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뒤집기의 절묘한 한수…‘파격’의 감독, ‘표현’의 무용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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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4년 만에 선보이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신데렐라’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과 안재용 수석무용수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안재용. ⓒ김윤식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안재용. ⓒ김윤식


감독은 ‘파격’에 골몰하고, 무용수는 ‘표현’에 집중했다. 한 작품을 두고 두 사람이 딴(?) 생각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무대는 진화의 걸음을 재촉했다.

전통 발레의 엄격함과 법칙에서 조금 떨어진 실험으로, 관람객이 파격적 재미와 흡인력을 느낀다면 공은 온전히 두 사람의 몫일 듯하다.



1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신데렐라’는 기시감을 배제한 또 하나의 창작으로 만날 준비를 했다.

선두주자가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장-크리스토프 마이요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와 거리가 멀다”며 파격을 예고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왼쪽)과 안재용 수석무용수.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br>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왼쪽)과 안재용 수석무용수.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월트디즈니의 ‘신데렐라’를 생각하고 오시면 놀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무대엔 황금마차도, 벽난로도, 유리구도도, 심지어 못생긴 자매들도 없어요. 우리가 아는 스토리로 이 공연을 또 볼 필요가 있을까요?”

그의 반문에 호기심이 슬슬 끓어올랐다. 파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데렐라에 번쩍 빛나는 유리구두가 아닌 금가루를 묻힌 맨발을 입혔다. 만들어진 동화의 모델이 아닌, 본질을 드러내는 현실의 자아로 인식하자는 감독의 의중이 실린 중요한 포인트다.

“발레와 토슈즈는 불가분의 관계지만, 맨발은 옷을 벗은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커요. 신데렐라의 사랑이 동화 속 그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걸 맨발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용수들에게 곧잘 그런 말을 던집니다. ‘옷을 벗고 자연스럽고 단순한 모습을 드러내라‘고요. 현실로 인식하기 위해선 그런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신데렐라' 공연 무대에서 안재용은 다양한 감정이 투영된 신데렐라 아버지 역을 맡았다. ⓒAlice Blangero'신데렐라' 공연 무대에서 안재용은 다양한 감정이 투영된 신데렐라 아버지 역을 맡았다. ⓒAlice Blangero
‘신데렐라’는 1993년부터 마이요 감독이 맡아 1999년 초연했다. 그의 초빙으로 무대는 ‘고전’에 묶이지 않고 ‘현대’ 발레의 새로운 길로 확장했다. 2005년 내한공연 당시 ‘역대 신데렐라 중 가장 성공한 발레’ 같은 호평을 받으며 이 발레단의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파격은 또 있다. 계모와 왕자가 중심이 된 이야기는 이 작품에선 신데렐라 친부모로 옮겨진다. 죽은 신데렐라 엄마가 요정으로 변신해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이 과정을 통해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층적으로 그려진다.

비중이 높은 아버지 역할에는 초고속 승급으로 올해 1월 수석무용수가 된 한국 무용수 안재용이 맡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16세에 발레에 입문한 그는 마이요 감독이 젊은 시절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무작정 모나코로 날아갔다. 그리고 3년 만에 수석무용수 자리를 꿰찼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  ⓒAlice Blangero<br>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 ⓒAlice Blangero
186cm의 키에 조각 같은 몸매를 앞세우고 이날 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3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뜻하지 않은 환대에 반가우면서 부끄러웠다”고 했다.

“승급 소식을 들었을 땐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꼈어요. 파격적인 감독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하다, 단순히 테크닉적으로 그 역할을 소화해내기보다 그 인물에 좀 더 파고드는 감정 표현으로 예술세계를 넓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간 정교한 보여주는 동작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인물 표현력에 더 집중했던 셈이에요.”

안재용 수석무용수. ⓒ김윤식안재용 수석무용수. ⓒ김윤식
안재용은 지난 8, 9일 무대 첫 시작인 대구 공연을 마친 뒤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한 꼬마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울었다’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감정 표현에 대한 반응은 누구나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남은 공연에서도 그런 감정을 잘 전달해 드리고 싶어요.”

공연은 오는 12∼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8∼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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