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누릴 거 다 누리고… 대학 교수=왕?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김지성 인턴기자, 이해인 기자, 세종=문영재 기자, 최석환 기자, 기성훈 기자, 안정준 기자, 이태성 기자, 이원광 기자 2019.06.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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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특권층-교수]

편집자주 직위는 하나인데 하는 일이 수십가지인 직업군이 있다. 장관, 수석비서관, 사외이사, 각종 단체의 요직을 하다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는 대학 정교수다. 1년에 논문 1편 안써도 자리를 유지하고, 대학원생들에게 갑질하며 각종 혜택을 누리는 '한국 최고의 직업' 대학 교수 사회를 짚어봤다.

[MT리포트]사흘에 한번꼴로 교수갑질 제보…가장 많은 갑질은?
시민단체 대학원생119, 5개월 동안 접수된 갑질 사례 125건…전문가들 "교육당국 감독 강화해야"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집 이사나 짐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갑질'을 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라인'을 잘 타야 하는 한국 대학의 채용 시스템과, 한번 정교수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신분이 보장되는 한국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집 이사나 짐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갑질'을 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라인'을 잘 타야 하는 한국 대학의 채용 시스템과, 한번 정교수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신분이 보장되는 한국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


#1.대학원생 A씨는 매일 차를 끌고 지도교수 자녀의 유치원으로 간다. 지도교수가 자녀의 운전기사 역할을 요구한 탓이다. 가끔은 교수의 요구로 자녀의 숙제를 봐주기도 한다. 운전기사, 교사 업무를 해도 대가는 없다. A씨는 "무사히 졸업하려면 지도교수의 요구에 불만이 있더라도 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대학원생 B씨의 지도교수는 본인 명의의 인터넷 기사를 B씨에게 쓰라고 시켰다. 이사회에 제출할 본인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작성을 시키기도 했다. B씨는 "다음 수업 평가 때 영향이 있을 것 같은 어조로 부탁을 해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2~3일에 1번꼴로 지도교수 '갑질'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을 한 교수 10명 가운데 1명은 연구비와 학생 장학금을 가로챘다는 조사결과다. 학생들은 부당함을 알아도 논문 심사나 졸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교수나 학교 측에 문제제기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의 이 같은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정교수(Tenure: 종신재직권)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외국과 달리 최소 65세까지는 철저한 신분보장이 뒤따르는 '신의 직장'이기 때문이다.



6일 교수 갑질 근절을 위한 시민단체 '대학원생119'에 따르면 올해 1월7일부터 지난 5일까지 최근 5개월 동안 접수받은 '교수 갑질' 제보는 61차례, 125건에 달한다.

올해 1월7일 출범한 대학원생119는 교수의 갑질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시민단체다. 네이버 밴드를 통해 실명 가입신청을 받은 학생들에게 제보를 받는다. 이날 기준 대학원생119 밴드에 가입한 대학원생 수는 288명이다.

[MT리포트] 누릴 거 다 누리고… 대학 교수=왕?
유형별로 살펴보면 접수된 갑질 사례 중 연구비 횡령과 연구성과 가로채기, 금품요구 등 비위 문제가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연구비 횡령·페이백이 18건(14.4%)으로 가장 많았고, 연구부정·연구저작권강탈 13건(10.4%), 금품요구 7건(5.6%) 등이 뒤를 이었다.


페이백은 '랩장'이라고 불리는 연구실 반장이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통장과 비밀번호를 받아 장학금이나 인건비를 모은 뒤 교수에게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페이백을 당한 대학원생 C씨는 "연구실에서 국가기관이나 기업에서 발주한 연구에 참여하면 나오는 인건비는 다시 교수에게 돌아간다"며 "선배들이 다 이렇게 하고 졸업했다고 말하니까 어쩔 수 없이 통장과 비밀번호를 제출했다"고 하소연했다.

C씨는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오는 것이고, 연구가 학생 개인의 논문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기부 명목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라며 "쉽게 납득하기 힘든 관행이지만 졸업 때문에 참아야 했다"고 말했다.

금품이나 연구성과 갈취 외 직접 대학원생을 괴롭힌 사례도 있다. 괴롭힘 사례는 △폭언·폭행 16건 △논문투고 방해·졸업지연 15건 △(단순) 괴롭힘 9건 △성폭력·성희롱 7건 △업무배제 7건 △따돌림 4건 △지도교수 변경거부 3건 등으로 나타났다.

노동착취 역시 △무급노동 9건 △사적업무지시 7건 △일방적 해고 3건 △장시간근무 3건 △체불임금 2건 △최저임금 미달 2건 등 제보가 접수됐다.

대학원생119를 운영하는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학위를 받을 때까지 교수의 지도를 받아야하는 약점을 이용해 교수들이 왕처럼 군림한다"며 "갑질 대다수가 법적 입증이 어려워서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교수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없애기 위해선 교육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원생119 측은 "연구비 갈취, 자녀숙제 대필 등 교수 갑질이 최소 15년 이상 계속됐지만 학교와 당국은 이를 방치해왔다"며 "대학원생 신원을 보호하면서 익명 제보를 받고 기습 감사, 무기명 설문조사 등을 벌여 갑질·비위 문제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노무사도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관계를 잘 아는 교육당국이 나서서 학교에서 자정작용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대학교의 연구윤리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김지성 기자

[MT리포트]'연구비↑ 논문↓' 교수 1인당 연간논문 '0.92건'
연구비 늘어나는 데 논문 수는 제자리 걸음…'연구질 가늠' 레이던 랭킹도 추락세

[MT리포트] 누릴 거 다 누리고… 대학 교수=왕?
'대한민국 특권층'이라 불리는 대학 교수들. 그들의 '본업'인 연구 실적은 어떨까. 한국연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4년제 전임교원들의 논문 게재 건수는 수년째 평행선을 달리며 1년에 1건도 게재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술발표 실적은 지속적으로 하락, 0.079건에 머물렀다.

교수들이 학자의 본업인 연구나 발견과 멀어지면서 국내 대학 연구의 질도 추락하는 모양새다. 논문의 질을 기반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레이던 랭킹'(Leiden Ranking)에서 국내 대학들의 순위는 1년에도 수십 계단씩 떨어지고 있다.

6일 한국연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의 논문 게재건수는 6만8098건. 1인당 논문 수는 0.92건에 그쳤다. 1년에 1개의 논문도 게재하지 않는 셈이다.

4년제 대학 전임교원들의 논문 게재건수는 2013년 6만6912건에서 2015년 7만704건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인당 논문 수도 2013년 0.92건에서 2015년 0.96건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다시 감소하는 모습이다.

반면 최근 5년간 4년제 대학의 연구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 기준 연구비는 10조 2907억원. 2013년 대비 16.7% 늘어났다.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는 같은 기간 7001만원에서 8010만원으로 증가했다. 연구비 등 지원은 늘어났는데, 논문 건수는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저술발표 실적은 2017년 기준 1인당 0.079건으로 더 낮았다. 저술발표실적이란 전임교원이 학술적 가치가 있는 책의 저서와 역서 등의 저술 업적과 발표 실적 등을 종합한 수치다. 국내 교수들이 학자로서 연구나 새로운 발견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계를 이끌어가야 할 교수들이 학문과 멀어지면서 국내 대학의 연구 질도 떨어지는 모양새다. 논문의 수와 논문인용도의 비율을 따져 대학을 평가하는 네덜란드의 '레이던 랭킹'에서 2019년 '전체 논문 중 피인용 수 상위 10% 논문의 비율' 기준 100위권 안에 든 대학은 68위의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유일했다.

이마저도 지난해 대비 23계단 떨어진 순위다. 뒤이어 포항공대 287위, 한국과학기술원(KAIST) 350위 등이었다.

이해인 기자


전임 교수 초임 1억 대학교수 특전은?
대한민국 전임교수 그들은 누구

"정규직 교수는 사실상 '1인 기업 최고경영자'(CEO)입니다. 사회적 존경과 신뢰 등 무형의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안정적 보수, 고액의 연금 등은 덤이죠. 인사와 관련해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교육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교수가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엘리트층이나 오피니언 리더로도 불린다. 서울 주요대 전임교수의 경우 모두 정부부처 장·차관급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 이미 오래다. 실제로 새 정부가 들어서 조각을 하거나 임기 중 개각을 할 때 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입각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입각하지 않더라도 정치권 외곽의 정책자문 그룹에 포진해 있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학 전임교수는 누구

6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 4월1일 기준 국내 고등교육기관(대학)에 소속된 전임교수 모두 9만288명이다. 10년 전인 2008년(7만3072명)보다 23.6% 증가했다.

이 가운데 4년제 일반대학만 놓고 보면 2008년 전임교수가 5만4331명에서 2018년 6만6863명으로 23.1% 증가했다. 대학가에서는 현재 전임교수의 주류가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와 미국 유학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학교수는 크게 전임과 비전임으로 구분된다. 전임교수는 또 정교수와 부교수, 조교수로 나뉜다. 시간강사를 거쳐 조교수가 되면 뒤 5~6년 정도 지나 심사절차를 밟아 부교수 지위를 얻는다. 다시 5~6년 이후 심사를 통해 정교수 자리에 오른다.

전임교수는 정년과 비정년 트랙으로 나누기도 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정년 트랙은 임용 뒤 정년(만 65세) 때까지 신분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비정년 트랙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전임을 제외한 겸임·초빙교수, 시간강사가 모두 비전임 교수에 해당한다.

통상 대학교수는 조교수 이상 전임을 일컫는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거쳐 조교수 자리를 꿰차는데 10년 정도 걸린다. 교육계 관계자는 "시간강사로 3~4년을 일했을 경우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쯤 조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전임교수 특전은

[MT리포트] 누릴 거 다 누리고… 대학 교수=왕?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정년보장과 연금지급은 큰 이점이다. 국공립대 전임교수는 공무원과 유사한 성과급제연봉제가 적용된다. 전임교수 초임은 박사학위와 시간강사 경력을 환산해 봉급표상 최초 10~12호봉 기준으로 정근·명절수당 등을 포함해 월지급액이 정해진다.

금액 기준으로 월 350만~400만원선이라는 게 대학 내부 얘기다. 임용 2년 차부터는 기본연봉에 성과연봉(최고 420만원)과 봉급인상률이 반영돼 급여가 정해진다.

인사혁신처 봉급표에 따르면 국공립대 교수 10호봉 월지급액은 약 270만원이며 12호봉은 약 292만원이다. 이는 국공립 유치원·초중등 교사(10~12호봉) 월지급액 205만~216만원보다 많고 정부부처 5급사무관 4~6호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립대의 경우 전임교수 초임은 대학 정관(학칙)에 따르지만 국공립대 전임교수 봉급표를 참고하기 때문에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서울 소재 A대 등 일부 대학의 경우 전임교수 초임연봉이 1억~1억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도 만만찮다. 국공립대 교수는 일반공무원처럼 공무원연금 수혜 대상이고 사립대학 교수는 사학연금을 받는다. 연금이 고갈되면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에 따라 국가가 그 부족액을 채워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무원연금 수급자 49만5052명 가운데 12만3498명(25%)과 사학연금 수급자 7만9868명 가운데 3만8320명(48%)이 월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다"며 "월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 수급자가 한명도 없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 "학부생·대학원생에 영향력 막강"

전임교수의 특전은 또 있다. 방학과 6~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다. 안식년 주기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주당 수업시수도 많지 않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명시된 대학 교원의 주당 수업시수는 9시간이 원칙이다. 대학마다 다르지만 전임교수들에게는 연간 2000만원 안팎의 연구비가 지원되기도 한다.

전임교수 개인 역량에 따라 정부기관·민간기업과 교류를 통해 정책연구비를 따낼 수도 있다. 개인 연구실과 실험실 제공은 기본이다. 정당 가입도 자유롭고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성적·학위와 관련해 전임교수들은 대학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교육계에서는 전임교수들에 대한 과도한 자율성 보장과 정부·대학의 통제·간섭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각종 연구윤리 위반이나 비위가 발생하고 있다며 교수사회의 자정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들에 대한 적절한 제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노동력 착취, 막말과 성비위, 편파적인 성적과 장학금 부여를 통한 복종 강요 등 교수들의 갑질을 없애기 위해선 교수-제자 간 '도제 관계'를 끊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용석 한국사립대교수회연합회(사교련) 이사장(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은 "사회 지식인으로서 교수들 스스로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윤리를 자각해야 한다"며 "교육부도 이른바 메이저 대학들에 대한 상시 종합감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영재 기자

최고 부업 '사외이사'…4대그룹 장악한 교수들
상장사 267곳 32.8%, 20개 핵심 계열사 55.3% 차지…권력기관·법조 인사 부정적 시각에 선호 경향↑

사외이사 제도가 생긴 이래 교수 최고의 부업은 사외이사다. 겸직이 가능한 데다 1년에 몇 차례 열리지 않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대가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대 2개 기업에서 동시에 사외이사 직무 수행이 가능해 1억원이 넘는 부수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교수들의 사외이사 겸직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가공무원법 64조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5조는 공무원이 공무 이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사립학교법 55조는 국공립학교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었다. 자연스레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 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당시 수백 명의 교수들이 기업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에 일부 교수들은 사외이사에서 물러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며 법적으로 대학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이 가능해졌다. 다만 업체로부터 받은 보수 일체를 소속 학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법률을 근거로 현재 다수의 교수들이 사외이사로 진출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최고경영자)스코어’가 2018년 57개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 계열사 267곳 사외이사 859명의 출신 이력을 조사한 결과, 학계 출신은 282명(32.8%)에 달했다. 관료 출신 (37.4%)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MT리포트] 누릴 거 다 누리고… 대학 교수=왕?
또 본지가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의 20개 핵심 계열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올 1분기 분기보고서(지난 3월 말 기준)를 전수조사한 결과 각 사의 주주총회를 거쳐 선임한 사외이사는 총 94명이며, 이 중 현직 교수이거나 교수 출신은 52명(55.3%)에 달했다.

사외이사 비중이 가장 큰 그룹은 삼성이었다. 삼성전자 (75,500원 ▼600 -0.79%)·물산·SDI·SDS·바이오로직스 5개사의 사외이사 22명 중 무려 16명(72.7%)이 교수군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총 6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 중 4명을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와 김선옥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안규리 서울대 의대(신장내과) 교수 등으로 채웠다. 삼성물산도 사외이사 5명 중 4명이 교수였다.

LG그룹은 지주사인 ㈜LG를 포함해 LG전자 (92,800원 ▲800 +0.87%)·화학·디스플레이·유플러스 5개사의 사외이사 20명 중 12명(60.0%)이, SK그룹도 지주사 SK㈜를 비롯해 SK하이닉스 (171,000원 ▼600 -0.35%)·이노베이션·텔레콤·네트웍스 5개사의 사외이사 26명 중 14명(53.9%)이 교수군이었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현대차만 교수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절반 이하(38.5%)였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전면에 나서며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현대차는 사외이사 6명 중 1명(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만 교수로 앉혔다.

대신 국제금융계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으로 평가받는 윤치원 UBS 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세계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미국 캐피탈그룹에서 25년간 근무한 유진 오 전(前)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등 글로벌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사외이사진 5명 중 교수 출신이 2명인 현대모비스 (238,500원 ▼500 -0.21%)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미래차 부문 기술전략 분야와 투자 재무분야를 담당할 외국인 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눈길을 끌었다.

교수 출신 사외이사 가운데 삼성전자의 박재완 교수, 삼성물산의 권재철 수원대 고용서비대학원 석좌교수, LG전자의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김문수 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등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노동비서관, 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등 권력기관 고위 관료로 재직하다 학교로 옮긴 사례다.

교수가 사외이사로 인기가 높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외이사 본래 취지에 맞게 경영활동에서 전문성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영학과, 법학과 교수들이 사외이사에 다수 포진한 것은 이같은 이유다. 여기에 교수들이 정부 위원회나 학회 등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알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교수들의 전문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부 정책 변화나 규제 등에 대응하는 대관(對官) 업무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의 교수들이 장·차관 등 고위관료를 지내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자 윤리법 시행으로 전관들의 사외이사 진출이 어려워진 것도 교수 선호도를 높였다. 공직자 윤리법은 퇴직공직자의 경우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 사외이사로 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엔 권력기관 출신 인사나 전관예우 법조인 등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면서 교수 출신 사외이사에 대한 선호 경향이 더 강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교수의 사외이사 진출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우선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으로 인해 외부활동에 신경쓰면서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외이사 본연의 업무인 경영활동에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해당 기업 연구에 투자해야해 겸직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독립성 확보 역시 쉽지 않다. 사외이사로 있는 교수들이 대학과 기업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기업 입장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재선임될 때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독립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반대를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는 당시 "성균관대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산합협력단은 삼성그룹 소속 공익법인으로 분류된다"며 "삼성그룹과 성균관대학교는 특수관계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문 영역에 대한 식견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돕고, 투명한 이사회 운영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데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 기성훈 기자, 안정준 기자, 이태성 기자

[MT리포트]'폴리페서 방지법' 사각지대 놓인 장관들
교수, 국회의원 겸직 '제한'·국무위원 사실상 '허용'…'"정치적 발언' 꼬집는 인사청문회 반복"

지난해 10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환경노동위원회의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파행되자 바른미래당 김동철, 자유한국당 이장우 등 야당 위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이날 인사청문회는 조 후보자의 자료 미제출 건으로 김학용 위원장과 야당 위원들의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한채 정회됐다. / 사진=이동훈 기자지난해 10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환경노동위원회의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파행되자 바른미래당 김동철, 자유한국당 이장우 등 야당 위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이날 인사청문회는 조 후보자의 자료 미제출 건으로 김학용 위원장과 야당 위원들의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한채 정회됐다. / 사진=이동훈 기자
국회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폴리페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국회의원의 교수 겸직을 원천 제한했다. 법까지 뜯어고쳤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불씨는 교수직을 휴직 상태로 유지하는 국무위원들에게 옮겨 붙었다. 여야는 국무위원의 과거 정치적 행보를 두고 각각 ‘표현의 자유’, ‘정치 중립성 위반’이라며 소모적 논쟁을 반복한다.

국회법 제 29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원칙적으로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국무위원 △공익 목적의 명예직 △다른 법에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 △정당직 등은 예외다. 여·야가 2013년 7월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국회의장이 의원들의 겸직 내용을 국회 공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겸직에 따른 보수 수령은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이에 국회 입성에 도전하는 교수들은 임기개시일 전까지 교수직을 내려놔야 한다.

이같은 법 개정은 정치쇄신을 요구하는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추진됐다. 당시 여야는 별도 금지 규정 없이 의원의 겸직이 포괄적으로 허용되면서 과도한 특혜로 비춰진다고 입을 모았다. 법 개정으로,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정치에 헌신하려는 교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평이 나왔다.

실제 20대 총선 당시 정치에 도전하는 교수들은 줄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4개 정당이 공천한 후보(비례대표 포함)들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국회의원과 법조인,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을 제외한 '정치신인' 교수는 총 58명으로 집계됐다. 주요 4개 정당 후보의 7.1%에 해당하는 것으로 19대 총선 대비 1.3% 포인트(p) 감소했다.

폴리페서의 국회 입성 제한을 강화하는 정치권의 노력은 이어졌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대학 총장과 학장, 교수, 부교수 등이 공직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 90일 전 사퇴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제는 교수 출신 국무위원이다. 현행 교육공무원법 44조는 교수들이 공무원으로 임용되면 교직을 휴직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겸직을 허용한다. 이 기간 학문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학생들의 수업권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7년 7월 교수가 국무위원 등 정무직공무원으로 임용될 경우 휴직을 금지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해당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갈등이 반복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야당 의원들은 교수 출신 국무위원들이 다시 강단에 설 경우를 고려해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강도 높은 공세를 이어간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과도한 '재갈물리기'라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임이자 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당시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SNS에 2012년 민주당 대선자문위원을 맡았다고 본인이 썼고, 이해찬 의원 선대본부도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후보자가 (박원순) 지지 참여 없다고 했는데 지지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며 "박 시장의 조직인 희망새물결 상임위원도 했는데 지지한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선거 기간 관계없는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자기 의사표명은 가능하다"며 "공직선거 기간 중 정치적 중립은 엄격하게 관리된다"고 말했다. 이어 "(물어서) 의사표현을 한 것이 '왜 했냐'고 돌아온다고 하면 표현의 자유, 학문과 관련된 것을 표현 못하게 하는 재갈물리기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원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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