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다고 해서 온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배타미가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단지 스스로에게 더 “옳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는 자신의 사표를 들고 집 앞에 들고 찾아온 송가경의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화해를 기대하고, 청문회에서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한 색깔의 립스틱을 바른다. 박모건에게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끼면서도, 그와의 하룻밤을 굳이 “한심한 기억”이라 정의하는 이유는 그날의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원래 부당”하며 “합당하게 지켜지는 생존”이 불가능한 세상의 이치는 서른 여덟의 배타미를 생존에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타인의 현실 역시 자신의 현실만큼 무겁다는 것도 안다. 그가 혼자 고기를 먹으러 온 초면의 여성에게 테이블을 내어주며 친절하게 대하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차현(이다희)의 남자친구가 저지른 외도에 분노하며, 자신으로 인해 사업에 피해를 입은 박모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박모건과의 만남을 끝내기 위해 “다음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수정의 눈동자에 감도는 찰나의 물기는 배타미가 애써 감춘 온도의 본질을 보여준다. 도화지같은 얼굴 위에 미세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입히고, 서늘하게만 보이던 눈동자에 다양한 감정을 품는 임수정의 모습은 배타미가 근본적으로는 온화한 선을 품고 있음을 신뢰하게 한다.
“평소 저는 제 나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과거 임수정은 화장기가 없는 자신의 얼굴 사진에 늙어보인다는 악플이 달리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배우로서 “더욱 건강하고 매력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몸상태의 작은 변화도 얼굴에서 표현이 되는 나이” 역시 자신의 현실임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회사한텐 내가 몸빵 대신해주는 부품인지 몰라도 난 내가 소중해요. 날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 말하는 배타미의 모습과 닮았다. 서른여덟의 나이지만 “모든 일의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어른”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배타미의 대사처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신의 온도를 찾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과제이기도 하다. 더 적절한 온도를 고민하며 성장하는 배타미를 표현하기 위해 냉랭함과 온기를 오가는 임수정의 얼굴은, 그래서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명확하게 인간의 온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