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上] 뿔난 한국소비자, 그래도 토요타 타고 도쿄 간다?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권혜민 기자, 최우영 기자, 안재용 기자, 최석환 기자, 심재현 기자, 이건희 기자, 정혜윤 기자 2019.07.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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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종합)上

편집자주 한국 사법부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이 핵심 부품 수출규제로 맞받아치며 경제 국지전을 도발했다.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국가간 무역전쟁의 결과는 '루즈-루즈(lose)'라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자발적 민간대응의 역할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산업강국 韓 급소찌른 日, 해법은 국산화뿐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대일의존도 28.1%→16.3% 낮췄지만 초격차 핵심소재에 발목…전문가 "수입대체 어려워 국산화 서둘러야"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강국으로 자부하던 한국이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라는 불확실성에 맞닥뜨렸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핵심 소재·부품을 일본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 됐는데 타격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 수입선 다변화 같은 단기 대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을 끌어올려 대(對)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소재·부품 수출은 3162억달러로 총 수출(6055억달러)의 52.2%를 차지했다. 무역수지는 1391억달러 흑자를 냈는데 전체 무역흑자(705억달러)의 약 2배를 기록했다. 2001년 소재·부품 수출액이 620억달러, 무역흑자가 27억달러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7년 만에 수출은 5배, 무역흑자는 51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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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양적 팽창을 성과로 내세우지만 정작 질적 향상은 갈 길이 멀다. 정부는 2001년 소재·부품특별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소재·부품발전기본계획을 내놓으며 ‘소재·부품 세계 4강 도약’을 목표로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고질적인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고질적인 소재·부품산업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01년 105억달러이었던 적자폭은 2010년 243억달러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축소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51억달러로 줄었다. 대일본 수입의존도 역시 2001년 28.1%에서 지난해 16.3%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초격차 기술을 앞세운 핵심 소재 분야다. 범용 소재·부품의 경우 한국, 중국 등 후발주자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상승했지만 핵심 소재 분야는 오히려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더 커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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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가 일본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 레지스트 등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다.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 70~90%를 독점한 핵심 소재인데 실제로 공급이 중단되면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 등 한국 기업의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 역시 도레이 등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첨단산업 관련 소재·부품산업 경쟁력이 취약한데 평균 기술력이 독일, 일본 등 선진국 대비 66%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 기준 세계 2000대 기업 중 소재 기업 수는 미국 40개, 일본 29개지만 한국은 단 7개에 그친다.

무엇보다 핵심 소재 분야는 초격차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수출규제를 진입장벽 삼아 해당 산업 가치가슬 진입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서로 얽혀 있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국가 산업계도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외교·안보를 이유로 강행할 경우 상대국이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원론적 대책을 앞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대체수입선 확보 등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첨단산업 생산라인의 최적화 구조와 가격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수입선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 산업계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대책은 과감한 R&D 지원을 앞세운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이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할 수 밖에 없는 품목을 골라 급소를 찌른 격”이라며 “당장 돈 되는 생산기술 개발에만 치중해 경쟁력 원천이 되는 원천기술 개발에 소홀했는데 지금이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국산화율을 높이는 대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유영호 기자

"'사드 악몽' 되풀이…日의존 원천기술 투자해야"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사태 장기화·경제 전반 제재로 '확전' 가능성…R&D 투자 확대 통해 취약 고리 끊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6.29/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6.29/사진=뉴스1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한·일 무역전쟁'으로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처럼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전문가들은 외교 채널을 통해 갈등을 푸는 동시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 의존해 오던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당장의 경제적 피해보다도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정치적 문제로 이번 사태가 촉발된 만큼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한다면 일본이 한국산 제품 수입을 줄이는 등 다른 쪽으로 전선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반도체 경기 부진 등으로 어느 정도 재고 물량이 확보돼 있고, 업계에서도 대비 노력을 해 왔기에 이번 조치의 단기적 파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지만 사태 장기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부 품목 수출 규제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 경제 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으나 이번 규제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내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으로 이뤄졌다는 게 유력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문제로 시작해 경제에 치명타를 남겼던 사드 사태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 자민당에서는 금융·기업 제재, 비자혜택 축소 등도 하나의 플랜(계획)으로 언급하고 있다"며 "한일 관계가 경색될 경우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 조치에 대해 핵심 소재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이 앞서서 개발한 원천기술을 후발주자인 한국이 그대로 도입했기에 국산화 여력이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며 "이번 제재 대상 3개 품목은 일본 점유율이 90%가 넘어 대체선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WTO 제소는 절차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승소하더라도 국가 간 거래를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실효성이 낮다"며 "정부가 WTO 제소를 언급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외교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제든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할 수 있는 만큼 원천 기술 확보를 통해 취약 고리인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한국 기초과학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고급기술 연구개발(R&D)과 인재양성에 대한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종=권혜민 기자

소재·부품 R&D 매년 1조원 투자, 日 의존도 줄인다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2001년 제정 소재·부품특별법 힘입어 2025년까지 미래 첨단 신소재·부품 100대 유망기술 개발 추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청와대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일본의 경제보복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조치는 대(對)일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구조의 약점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소재·부품 R&D(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전문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01년 제정된 소재·부품특별법에 기반한 제4차 소재·부품발전기본계획에 따라 산업부는 2017년부터 소재·부품산업의 R&D→인프라→공정→트렉레코드 확보 및 해외진출까지 전 주기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파워반도체 기술, OLED 엔진기술 등 미래 첨단 신소재·부품 100대 유망기술을 2025년까지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범부처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성 소재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소재·부품 인프라 개선을 위해 연구기관을 금속, 화학, 섬유, 세라믹·전자, 기계·자동차 등 5개 융합 얼라이언스 체계로 개편해 융복합 소재·부품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공정 효율화를 위해 스마트공장을 2020년까지 1만개로 확대하고 이 과정에서 소재·부품 산업의 근간인 뿌리기업의 스마트화를 돕는다. 소재·부품기업의 글로벌 진출 역량을 키우도록 공기업·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에서 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여린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회의'에서는 이 같은 정책 추진을 위해 소재·부품특별법 대상을 장비산업까지 확대하고, 100대 핵심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에 매년 1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소재부품기업 육성 결과 2001년 소재부품 수출시장 13위였던 한국은 2017년 6위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제조업 중 소재부품 사업체의 비중은 5.2%p 줄어들고 종업원도 2.4%p 줄었지만 생산액은 7.1%p, 부가가치 비중도 7.9%p 높아지는 등 고도화가 진행됐다.

이 같은 고도화에 힘입어 2001년 소재·부품 무역수지 흑자는 27억달러로 전산업 무역수지 흑자의 29.2%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흑자가 1390억달러로 전산업 흑자의 1.7배에 달했다. 소재·부품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010년 243억달러에서 지난해 151억달러까지 줄었다. 대일본 소재·부품 수입의존도는 2001년 28.1%에서 지난해 16.3%까지 줄어드는 추세다.

세종=최우영 기자

오랜 관계경색의 역설…日'금융카드'는 빈약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한일 통화스와프 2015년 2월 종료…양국 재무장관회의 3년째 안 열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 (현지시간) 도쿄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 AFP=뉴스1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 (현지시간) 도쿄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수출을 규제하며 한일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었지만 금융에 미칠 파장은 당장 크지 않다.

부산 소녀상 설치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경색된 후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은 중단됐고, 양국간 재무장관회의도 2016년 8월을 끝으로 열리지 못했다. 일본이 양국간 경제외교 측면에서 사용할 카드가 부족한 상황이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700억달러(약 81조7320억원) 규모까지 확장됐으나 2015년 2월 전면 종료된 후 현재까지 체결되지 않았다.

통화스와프란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이다. 한국은 현재 중국(540억달러)과 CMIM(384억달러), 스위스(106억달러), 호주(사전한도 없음), 인도네시아(100억달러) 등과 체결 중이다. 한도 내에서 고정된 환율로 외환을 교환할 수 있어 외화 안전판으로 불린다.

한일 양국은 2016년 8월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통화스와프 재개를 제안하면서 협상장에 앉았지만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2017년 1월 협상이 무산됐다. 2016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일본이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 것도 협산 무산에 한 몫 했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극복이 한창이던 2001년 7월 20억달러 규모로 체결됐다. 외환위기 재발을 막고 해외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한일 통화스와프는 2008년 300억달러까지 확대된다.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1년에는 700억달러까지 증액됐다.

이후 정치적 이유로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양국간 통화스와프도 해소됐다. 일본은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 독도 방문에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같은해 10월 57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았다. 약 130억달러 수준인 잔여 금액도 2015년 2월 만기가 끝나며 종료됐다.

한일 재무장관회의도 2016년 8월이후 열리지 않았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한일관계가 멀어져서다. 한일 재무장관회의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일본 재무상이 참석하는 회의로 2006년에 시작됐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7년 7월 한일 정상회담 종료후 회의 재개를 시사했다. 이번에도 위안부 합의 문제와 일본 초계기 사건이 다시 양국관계를 악화시키며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안재용 기자

"日보다 50년 늦었는데"…갈길 먼 소재·장비 국산화
소재·장비 국산화율 50%·20% 수준…과감한 투자-정·학·산, 긴밀한 공조체제 필요해

[MT리포트-上] 뿔난 한국소비자, 그래도 토요타 타고 도쿄 간다?
"일본은 70년 전에 시작했다. 우린 50년이나 늦게 시작했는데 쉽게 따라잡을 수 있겠나."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2일 반도체 소재·장비의 국산화 비중이 낮은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 업체들이 그간 쌓아온 업력으로 발생한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산업 국산화율(2017년 매출액 기준)은 소재의 경우 50%, 장비는 20% 내외로 추정된다. 평균 35% 수준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정도의 국산화율을 이뤄냈다는 게 대단한 것"이라며 "산업 특성상 오랜 기간동안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그렇게 못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등 해외 업체들은 소재·장비 업체가 대부분 대기업인 반면 우리는 중소기업이거나 영세한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이 노린 것도 이런 약점이다.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된 에칭가스, 포토리지스트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쓰이는 핵심 재료로 일본의 의존도가 절대적인 소재다.

에칭가스는 독성이 강한데다 부식성이 있는 기체인 고순도 불화수소로 반도체 제조공정 가운데 회로의 패턴대로 깎아내는 식각(Etching)과 세정(Cleaning) 작업에 사용된다. 포토리지스트는 빛에 노출되면 화학적 성질이 변하는 물질로 반도체 제조과정 중 웨이퍼 위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Photo) 공정에 쓰는 감광재다.

두 제품 모두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90% 달한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도 사용 물량의 90%를 일본 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에칭가스는 솔브레인 (59,700원 ▼200 -0.33%), 이엔에프테크놀로지 포토리지스트는 금호석유화학, 동진세미켐, 동우화인켐 등이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지만 품질 면에서 일본산과 차이가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첨단 공정에 맞춰 일본산 소재를 써왔는데 수출 규제로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공급선을 다변화한다고 하지만 당장 전세계에서 일본제품 만큼의 품질을 맞출 수 없어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지연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소재·장비는 하루 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시장규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면 역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최대 70%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설비투자 역시 세계 최대 규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 전략아래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 같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반도체 생산업체와 국내 소재·장비 업체간 협력을 강화할 경우 일본에 역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반도체산업협회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손잡고 소재 및 장비 성능 검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고 후방산업의 연쇄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반도체 소재·장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정부·학계·산업계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석환, 심재현 기자

"일본차, 불매하자" 열받은 韓소비자, 난처한 업계
한·일 무역충돌에 소비자들 "토요타·혼다·닛산 불매할까"…업계 '예의주시'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시민들과 차량들. /사진=임성균 기자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시민들과 차량들. /사진=임성균 기자
"속 좁은 일본, 자동차 구매 보류할 겁니다."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 규제 강화에 소비자들이 뿔났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본차를 불매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상황을 주시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졌다.

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토요타, 렉서스, 혼다, 닛산 등 일본차 동호회 및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보복조치를 발표하자 국내 소비자들도 '발끈'한 것이다.

A씨는 한 자동차 동호회에 올린 글에서 "속 좁은 짓을 하는 일본이 작게 느껴진다"며 "차 구매가 급한 게 아니기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구매를) 보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일본차를 인수했다는 B씨는 "가족이 혹시 일본차 탄다고 보복당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했다. 2005년 일본 교과서 검정 문제로 감정이 격앙될 때 한 차례 벌어진 일본차 방화와 같은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또 다른 소비자는 "(일본차를) 계약한지 얼마 안 됐는데 취소해야 하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일본제품 불매' 내용이 등장했다. 한 청원인은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한다"면서 국민들의 일본제품 불매 및 정부 조치를 주문했다. 청원 하루 만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일본차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는 시민의 움직임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공개적인 주장도 나왔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대응을 한국 정부가 하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며 "그 보다는 일본차 불매운동 같은 걸 시민단체가 하면 일본 정부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자동차 산업에 시민단체가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주장했다.

수입차 업체도 점차 커지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신경쓰는 분위기다. 한 일본차 수입업체 관계자는 "개인으로는 하나의 의견이겠지만 동호회에서 모인 목소리는 영향력이 커질수 있어 주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일본차의 성능을 언급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소비자 C씨는 "일본산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했는데,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전시장과 같은 판매 일선에서 악영향이 감지되지는 않고 있다. 토요타 판매점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구매 취소를 한 고객은 없다"며 "구매 의사가 있는 분들은 현 상황과 관계없이 연락한다"고 말했다.

렉서스 전시장 관계자도 "차량 구매자들의 만족도는 여전히 높다"며 "구매 고객에 대한 서비스도 그대로 이어져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MT리포트-上] 뿔난 한국소비자, 그래도 토요타 타고 도쿄 간다?
올해 1~5월 기준으로 일부 일본차 브랜드의 판매량은 성장세를 보였다. 렉서스의 올해 1~5월 판매량은 7070대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2.7% 늘었다. 혼다는 같은 기간 4883대를 팔아 2배 이상 증가했다.

10여 년 전에는 불매운동과 같은 강경 대응이 이뤄졌지만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다는 지적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자동차 산업만 해도 이제 칼로 물베듯 한·일 관계를 해결할 수 없다"며 "양국이 현 상황을 섣불리 확대하면 더 손해를 볼 수 있기에 정부가 냉정한 시선으로 대일본 문제를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건희 기자

한일 갈등에도… 일본여행은 2000년 이후 역대 최고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중국 사드 보복은 중장년·패키지 수요 줄어 타격 입었지만…일본은 젊은 여행객 많아 영향 없을 것"

[MT리포트-上] 뿔난 한국소비자, 그래도 토요타 타고 도쿄 간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경제 제재를 발동하면서 여행업계 등도 덩달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일부 일본 관광·상품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한일 양쪽 모두 탈(脫) 정치적 성향이 강한 20~30대 관광객 비중이 커지면서 당분간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2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전년대비 5.6% 늘어난 753만8997명이다. 2000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4월까지도 264만 7400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전년대비 4.4% 감소한 수준이지만, 이는 동남아 등 다른 국가로 수요가 분산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 역시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94만8527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찾았다. 전년대비 27.6% 가량 늘었다. 올 5월 한 달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전년동월대비 26% 증가한 28만6273명이었다. K-POP, K-Food 등 한류에 관심이 많은 20대 이상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에 따라 대(對)일본 여행수지(유학수지 포함)는 지난해 -34억달러로 전년(-34억600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줄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이 우리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시행하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한다' 등의 글이 올랐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일본 관광 불매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행사들은 당장 일본 여행 수요에 큰 타격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동향 체크를 계속 하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다"며 "그간 일본과의 정치적 이슈 등 문제가 있었지만 계속 여행객이 증가 추세고 이번에도 크게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단체 여행객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일본과 정치·외교적 문제가 벌어질 때 공무원, 기업, 학생 단체 방문객이 줄어들긴 했지만, 개별 여행객까지 줄어들진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 역시 환율과 북한 위험성 때문에 한국 여행을 꺼리는 경우는 있어도 양국간 정치·경제적 이슈가 큰 고려 대상은 되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중국 사드(THAAD) 보복 때는 워낙 중장년층·패키지가 많아 관광에도 큰 타격을 줬지만, 일본은 젊은 여행객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라 이들이 우리도 보복하는 셈치고 여행가지 말자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행 이외 일본 음식 불매운동도 온라인상에 확산되고 있다. 일본 가정식, 라멘집, 이자카야 등을 가지 말고, 아사히 등 국내 수입 맥주 1위인 일본 맥주도 사 먹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 보복 때도 칭따오 맥주 불매 운동이 벌어졌지만 정작 실제 매출에 큰 변화가 없어, 아사히 맥주의 인기도 크게 수그러들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혜윤 기자

반도체 제조 화학물질만 수백종…"국산화 산 넘어 산"
[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국내 반도체 소재 개발·생산업체 손에 꼽을 정도에 그쳐…"소 잃고라도 외양간 고쳐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제공=삼성전자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제공=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수백종인데 그걸 전부 세계 최고 품질로 국산화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발표 여진이 이어진 2일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소재 국산화의 어려움을 꼬집은 얘기였다. 그는 "일단 화학물질의 종류에서부터 몇몇 업체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라며 "꾸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급소를 찔렀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지금이라도 소재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정부와 대·중소기업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에 대한 경고가 지속됐지만 산업구조와 인력 등을 핑계로 외면해온 결과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2017년 추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업계의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그친다. 업체별 기술유출 우려 등으로 이후 통계가 집계되진 않지만 전문가들은 이후에도 수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일본이 수출규제 방침을 밝힌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와 리지스트가 대표적인 수입 의존 품목이다. 에칭가스의 경우 일본 스텔라와 모리타가 전세계 생산량의 90%가량을 만든다. 국내에서 솔브레인이나 이엔에프테크놀로지가 만드는 에칭가스도 원재료를 일본에서 수입, 정제해 만드는 제품이다.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는 화학물질만 수백종인 데 비하면 이를 제조·개발하는 국내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그나마도 금호석유화학을 제외하면 동진쎄미켐, 동우화인켐 등 대부분이 중견·중소기업이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반도체 부문 소재 사업을 주력이 아닌 부대사업으로 다루는 정도다.

화학업계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반도체 소재 화학물질을 개발하기엔 그동안 여력이 부족했다는 고백이 나온다. 화학업체 대부분이 당장 돈이 되는 범용제품에 집중해 성장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를 개발해 일본 수준의 노하우를 쌓는 것은 제약업체가 수천억원을 들여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이렇게 해서 개발한다고 해도 품질이나 커리어 면에서 판매가 보장되는 게 아닌데 리스크를 짊어지고 투자할 기업이 나올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면 국산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더라도 위기 국면에 대응할만한 힘은 길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단기적으로는 악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재 생태계 구축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 수준의 노하우를 쌓으려면 10년 이상이 걸리겠지만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활발한 협력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힘을 모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현,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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