VTC'./사진=VTC 캡처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을 보도한 베트남 국영방송사 'VTC'./사진=VTC 캡처
사실 우리 정부는 국제결혼에 따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이미 2011년 '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법무부의 국제결혼안내프로그램이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태국 등 속성 국제결혼이 만연한 국가의 국민과 결혼하는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4시간 동안 해당국 문화와 가정폭력 방지를 비롯한 인권존중 안내, 국제결혼 경험담을 소개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결혼이주여성을 보는 시각과 우리 사회 여성을 대하는 태도 등이 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한국사회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이주여성에 대한 성·인종차별적 인식이 깊다"면서 "이주민과 함께 공존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 사회는 여성 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사회라, 이게 그대로 이주여성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여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용인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있어야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에 있어서도 그 민감도가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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