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사드 트라우마 '反화웨이 전선' 동참? 이탈?

머니투데이 최태범 기자 2019.06.1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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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미중 편가르기에 한국 샌드위치 신세…정부 ‘전략적 모호성’ 유지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중국 화웨이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 지사에 미중 갈등으로 개소식 연기 가능성도 점쳐졌던 5G 오픈 랩을 개소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화웨이코리아 사무실 모습. 2019.05.30.   dahora83@newsis.com【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중국 화웨이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 지사에 미중 갈등으로 개소식 연기 가능성도 점쳐졌던 5G 오픈 랩을 개소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화웨이코리아 사무실 모습. 2019.05.30. [email protected]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한국이 또 다시 샌드위치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 최대 통신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무역·기술 패권 갈등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사태가 미중간 ‘편 가르기’ 양상으로 흐르면서 한국이 동시에 양쪽에서 압박받는 형국이다.

중국은 최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을 불러 화웨이 제재 동참시 받게 될 보복을 노골적으로 위협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즈(NYT)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제재 동참을 직접 압박했다. 한국이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최대 격전지가 된 셈이다.



정부는 난감한 상황이다. 미국의 반(反) 화웨이 캠페인에 동참하자니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처럼 중국의 경제보복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웨이 제재 전선에서 이탈할 경우 한미동맹 균열로 미국과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다.

10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요약된다. 공식 입장을 유보하면서 물밑에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2016년 사드 국면 때도 중국의 압박을 최대한 흘려 넘겼다.



사드 사태 트라우마에도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는 건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양상이 그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의 경우 정부 차원의 안보 이슈를 중국이 경제 문제와 결부해 보복한 케이스다. 미국 정부가 동참을 직접 압박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화웨이와 거래 여부는 시장 논리대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날 브리핑에서 화웨이와의 거래 여부는 정부의 정책적 결정사항이라기보다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뜻을 내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일단 '미중 무역분쟁 전담조직'을 설치해 화웨이 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안들을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검토해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국정현안 점검조정회의에서 “미중관계의 전개는 무역분쟁이나 화웨이 문제를 뛰어넘는 광범한 영향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에 “미중관계를 본격적으로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두는 문제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총리의 지시에 따라 외교부는 전담조직 구성에 착수했다. 다만 최종 설립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어떤 방향성과 어떤 규모로 참여할 것인지는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명확한 원칙과 설득 논리없이 방관자의 입장만 고수하다간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양쪽이 한국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문제삼을 경우 애먼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내 기업의 화웨이 장비 사용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실질적인 위협 여부를 객관적이고 면밀히 분석해 미국과 중국에게 원칙을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화웨이와 관련해 얘기하고 있는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수 있다"며 "합리적인 이유라면 중국에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동맹이 시킨다고 (일방적으로) 따르거나 양쪽 눈치를 보다가 한 쪽을 (정치적으로) 택할 경우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수 있다"며 "주권국가로서 스스로 판단해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전문가인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화웨이와 사드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순수하게 기업 차원의 문제인데 정부가 개입한다는 식으로 보여지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경과를 보면서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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