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꼰대'들의 속 뒤집는 말, 청년들 분노하는 이유 셋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2019.06.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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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공감, 선민의식, 無책임…"거짓말에 무시하며 가르치려 들어"

왼쪽부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사진=머니투데이 DB왼쪽부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사진=머니투데이 DB




"청년들은 한국당이라고 하면 뭔가 '꼰대 정당'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꼰대처럼 생겼어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0일 한 대학 특강에서 이같이 물었다. 그는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아들 스펙을 거짓으로 소개했다. 누리꾼들은 황 대표가 스스로 '꼰대'임을 입증했다는 반응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계속되는 '꼰대 발언'에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내가 아는 한 청년은 3점도 안되는 학점에 800점 정도 되는 토익으로 취업을 했다"며 "그 청년이 바로 우리 아들"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채용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황 대표는 해명을 시도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스펙 쌓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고정 관념을 깨고자 하는 마음에 아들 사례를 들었다"며 "취업 당시 아들의 학점은 3.29점(4.3 만점 기준), 토익은 925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24일 '거짓말 논란'에 대해서는 "낮은 점수를 높게 얘기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반대도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나"라고도 했다.

◇"취직 안된다고 헬조선 탓말고 아세안 가라"…"20대 제대로 된 교육 됐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 DB박근혜 전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 DB

이전에도 취업준비생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취직이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아세안을 가 보면 '해피 조선'"이라며 "국립대 국문과 졸업하면 취직 못하지 않나. 그런 학생들 왕창 뽑아서 태국·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김 전 보좌관은 사실상 경질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5년 중동 순방 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진출을 해보세요.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했다가 논란이 됐다.

청년들의 교육 수준을 지적하며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대 정부 지지율 하락의 원인에 대해 "이분들(20대)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라고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전 정부 반공교육이 20대를 보수화시켰다”고 발언한 바 있다.

◇非공감, 선민의식, 無책임…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청년들이 분노한 이유는 이 같은 발언에 공감과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황 대표나 김 전 보좌관은 취업의 어려움에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지, 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고정관념'으로 치부했다.

설 최고위원과 홍 의원도 20대를 이해하고 이들의 정부 지지율 하락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잘못된 교육'으로 돌리는 데 그쳤다.

이들은 공감과 이해 대신 청년들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일종의 '선민의식'이다.

젊은 세대는 황 대표가 한 거짓말의 의도가 '스펙 쌓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고정 관념을 깨는 것'에 있다는 데 분노했다. 설 최고위원과 홍 의원도 마치 '(20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늬앙스가 담긴 발언을 했다.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에 나온 꼰대 체크 리스트를 보면, 꼰대들은 '내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리스트에는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는 참 한심하다 △'어린 녀석이 뭘 알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란 말에 동의한다 등의 항목이 있다.

정치인으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학생 성모씨(24)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지금 현실이 모두 기성세대 탓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정치인이 20대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는 게 치사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정모씨(26)도 "회사 선배가 저런 말을 해도 화가 나는데, 사회적 책임이 있는 당 대표나 지도부 인사가 마치 '멘토'처럼 행동하면 더 분노가 치민다"며 울분을 토했다.

심지어 황 대표는 20대에게 '고정 관념을 깨라'고 말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 임 작가가 90년대생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정직함'을 꼽은 가운데, 황 대표가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것. 임 작가는 '90년생이 온다'에서 "(90년대생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며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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