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전업투자자가 되려 합니다" 게시글에 댓글이 수백개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9.06.2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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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전업투자자 되려 하는 이유…현재 일 하기 싫고 유투브가 부추겨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전업투자자가 되려 합니다."

필자가 자주 방문하는 가치투자관련 인터넷 카페에 최근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대리운전, 건설현장 일용직 등 주로 육체노동에 종사해온 40대 초반의 A씨가 주식 전업투자자가 되겠다고 올린 글이었다.



주된 요지는 그동안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40살이 넘으니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5000만원의 자금을 가지고 전업투자를 해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현재 배달대행 시장이 호황이라서 하루에 20만원 이상 벌 수 있지만(오토바이 배달대행에 종사하는 듯), 매일같이 도로를 누비고 다니는 게 힘들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LNG선, 해상플랜트, 초고층주상복합 현장 등 거의 목숨을 내놓고 20년을 살았는데, 이제 생명수당 없는 일자리를 가져보고 싶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또한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희망이 없는 삶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회의감이 들 때 전업투자로의 유혹은 정말 치명적이라며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했다.



이 인터넷 카페에는 잊을만하면 전업투자를 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왔지만, 이번 글은 필자에게 어쩐지 더 신경이 쓰였다.

◇전업투자를 고려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동기는
지금까지는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주식 전업투자를 해보겠다고 올린 글은 많았지만,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업투자를 하겠다고 올린 글은 거의 처음이었다. 투자경험도 6개월밖에 안 된다고 해서 더 걱정됐다. 가치투자관련 카페인 만큼 단타 매매 보다는 중장기 투자를 하겠다고 올린 글이다.

며칠 뒤에 다시 카페에 들어가보니 무려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너무 무모한 시도라며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글 게시자인 A씨와 같은 초보 투자자, 직장인 등 많은 사람들이 전업투자를 고려하는 동기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업투자는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자금은 필요하지만, 나이·학력·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계좌를 개설해서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전업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전업투자가 하고 싶어서 전업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어서 전업투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남이 하라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전업투자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전에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 중 재밌는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전업투자를 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하루 종일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닌 만큼 낮 시간에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아니면 오후에 등산이나 낚시를 가는지 궁금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전업투자의 ‘전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전업’(專業)이란 ‘한 가지 일이나 직업에 전념 일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명실상부한 전업투자자가 되려면, 최소 매일 9시간 이상 오로지 종목 리서치 등 투자관련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주식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칼퇴가 아니라 오히려 야근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낮에 책보고 오후에 등산가는 등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바에는 굳이 전업(專業)투자자가 될 필요가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투자방식인데, 직장을 그만두고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만약 전업투자 대신 직장을 관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튜브가 전업투자 부추긴다?
A씨가 전업투자를 결심한 데에는 유튜브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였다. A씨는 유튜버들이 올린 주식투자 관련 유튜브를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더 쉽게 대하는 계기 중 하나는 유튜브다. ‘전업투자자 와시즈’, ‘창원개미TV’, ‘린지와 소공’, ‘해자라면’ 등 많은 유튜버들이 주식관련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는데, 제대로 된 콘테츠도 있지만 주식을 예능의 소재로 삼거나 단타를 부추기는 유튜버들도 많다.

또한 유튜버들이 불과 몇 분만에 하루 일당보다 많은 돈을 금방 버는 동영상을 보면 정말 혹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정말 그렇게 돈을 버는 게 유튜버만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전업투자자를 꿈꾸는 사람 대부분은 전업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 단타 매매 대신 중장기 투자 위주로 전업투자를 하려면 자금이 10억원은 돼야 안정적이다.

이 경우 10억원을 가지고 견실한 고배당주로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대략 5000만원 정도의 배당금 수익을 누릴 수 있고 시세차익까지 누린다면 총 1억원에 가까운 수익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포트폴리오를 굴리기 위해서는 직장을 못 다닐 만큼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런 포트폴리오를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직장을 다니며 받는 연봉 5000만원이 10억원의 자산을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배당금 수익과 맞먹는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매년 배당금 수익 5000만원을 창출할 수 있는 10억원 가치의 자산(=직장)을 왜 버리겠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업투자자를 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린 사람은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전업투자를 안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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