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누구나 마약을 쉽게…" 위기의 대한민국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김영상 기자 2019.06.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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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마약전쟁 24시 上]

편집자주 연예인과 재벌3세 사건처럼 마약이 일상으로 침투, 마약청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대량의 필로폰이 제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로 꼽히는 골든트라이앵글(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 수입되는 물량도 급격히 늘고 있다. 쉼없는 마약과의 전쟁을 조명했다.

국정원 K요원의 독백 "강남 한복판서 야쿠자 마약, 소설 같은 일이"
[국정원-마약전쟁 24시 上]①한국 '마약청정국' 지위서 '마약공화국' 기로에 서다

[MT리포트] "누구나 마약을 쉽게…" 위기의 대한민국


"설마, 우리나라가 이 정도까지…"



2017년 8월 국가정보원 국제범죄담당 K요원은 입수한 첩보를 두고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집값이 비싸다는 강남 한복판에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가 아지트를 마련해 놓고 대만 폭력조직과 필로폰을 대량 거래할 예정이라는 첩보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약을 10~20㎏(킬로그램)씩 대량으로 유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며 "그간 한국은 마약 경유지로 인식됐기 때문에 첩보를 선뜻 믿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검증 작업에 돌입하자 첩보는 점차 '검은 몸뚱이'를 드러냈다. 2개월여에 걸친 추적 끝에 국정원은 대만조직이 필로폰을 국내에 반입, 국내 야쿠자 조직을 거쳐 대구·부산을 근거지 삼은 국내 마약 밀매조직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해 10월 검거한 이들로부터 압수한 필로폰은 무려 28만여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8.6㎏에 달했다. 이미 2015년 무너진 마약청정국 지위에서 나아가 마약공화국의 가능성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실제 국내 마약 유통 양상은 최근 2~3년을 전후로 180도 달라진다. 국내 밀매조직이 직접 해외서 소규모로 들여오던 방식에서 한번에 수십㎏씩 들여오는 대량 유통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역대 최대 규모인 112㎏ 필로폰 밀반입을 잡아내기도 했다.


K요원은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동남아 등지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마약밀매 조직의 국내 진출을 꼽는다. 그는 "이들은 태국-미얀마-라오스 3개 국가가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마약을 세계 각국에 유통한다"고 말했다.

강한 처벌·단속 등으로 유통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시장 특성이 역설적으로 해외 마약 조직에는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느껴지게 했다는 것이다. 국내 조직은 밀반입의 위험을 부담하기보다는 유통망을 마련하는 식으로 분업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여기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한 '던지기' 수법 등 비대면 거래가 늘며 한국의 자체적인 마약 소비가 증가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더는 한국이 일본과 호주 등지로 향하는 경유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최일선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K요원은 한국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K요원은 "최근 사회 저명인사들 마약사건에서 보듯이 국내에 마약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외국처럼 누구나 마약을 쉽게 접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국민도 경각심을 가지고 정보·수사기관과 함께 마약을 뿌리 뽑는데 동참해 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구멍 뚫린 대한민국…'보급형 뽕의 시대' 눈앞
[국정원-마약전쟁 24시 上]②1990년대 이후 한국 떠난 마약, 거대 자본·기술 타고 회귀

[MT리포트] "누구나 마약을 쉽게…" 위기의 대한민국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 보급형 뽕의 시대…"(영화 '극한직업' 중)

올해 초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유명클럽 '버닝썬'에서 성폭력과 마약,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불거지면서 한 때 '마약청정국'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마약 범죄 생태계도 재조명받고 있다.

20여년간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던 마약 조직은 2010년을 전후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일부 마약사범을 중심으로 소규모 마약을 거래하던 것과 달리 일정규모 이상 시장과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마약 범죄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화 대사에서나 나오던 '보급형 뽕(필로폰)의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잃어버린 마약 청정국 지위, 다시 한국 노리는 국제 마약조직= 국가정보원 국제범죄 담당 부서와 수사기관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전쟁 이후 마약 생산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에서 마약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80~90년대 이후다.

일명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대대적 소탕으로 마약 사범은 음지로 숨어들었고, 제조업자들은 중국 동북 3성 일대로 근거지를 옮겼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출발한 화물은 세관 통과가 덜 까다롭다'는 인식으로, 마약 유통조직 역시 마약을 국내에 판매하기보단 일본과 호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둘러싼 '마약 유통 지도'에 변화가 생긴 시점을 201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위해 대대적인 범죄 단속에 나서면서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진행했던 '범죄와의 전쟁' 결과처럼 중국에서 활동하던 제조업자 등 마약 사범이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로 거점을 옮겼다는 분석이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느슨한 사법체계 속에서 마약을 제조·수출하기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마약 제조 조직이 중국에서 제3세계 국가로 스며들고, 인건비 등 마약 제조 비용이 줄어들면서 한때 마약으로부터 청정국 지위를 확보했던 우리나라의 유통량도 늘어났다고 한다. 마약 유통 조직이 자본과 가격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보다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한 국정원 국제범죄 담당 요원은 "동남아에서 거래되는 필로폰이 국내를 거치면 적게는 5배에서 7배까지 가격이 뛴다"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범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선택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20여년간 마약 범죄의 심각성과 거리가 있었던 한국은 2015년부터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통상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을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당국이 검거한 마약사범은 1만2613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28명 수준이다.

◇경유지에서 소비지로…강해지는 마약류 경고 신호= 국내 유입되는 마약류 증가는 단순히 국내를 거쳐 일본과 호주 등 최대 수요국으로 향하는 양이 증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양이 늘어났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 이상 한국도 마약으로부터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다.

동시에 IT(정보기술)기기의 발달로 마약 유통 과정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사라진 것도 국내 마약 유입과 유통, 소비를 늘리는 요소로 꼽힌다.

과거의 마약 거래는 '사람 대 사람'이 직접 만나 은밀히 마약과 돈을 주고 받았지만 최근엔 스마트폰과 각종 메신저 프로그램 등으로 직접 접촉 없이 특정 장소에 마약을 갖다놓고 위치를 전송하는 '던지기' 수법이 일반화됐다는 설명이다. 마약 사범 소수가 모인 소규모 집단에서의 유통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 유통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필로폰 상습투약혐의로 구속기소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 역시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CCTV(폐쇄회로화면)이 수사당국에 포착돼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미 한국은 마약 경유지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일정 수준 이상 마약을 소비하는 소비국이 됐다"며 "대량으로 마약을 공급하는 국제범죄 조직과 거래에 이용하는 IT기기 발달로 확산속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지난해 10월15일 오전 나사제조기 속에 필로폰 90 kg분량(압수한 필로폰은 3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세로 약 3,000억원 규모)을 숨겨 밀반입한 대만, 일본, 한국 3개 마약 조직원 일당 8명을 검거(구속 6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사진=뉴시스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지난해 10월15일 오전 나사제조기 속에 필로폰 90 kg분량(압수한 필로폰은 3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세로 약 3,000억원 규모)을 숨겨 밀반입한 대만, 일본, 한국 3개 마약 조직원 일당 8명을 검거(구속 6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사진=뉴시스
이동우 기자, 김영상 기자

"마약, 한국 거쳐야 돈 된다" 한국 넘보는 세계 3대 마약조직
[국정원, 마약전쟁 24시 上] ③국내 마약 가격, 동남아보다 훨씬 비싸…국제 마약조직이 주요 거래처로 눈독

[MT리포트] "누구나 마약을 쉽게…" 위기의 대한민국
한국이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이다. 이제 마약 시장에서 한국은 돈이 되는 국가로 통한다. 경제논리에 올라탄 마약범죄가 단순히 개인의 쾌락을 위한 도구를 넘어서서 지하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마약 유통이 크게 증가한 것은 치밀한 경제 논리가 작동한 결과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2016)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통되는 필로폰 가격은 1g당 422.5달러(한화 50만원가량)다.

마약 가격이 시기에 따라 변동성이 큰 점을 고려하더라도 필로폰 주요 산지로 꼽히는 △캄보디아 20달러 △미얀마 16.3달러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20배를 넘어선다. 마약의 주요 생산지인 동남아에서 일본, 호주 등 제3국에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 한국을 거치면 화물 출발지를 숨길 수 있고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국내 마약 가격이 높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 담당 F요원은 "과거 1960~1980년대에는 국내에서 제조 기술자들이 마약을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했지만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으로 단속이 강화되자 대부분 중국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술자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자 국제 마약 조직이 직접 대규모 유통망을 꾸려 국내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다. 대만 죽련방, 홍콩 삼합회, 일본 야쿠자 등이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국내에 필로폰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개인이 투약 목적으로 알음알음 거래하던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업형 범죄로 성장한 것이다.

이들은 거래 도중 일부가 적발되더라도 나머지로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고 거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를테면 필로폰 100㎏을 밀반입해 이 가운데 20㎏ 정도만 유통하더라도 마진이 크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은 넘긴다는 계산이다. 한국은 아직 마약 청정국 이미지가 있어 한국발 화물이 일본과 호주 등 다른 나라에 도착할 때 세관당국을 통과하기 쉽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최근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주요 마약 생산국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생산이 크게 늘면서 국내 반입량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UNODC 통계를 살펴보면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압수한 필로폰은 2017년 82t(톤)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분기 누적기준 116톤을 넘었다. 심지어 새로운 마약 제조기법을 통해 국내에서 직접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국정원과 수사당국에서는 국제 마약 조직의 국내 침입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정원 소속 C 요원은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마약 사건을 보면 마약 조직이 판매 목적으로 직접 생산에 나설 정도로 자체 수요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며 "다크웹이나 특수 채팅어플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마약조직이 국내와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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