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포기할 때까지" 홍콩은 왜 분노하나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6.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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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안' 반대에서 중국의 '내정간섭' 중단 목소리로 점점 커져...최루탄·물대포 강경 진압에 쇠파이프로 맞대응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100만명의 인파가 거리로 나온 사상 최대 규모 홍콩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중국과의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홍콩 시민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한다"며 경찰과의 무력충돌마저 발생하고 있어서다. 홍콩 시민들은 왜 그렇게 분노하며, 홍콩 정부는 왜 그렇게 강경하게 법안을 밀어부치는 것일까?

13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주말동안 홍콩시민 100만명이 집회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도 수만명이 홍콩 국회를 포위하는 등 시위를 지속했다. 홍콩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 물대포를 쏘며 강경 대응했고,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맞서다 72명이 부상을 당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12일 예정된 법안 심의는 연기됐다. 시위대가 1차 승리를 거뒀지만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번 시위를 '조직된 폭동'으로 규정하고 "최대 1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이번달안에 법안 처리를 강행할 예정이라 충돌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시위는 1997년 중국에 홍콩이 반환된 이후 최대 시위이다.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본토로 송환하도록 악용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홍콩 반환때 약속했던 '일국양제(한나라 두체제)'를 지키지 있지 않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같은 갈등이 시작된 것은 2013년 시진핑 중국 국자주석이 취임하면서 부터다. 이전만해도 외신들은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놨고, 영국과 캐나다 등으로 이민 갔던 홍콩인들이 홍콩으로 복귀하는 등 중국과 홍콩간 관계는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시 주석이 홍콩 통제를 강화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갈등이 터진 게 2014년 50여만명이 79일간 벌인 '우산혁명' 시위다. 당시 중국이 홍콩 행정장관 선거 출마 자격을 후보선출위원회가 지명하는 2~3명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히자,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등 정치 개혁을 요구하며 79일간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중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홍콩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 등으로 강경 진압했고, 결국 시위대는 강제 해산됐다.



이후 우산혁명 강제 해산에 큰 공을 캐리 람 행정장관이 중국 당국의 눈에 들어 2017년 행정수반에 등극했다. 홍콩 첫 여성 행정장관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강경 친중파인 그는 홍콩 시민들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홍콩의 마가렛 대처'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우산혁명 당시 1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이후엔 중국 당국과 발맞춰 홍콩 독립운동파 단속을 강화했고, 지난해 9월엔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을 홍콩 정당 역사상 최초로 해산시키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우산혁명 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이 8~1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번 시위의 원인인 '범죄인 인도 법안'이 우산혁명에 앙금을 가진 중국이 꺼낸 보복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홍콩의 이번 법안을 지지한다는 입장까지 내놨고, 미국과 영국 등 각국의 우려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선을 그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의 시위가 단순한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를 넘어 중국의 내정 간섭 중단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홍콩의 학생들과 민원 운동가들을 인용해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베이징같은 중국 도시처럼 만드려는 시도를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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