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씨] 여관에 세워놓은 차, 도둑맞았다면?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9.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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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임치(보관)관계 성립 안 되면 가게 측 책임 묻기 어려워

[친절한 판례씨] 여관에 세워놓은 차, 도둑맞았다면?


기분 좋게 외식하고 나왔는데 가게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차가 사라졌다고 해보자. 이 경우 가게 업주에 왜 주차장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비슷한 사건에서 가게 주차장에 주차됐다고 해서 무조건 업주에게 책임을 따질 수 없다고 판결한 판례(1998다37507)가 있어 소개한다.

A씨는 여관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이곳에 투숙하던 중 차량을 도둑맞았다. 보험사는 자동차 보험계약에 따라 A씨에게 차량 보험가인 2190만원을 지급한 뒤 여관 측에 배상을 요구했다. 보험사는 A씨와 여관 사이에 임치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여관 측에서 차량 도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치란 물건 보관을 부탁하고 맡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여관 측 손을 들어줬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A씨와 여관 사이에 임치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판결에 따르면 여관 주차장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여관 관리실에서 볼 수 있는 CCTV가 주차장을 비추고 있었다. 주차장 출입문이나 관리 직원은 따로 없었다.

A씨는 주차를 한 뒤 여관 종업원에게 차 키를 맡기지 않았고, 주차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주차 위치도 CCTV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대법원은 "공중접객업자와 손님 사이에 임치 관계가 성립하려면 그들 사이에 공중접객업자가 자기의 지배영역 내에 목적물보관의 채무를 부담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있음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손님이 가게 주인에게 주차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임치 관계가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주차장에 시정장치가 된 출입문이 설치돼 있거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인이 배치돼 있는 등 여관 측에서 주차장 출입과 주차시설을 통제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조치가 돼 있다면, 명시적 위탁 표시가 없어도 임치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여관 측에서 주차장 출입차량을 통제하는 시설이나 관리인을 따로 두지 않았다. 주차장은 단지 투숙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소로 제공된 것에 불과하다"며 "그런 주차장에 주차한 것만으로 여관 측과 A씨 사이에 차량에 관한 묵시적인 임치의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관련 법령

민법

제693조(임치의 의의) 임치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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