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살인죄로 고발할거야"…트럼프가 우릴 협박한다면?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06.17 03:36
글자크기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美 정치권 덕에 위기 넘긴 멕시코·美 정치학계에 지원금 뿌리는 일본…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986년 가을, 도널드 트럼프 당시 트럼프오거니제이션 회장은 미국 조지아주의 한 농장주를 돕고 있었다.

빚더미에 앉은 농장주의 남편은 농장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보험금이 나왔지만 빚을 갚기엔 어림도 없었다. 농장주 애너벨 힐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로 본 트럼프가 직접 모금운동에 나섰다.

트럼프는 농장주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농장의 경매를 미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부사장은 어쩔 수 없다며 곧 농장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협박했다. "내 말 잘 들어! 만약 당신들이 농장을 경매에 넘긴다면 내가 당신과 당신 은행을 살인죄로 고발할거야. 당신들이 농장주 가족을 괴롭혀서 죽게 만든 거니까."

부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 곧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결국 은행은 경매를 포기했다. 이후 트럼프와 친구들은 모금을 통해 농장의 빚을 모두 갚아줬다.



트럼프의 타고난 오지랖이 선행으로 이어진 경우다. 동시에 그의 협상술, 아니 '협박술'이 먹힌 사례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스타일엔 변함이 없다.

협박은 트럼프식 문제 해결의 단초다. 상대의 머리에 총을 겨눈 뒤 협상을 시작한다. 북한에게 그랬고, 중국과 멕시코에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상대방도 가만 있을리 없다. 협박을 날리는 순간 자신도 반격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방식이 '벼랑끝 전술'(brinkmanship) 또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수법이 과연 국가 간에도 통할까? 북한과 중국의 경우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덴 성공했지만 결과는 아직이다. 멕시코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하며 '관세폭탄'을 거둬들였지만, 미국 주류언론들은 멕시코로부터 새롭게 얻어낸 게 없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관세폭탄을 위협하면서 시작된 협상에서 양국이 공식 합의한 건 크게 2가지다. 중남미 이민자 차단을 위해 멕시코 남쪽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고, 미국 망명 심사 때 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2가지 모두 양국 정부 사이에 이미 합의가 됐던 내용이란 점이다.

미국이 멕시코에 새롭게 요구한 건 '안전한 제3국 지정'이었다. 이민자들이 미국 대신 제3국인 멕시코에 망명을 신청토록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공동선언문에선 빠졌다. 미국이 새로 얻어낸 것이라면 45일 뒤에도 불법이민이 줄어들지 않을 경우 '제3국 지정'을 논의키로 한 것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총을 빼들었다가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선 셈이다.

멕시코 입장에선 설령 양보한 게 없더라도 정말 잃은 게 없을까. 난데없는 협박을 받고 대통령까지 나서 "대화로 풀자"며 협상을 구걸하는 동안 구겨진 국가적 자존감은 어쩔건가. 우리나라가 멕시코의 입장이었다고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나라에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하며 관세로 압박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그런 협박에 의연하게 맞설 준비가 돼 있을까.

멕시코가 위기에서 벗어난 건 미국 정치권과 경제계의 지원사격 덕분이다. 멕시코 관세폭탄 위협에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도 반기를 들었다. 미 상공회의소는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폭탄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만약 우리나라가 멕시코와 같은 처지에 처한다면 과연 도와줄 누군가가 미국에 있을까. 미국 정치학계에 천문학적 지원금을 쏟아부어 '우군'을 양성하는 일본만큼은 아니라도 말이다. 약자에게 협박을 서슴지 않는 초강대국 지도자를 만난 탓에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너 살인죄로 고발할거야"…트럼프가 우릴 협박한다면?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