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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YG 음악을 듣는 것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ize 기자 2019.06.1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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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절반을 향해 가는 지금, 음원 차트는 다양한 음악들로 꽤나 번잡스러운 모양새다. 6월 8일 멜론 일간 차트 기준 1위는 또 하나의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이다. 앤-마리(Anne-Marie, 2위)나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5위) 같은 팝이 드물게 순위권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다비치나 박효신, 장범준 같은 전통적 ‘대중픽’ 음악가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음악가들의 이름이 있다. 무려 3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이하이의 ‘누구 없소(No One)'(3위), 위너의 ‘AH YEAH(아예)’(12위)는 물론 발매한 지 두 달이 넘은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도 여전히 15위를 지키고 있다. 올 들어 YG가 발표한 작품 모두가 발표 시기와 상관 없이 차트 최상위권에 놓인 셈이다.

같은 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연예계 이슈도 대부분 YG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되어 있었다. 지난해 11월 빅뱅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갖은 논란은 해를 넘기며 보다 본격적이며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논란의 범위는 폭행을 넘어 클럽과 경찰 간의 유착, 탈세, 마약, 성매매까지 뻗어나갔고, 논란은 승리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양현석에서 지난해 5월까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월드스타’ 싸이에까지 이르렀다. 추악한 어둠의 가지는 YG엔터테인먼트 밖으로도 뻗어 나갔다. 승리와 함께 단체 채팅방을 통해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남성 아티스트들은 정준영을 필두로 실명이 공개되는 동시에 연예계 은퇴나 무기한 자숙을 선언했다. 사건은 전 언론사의 종합 1면을 장식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MBC ‘PD 수첩’등 시사 프로그램들도 이들을 둘러싼 의혹과 진실규명에 한 회를 통째로 할애했다. AP통신, 로이터통신, CNN 등 대표적인 외신들도 입을 보탰다.

이쯤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면, 맞다. 역대급이라 불러도 좋을 소란 속 음원 차트만은 놀라우리만큼 평온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케이팝 신에서 드물게 전통적으로 음원 차트에 강한 레이블이다. ‘YG 노래는 팬이 아닌 일반인도 듣는다’는 인식의 기반을 만든 그룹 빅뱅에서부터 2NE1, 위너, 아이콘, 악동뮤지션, 블랙핑크에 이르기까지 YG의 이름 아래 발매된 노래들은 발매와 동시에 늘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돌팝과 함께 2010년대 대한민국 음악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힙합을 기본으로 한 음악 스타일이나 어딘지 ‘팝’하고 ‘글로벌’하게 느껴지는 이미지 메이킹이 성공적이었던 덕분이다. 어쩐지 설득 당하려는 찰나,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아직도?



버닝썬의 이름이 처음으로 미디어에 언급된 이래, 국내 언론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와 관련된 뉴스를 쏟아냈다. 매일이 경악, 매일이 환멸이었다. 눈만 뜨면 새롭게 쏟아지는 소식에 대중은 댓글과 SNS를 통해 강도 높은 분노와 성토를 쏟아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YG엔터테인먼트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글들로 홍수를 이뤘다. 주식시장도 반응했다. 지난 5월 말, 양현석 대표의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자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하루 만에 무려 12.50%가 빠졌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런 상황에서 놀랍게도 음원 차트만은 굳건했다. 사건 보도 이후 YG에서 발매된 블랙핑크, 위너, 이하이의 노래는 모두 차트 등장과 동시에 당연하다는 듯이 정상권에 올랐다. 높은 음원 순위에 힘입어 음악 방송 1위 역시 어렵지 않게 차지했다. 적어도 음악계에서만은, YG엔터테인먼트는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이처럼 인지부조화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분석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가장 쉬운 건 관련 이슈에 민감한 이들과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을 듣는 청취자 사이 교집합이 크지 않으리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을 듣는 이들은 케이팝이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두루 살펴 듣는, 이른바 ‘차트 100’에 익숙한 청취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여론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내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익숙한 음악이고, 때때로 그룹 사이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레이블 특유의 음악적 색깔을 공고히 하고 있는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은 이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신곡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테다. 한편 음악과 사생활은 분리해 생각하자는 대중의 무의식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과물만 좋다면 사람이고 과정이고 무슨 대수냐는 바로 그 생각 말이다.

언젠가부터 당당한 자기합리화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한 이 생각은 어느새 우리에게 찜찜한 소비에 따르는 죄책감을 덜기에 더없이 좋은 핑계거리로 자리잡았다. 생각 그 자체로 세상에 무슨 해가 될까 싶겠지만 과연 그럴까. 이 작고 무심한 개인의 생각 타래들은 하나씩 모이고 엮여 결국 누군가에게 어떠한 사회적 물의와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결과물만 좋다면 언젠가 다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동아줄을 제공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잠잠해지면 전과 다름 없어질 거라는 그릇된 기대도 물론 함께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만난다. 한쪽에서는 성접대, 고위층, VVIP 등의 단어와 함께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해당 레이블의 노래가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국민과 대중’에게 사랑 받는 하루를. 버닝썬 게이트에 분노를 쏟아내는 이들과 YG엔터테인먼트의 음악을 마음 편히 재생하는 이들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존재 할까. 그 간극을 상식으로 좁힐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새삼 깨닫는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아닌 의식 있는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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