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사진 위해 내 삶을 가공”…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가상기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7.0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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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가상은 현실이다’…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이 만든 새로운 질서

“인스타그램 사진 위해 내 삶을 가공”…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가상기술’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페이스북을 국영화하려는 환상을 가졌었다. 이런 독재적 발상은 권력이 현실이 아닌 가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제 가상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존재 의미 자체가 불투명하다. 페이스북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좋아요’ 클릭 수를 계산하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에 대한 반응을 보며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확인하고,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데이터에 맞춰 내 사고가 움직이는 건 일상이다.

가상기술이 불러오는 변화는 비가역적이며 통제 불가능하다. 인류를 새로운 단계로 던져놓은 기술의 가상화 흐름을 저자는 ‘가상화 혁명’이라고 명명한다.



지난 10년간 소셜미디어, 인공지능, 가상화페 3가지 가상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크게 바뀌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활성화는 자신을 전시하는 데 몰입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디지털화(수치화)했는데, 팔로워 수, ‘좋아요’ 수, 리트윗 수 같은 지표들이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더 높은 순위로 올라서기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과장하거나 스스로 성적 대상으로 전시한다.

인공지능의 추천 알고리즘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보고, 듣고, 살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제거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또는 ‘좋아한다고 인공지능이 판단한 것’만을 보여준다. 편리를 위해 편향을 얻은 셈이다. 저자는 “인간처럼 사고하는 로봇이 등장하기에 앞서, 로봇처럼 사고하는 인간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더 도덕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존의 도덕으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기술이다.

가상기술들이 일상을 깊숙이 파고드는 현실과 변화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인공지능을 얘기할 때 많은 이들은 인공지능의 위협을 ‘일자리 소멸’이라는 프레임으로 연결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거나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금’ 발생하는 변화들이다. 일자리 소멸보다 인간의 판단을 대체한다는 것이 더 문제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미국 주식 거래의 85% 이상이 자동화된 기계가 수행한다든가, 영국 더럼시처럼 경찰이 용의자를 구금을 결정하는 데 ‘하트’(HART)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결국 페이스북은 현실과 겹쳐 있으면서 이를 교란하는 가상현실이고,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가상의 뇌며, 비트코인은 디지털 화폐의 유용성을 넘어 실재 가치 체계를 무너뜨리는 가상의 돈이다.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이 ‘클라우드 서버’로 옮겨가는 현실은 우리의 자아, 사회적 관계, 정치적 담론 같은 실재의 대상까지 가상화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저자는 삶을 공유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한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되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해 삶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활성화 상태가 유지되도록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이벤트와 데이터를 생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마존 고를 단순히 ‘무인화’로 판단하는 것도 좁은 해석이다. 저자는 이 기술이 인간 노동을 자동화했다기보다 인간 노동이 개입될 여지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주장한다. 계산대에 의존하는 쇼핑 프로세스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실재의 가상화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가상 자아를 먹여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온라인 노동을 수행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가상 자아에 대해 가지는 우리의 통제력보다 가상 자아가 우리에게 가지는 통제력이 더욱 큰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가상은 현실이다=주영민 지음. 어크로스 펴냄. 352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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