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미중 '화웨이 대충돌' 볼모 된 삼성·SK '中공장'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김세관 기자 2019.06.10 17:21
글자크기

4대 그룹 계열 현지 생산법인만 30~40곳…가동중단 현실화되면 사업 전반 타격…2년 전 사드 보복 땐 직·간접 피해 8.5조원

편집자주 중국의 통신회사 화웨이를 겨냥한 미국의 공세가 전방위적이다. 상대국을 향한 고율 관세에서 시작한 세계 경제 1, 2위 대국 간의 패권 냉전이 기술 분야까지 확전되며 화웨이에서 대충돌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고립화 전략과 '미국에 협조하면 재미없다'는 중국의 압력 속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MT리포트]미중 '화웨이 대충돌' 볼모 된 삼성·SK '中공장'


"중국 현지공장은 사실상 볼모죠. 중국과의 관계가 삐걱대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반(反)화웨이 사태'로 구체화되고 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편가르기를 압박하고 나서면서 삼성·SK·LG 등 중국 현지에 생산라인을 둔 국내 기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당장 판매망이 무너지는 것도 걱정이지만 현지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사업 전반이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중국 투자 규모='화웨이 고민'의 크기 =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중국 현지 생산법인은 4대 그룹 계열사만 줄잡아 30~40곳에 달한다. 중국 현지업체와 합작 형태로 국내에서 투자한 자금이 수십조원 규모다.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가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가 우시에서 D램을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7조9000억원을 들여 시안 낸드플래시 2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9500억원을 투자해 지난 4월 증설한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을 만든다.

LG전자 (96,800원 ▼200 -0.21%)는 난징·타이저우·친황다오·칭다오 등 중국 8개 지역에서 가전, 휴대폰, 자동차 전장 텔레매틱스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LG디스플레이 (10,580원 ▼50 -0.47%)가 2017년부터 5조원을 투자한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라인은 올 하반기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SK이노베이션 (118,400원 ▼2,300 -1.91%)은 중국 최대 완성차업체인 베이징자동차와 합작, 8200억원을 들여 창저우에 배터리 셀 공장을 짓고 있다. 4000억원을 투자한 배터리 소재 생산공장도 착공했다.


◇ 가동중단 조치 땐 방법 없어 =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글로벌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건설한 중국 현지공장에 대한 제재다. 이미 선례가 차고 넘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보복이 절정이던 2017년 3월 롯데마트 중국 매장 99곳 가운데 87곳이 영업정지를 당한 뒤 지난해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소방법·위생법 등을 동원해 롯데마트에 장기간 영업정지를 내렸다. 롯데제과가 미국 허쉬와 합작해 운영하던 상하이 생산공장도 이때 생산정지 조치를 받았다.

반도체 라인의 청결도나 화학물질 발생 등을 이유로 중국 당국이 제재를 내린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방법이 없다. 소방·안전점검 외에 세무감사, 공해물질 배출 조사, 통관 지연 등 중국 당국이 동원할 카드가 많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보이는 반응에서도 이번 사태를 대하는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상되는 피해나 대응책 등을 묻는 질문에 극도로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사드 사태 당시 중국 현지를 경험했던 업계 관계자는 "민간을 동원한 반한운동조차 실제 경험하면 생각 이상의 부담"이라며 "중국 당국은 마음만 먹으면 기업의 목을 여러 각도에서 죌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편에선 화웨이의 대표적인 협력기업으로 지목된 기업들도 좌불안석이다. 국내 이동통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화웨이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사용 중인 LG유플러스는 미국 주도의 반(反)화웨이 정책에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공식적으로는 화웨이 장비 설치를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업계에선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 "中 칼날, 2년 전에도 韓에 더 날카로워" = 한중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중국이 쉽사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론은 이미 2년 전에 깨졌다.

사드 사태 때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등이 "한중관계는 고도화돼 있어서 쉽게 경제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전면적인 경제보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국내 기업이 치른 대가는 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7년 3월부터 1년 동안 국내 기업이 입은 직·간접 피해를 8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던 롯데그룹이 1년 동안 입은 피해 규모만 2조원에 달한다는 집계가 있다.

중국과의 전면전이 한창인 미국 기업에서도 피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전체 매출의 20%가량이 중국을 포함한 범중화권에서 나오는 애플의 경우 최근 한달새 주가가 20% 가까이 떨어졌다. 업계에선 중국 선전에서 애플 아이폰을 조립하는 팍스콘이 당국의 압박으로 제조 지연 사태를 빚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시장 관계자는 "중국은 일단 칼을 빼 들면 미국보다 더 지저분한 게임을 할 수 있는 나라"라며 "2년 전처럼 직접 미국에 칼날을 들이대기보다는 틈바구니에 낀 국내 기업을 더 날카롭게 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