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법원은 권 의원에게 채용 청탁을 받았다는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2019.6.24/사진=뉴스1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채용청탁 관련 사건 판결들의 ‘유무죄’라는 결과만을 보고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순 없다고 설명한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부정채용'지시에 의한 '업무방해 유죄'
우선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최흥집 전 사장은 권 의원 청탁에 의한 부정채용이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은 게 아니다. 춘천지방법원은 지난 1월8일 최 전 사장에게 위계에 의한 업무 방해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며 "공공기관인 강원랜드 최고 책임자로 청탁을 근절하고 채용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저버리고 1~2차 교육생 선발 시 인사팀장에게 지시해 부정채용을 지휘했다"는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결국 부정채용에 관여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강원랜드 임직원들은 '외부 청탁' 유무와는 별개로 스스로의 '부정채용' 혐의가 '업무방해죄'라는 죄목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2014.6.5/사진=뉴스1
◇권성동 의원, 입증도 안 되고 피해자 없어 '업무방해죄' 성립도 안 돼
반면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의심을 받고는 있지만 권 의원의 경우엔 이번 1심에선 '업무방해'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검찰의 수사결과가 미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업무방해죄'의 특수성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은 "피고인들(권 의원 및 함께 기소된 전 리조트본부장)이 최 전 사장과 인사팀장에게 청탁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 전 사장의 부정행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면 관련 인사팀장 등은 오히려 최 전 사장이 행한 업무방해의 '공범'이지 이들을 (권 의원 등의)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의 상대방, 즉 피해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권 의원 등의 청탁이 입증도 안 됐지만 청탁이 있었더라도 그 행위가 '업무방해'라는 죄를 구성하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법리적인 얘기지만 업무방해라는 범죄가 성립하려면 업무를 방해받은 '피해자'가 있어야 하는데 재판부는 강원랜드 인사담당자들은 그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최 전 사장등과 공모해 부정채용을 저지른 공범이라고 본 것이다. 즉 권 의원 청탁이 있었는지도 입증이 되지 않았고 있었다고 해도 업무방해가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직권남용'으로 볼 수도 없어
강원랜드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단 기소내용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 담당공무원들이 권 의원 요구에 따라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자격미달자를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지명토록 했다고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사외이사가 된 해당 인사가 자격미달도 아니었고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담당공무원들의 지도·감독권 행사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했다고 해도, 권 의원이 공동정범으로서 해당 공무원들과 공모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사외이사 지명과정에 불법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정당한 지도·감독권 행사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한편 지난 1월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에서, 항소심에선 강남구청 위탁업체인 모 의료재단에 제부 박모씨 취업을 강요했다는 직권남용 혐의가 1심과 달리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관련 증거와 진술을 종합해 볼 때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재단 이사장의 의사 결정을 왜곡해 채용을 강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체부 출신 꽂으려던 전 서기관도 직권남용 '무죄' 나와
권 의원 재판에 앞서 법원은 이미 지난 달 29일 강원랜드의 또 다른 채용청탁 사건이었던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김모씨에 대한 판결에서도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강원랜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김씨가 기존 카지노본부장을 해임시키고 그 자리에 문체부 출신 내정자를 채용하도록 외압을 가해 최 전 사장 등이 이에 따랐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원랜드 '채용·인사'는 부처 공무원인 김씨의 권한 밖의 일로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 재판이 무죄가 되면서 비슷한 혐의를 받은 권 의원 재판도 무죄 선고 가능성이 높았었다.
종합해보면 검찰은 권 의원의 청탁이 강원랜드의 교육생 선발 등 인사결정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를 바꾸었다고 봤지만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권 의원 청탁으로 채용됐다고 검찰이 지목한 대상자들이 동시에 다른 경로로 추천되거나 청탁됐고 권 의원이 직접 청탁했다는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청탁대상자 명단은 권 의원이 아니라 권 의원 친척인 권O동씨가 관여한 것이란 진술과 증거가 나왔다. 검찰 기소내용에 오류가 있었던 셈이다.
또한 최 전 사장이 권 의원 청탁에 의해 채용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법정에 나와 했던 진술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법원은 오히려 최 전 사장 자신이 권 의원 청탁 등과는 별개로 부정채용을 지시할만한 동기가 있었다고 봤다.
다시 말해 권 의원의 청탁은 검찰에 의해 입증되지도 못 했고, 강원랜드의 부정채용은 오히려 인사업무 담당자를 비롯한 경영진에 의한 불법이었다는 게 법원 결론이다.
신연희 전 서울 강남구청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횡령·직권남용' 업무상횡령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17/사진=뉴스1
검찰은 권 의원 전 비서관을 채용하는 대가로 권 의원이 강원랜드의 청탁을 해결해줬다고 기소했지만, 법원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법원은 국회의원으로서 권 의원이 직접적인 직무관련성이 있는 개별소비세 개정안 및 강원랜드 워터월드 조성사업 감사와 관련해 최 전 사장의 청탁을 받고 승낙한 사실은 인정되나, 지역구 의원인 권 의원에 대한 강원랜드의 청탁을 부정 청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강원랜드가 강원 지역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을 고려할 때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해 충분히 가능한 행위라고 본 것이다.
또한 건설업 재직경력 등이 풍부했던 권 의원 전 비서관이 최 전 사장에 의해 부정채용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결론냈다.
권 의원에 대한 1심 결과에 대해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검찰 수사가 미진했을 수 있고 공소장 변경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판부의 제대로 된 판결을 받았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입증이 부족해 무죄가 되는 경우는 일반인 사건에선 사실상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중요 사건에선 입증의 정도가 더 특별히 요구되는 건 아닌지 살펴 볼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