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kg 마약 찾은' 국정원 H요원 "日야쿠자 놓쳤을 땐…"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9.06.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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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마약전쟁 24시 中]①국정원 H요원, 수년간 추적끝에 찾은 인구 6% 동시 투약 마약…언제든 팔수있는 '상품' 상태로 나와

편집자주 연예인과 재벌3세 사건처럼 마약이 일상으로 침투, 마약청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대량의 필로폰이 제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로 꼽히는 골든트라이앵글(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 수입되는 물량도 급격히 늘고 있다. 쉼없는 마약과의 전쟁을 조명했다.

'112kg 마약 찾은' 국정원 H요원 "日야쿠자 놓쳤을 땐…"


"1㎏(킬로그램)씩 나눠 포장돼 있었죠. 사는 사람이 문제 삼을 수 있으니까 포장재 무게까지 더해서 1㎏짜리 필로폰 90개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대량 도매 상품'이죠"



국가정보원 국제범죄담당 H 요원은 지난해 8월 국내 수사기관 관계자와 함께 서울 신촌 모처에 위치한 창고를 급습했다. 현장에서 본 것은 여행 가방 4개에 나뉘어 담긴 마약 90㎏. 이미 유통되고 흔적만 남은 분량을 더하면 112㎏으로 국내 인구의 6%가량인 3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국내 마약 수사 사상 최대 분량 마약을 단속한 지난해 사건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야쿠자가 서울 강남 일대 주거지 여러 채를 빌려 국내 폭력조직에 필로폰 공급한다'는 소설 같은 첩보는 8.6㎏, 28만명 동시투약분에 달하는 필로폰 적발과 함께 사실로 드러났다. 동시에 '대만 마약 공급 조직 -일본 야쿠자 - 국내 폭력조직'으로 이어지는 대형 마약공급 루트를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그로부터 반년 후 국정원이 주목하고 있던 마약 유통 주요 인물 가운데 일본 야쿠자 1명이 국내에 입국했다는 첩보가 들어온다. 일본 야쿠자 일원인 그는 대만 관광객 사이에 섞여 호텔에 짐까지 풀었다.

그러던 중 일본 야쿠자가 관광객 일행에서 이탈해 대포차량(미등록차량)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리 약속해 놓은 동선인지 미행을 피하기 위한 것인진 확인되진 않았지만 국정원과 경찰, 세관 등 그를 감시하던 관계자를 따돌리긴 충분했다.

무소득으로 끝난 줄 알았던 추격전은 다시 반년 후 실체를 드러냈다. 태국을 통해 부산항으로 마약을 숨긴 나사 제조 기계가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고, 나사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기 위한 기술자도 국내로 입국했다. 집요한 추적 끝에 경기도 모처에 필로폰을 담았던 나사 기계를 찾아냈다. 여기서 꺼낸 필로폰은 서울 신촌 임대 창고에 대량으로 보관돼있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90㎏이라는 대규모 필로폰 규모도 규모지만, H 요원을 놀라게 한 건 1㎏짜리 완전히 상품 상태였다는 점이다. 고객의 문제 제기를 고려해 포장재 무게까지 더해 1㎏보다 조금씩 무게를 더했다. 필로폰이 덩어리로 밀반입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판매할 수 있는 상태로 국내에 들여온 셈이다.

1㎏짜리 포장재 22개가 사용된 흔적이 남이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추적에 들어갔다. 결국 해외가 아닌 국내에 1㎏ 필로폰 '상품' 22개가 유통된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H요원은 "2017년 강남 일대 적발 당시 어느 정도 국내에 필로폰 유통망이 구축돼 있다는 점은 확인했다"면서도 "이미 포장재 무게까지 계산할 정도로 필로폰을 상품화시켰다는 점에 많이 놀랐다"고 회상했다.

◇사람만 쫓으면 되는 마약 수사, 이제 유통망을 쫓아야 = 과거의 마약 유통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마약을 1㎏ 공급할 수 있는 업자, 10㎏ 공급할 수 있는 업자가 나뉘어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투약자에게 가는 사람 대 사람의 거래방식이 주를 이뤘다. 즉 사람을 잡으면 마약 거래를 잡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2㎏ 규모 필로폰 적발사건은 단순히 국내에 들어오는 마약 규모뿐만 아니라 '언제든 유통 가능한' 도매상품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사정 당국 관계자는 입을 모았다. 음지에 있는 마약 투약자 풀(pool) 중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마약을 대량으로 쉽게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람을 통해 한번에 수백g(그램)씩 들어오는 게 고작이었다"며 "지금은 밀반입에 특화되고 추적이 힘든 해외 마약조직이 직접 국내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조직에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통신기기 발달로 인한 비대면 거래환경 역시 대량의 마약 유통을 부추겼다고 사정 당국은 진단했다. SNS(소셜네크워크서비스)와 IT(정보기술) 발달로 상위 공급 총책이 유통망까지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마약 거래가 가능해졌다.

지정된 장소에 마약을 갖다놓고 투약자가 수거하는 '던지기' 수법도 미리 약속을 정하는 게 아니라 거래 시점에 추적이 어려운 SNS 메시지로 던지기 장소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공급책이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는 위험 부담을 지지 않고 일면식이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마약 판매가 가능해졌단 소리다. 그 결과 '대규모 도매 상품상태' 마약이 해외에서 직접 들어올 지경이 됐고, 2015년 이후 보기 드물었던 ㎏ 단위 적발사례가 잇따라 나온다고 한다.

국정원 국제범죄담당 C 요원은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마약 거래 규모를 추산하기 어렵지만 투약자 수 증가와 잇따른 대량 거래 적발 사례가 늘고 있다"며 "적발한 사례로 미뤄볼 때 훨씬 더 많은 양이 적발되지 않고 거래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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