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배터리 방정식, 일자리부터 풀리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19.06.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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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양극재 생산기지 짓는 '구미형 일자리' 착수…명분·실리 다 잡을까

LG의 배터리 방정식, 일자리부터 풀리나


LG (75,500원 ▼700 -0.92%)그룹이 '배터리 고차방정식'을 풀기 시작했다. 그룹 차세대 주력인 배터리 시장의 글로벌 점유율 확대와 국내 일자리 창출 문제가 엮인, 경영과 정치의 방정식이다. 실마리는 구미형 일자리다. 국내 일자리 창출을 넘어 글로벌 시장 강자로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10일 LG화학 (370,500원 ▼8,000 -2.11%)과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7일 이른바 '구미형 일자리'를 위한 투자유치 제안서를 경북도와 구미시로부터 전달받고 양극재 공장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LG화학의 구미 투자가 확정될 경우 현대차의 '광주형 일자리'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결정에 이어 LG그룹도 대대적인 국내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그림이 완성된다.



◇'구미형 일자리' 급물살…명분·실리 다 잡는다=양극재는 배터리 주요 소재로 생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한다. LG화학이 생산기술 고도화를 적극 추진하는 항목이기도 하다. 경북도와 구미시 등 해당 지자체는 LG화학에 투자규모 및 시기 확정을 요청하면서 세금 감면, 부지제공 등 투자인센티브 내용도 전달했다. 인력확보를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협의는 추가로 진행되겠지만 우선 지자체가 LG화학을 '모셔가는' 그림이 완성됐다. 입지와 세제 면에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지방 사업장 운영의 성패가 달린 양질의 일자리 확보는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구체화되기 어렵다. LG화학으로서는 최대한 얻어낼 것을 얻어내야 한다.



게다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폴란드 증설분의 국내 유턴이 아닌 별도 양극재 공장 건설을 검토하면서 투자의 순도도 높아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산량 증설 경쟁은 그대로 진행하되 고부가가치 핵심 소재에 대해서는 대규모 국내 투자를 진행하는 구도다.

정치적 숙제가 풀린다는 면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투자는 전적으로 기업이 결정할 영역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청와대와 국회, 기업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복잡하다. 삼성과 현대차, SK 등은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광주형일자리 발표 등으로 먼저 '일자리 숙제'를 털었다. LG는 한 발 늦었다. 정치권이 LG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건 이미 구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자리 확보라는 정치적 명분 앞에 LG도 숙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구미 투자로 LG그룹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이 지난 1월 9일 중국 난징에서 난징시와 배터리 1공장 증설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왼쪽 세 번째부터) 장위에지엔 난징부시장, 란샤오민 난징시장,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사장./사진=LG화학LG화학이 지난 1월 9일 중국 난징에서 난징시와 배터리 1공장 증설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왼쪽 세 번째부터) 장위에지엔 난징부시장, 란샤오민 난징시장,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사장./사진=LG화학
◇배터리 잘 나가도…'숙제 산적'=배터리는 LG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일 뿐 아니라 반도체 이후 국가 경제를 지탱할 한 축이다. LG화학의 분전은 단연 눈에 띈다. 구광모 LG 회장 취임 이후 매출 기준 글로벌 화학기업 톱10에 진입했고 배터리 수주잔액만 110조원에 이른다. 수년치 일감이 이미 확보된 상태라는 의미다.

전망은 밝지만 속 사정은 복잡하다. 빠르게 뒤를 쫓는 경쟁자 SK이노베이션(수주잔액 50조원)과 글로벌 시장에서 벌여온 수주경쟁이 법정으로까지 옮아갔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인력 유출을 통해 기술을 빼갔다며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 등에 제소하면서다. 정부가 양사 기술 증거 제출을 허가하면서 공이 미국으로 넘어간 상태다.

SK이노베이션과 폭스바겐, 미국 전기차 업체와 일본 배터리 업체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제조사 간 이합집산 속에서 톱 수준의 점유율을 어떻게 유지할지도 관건이다. LG화학은 그간 기술력을 앞세워 JV(조인트벤처) 설립을 거부하는 등 독자적 영업방식을 고수해 왔다. 위기감을 느낀 유럽 완성차업체들의 글로벌 협력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수주 경쟁력 유지를 위한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 간 갈등의 불씨도 있다. LG와 SK 양 그룹사 간 본격적인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게 재계의 시선이다. SK그룹은 이동통신과 반도체 산업에 힘입어 재계 순위에서 LG그룹을 제쳤다. 순위가 바뀌는 과정에서 대기업 간 충돌은 필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CJ헬로비전 인수를 놓고 벌어졌던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간 갈등도 그룹 간 충돌의 한 단면"이라며 "양사 간 추가적 갈등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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