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최고 부업 '사외이사'…4대그룹 장악한 교수들

머니투데이 최석환 기자, 기성훈 기자, 안정준 기자, 이태성 기자 2019.06.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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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특권층, 교수]상장사 267곳 32.8%, 20개 핵심 계열사 55.3% 차지…권력기관·법조 인사 부정적 시각에 선호 경향↑

편집자주 직위는 하나인데 하는 일이 수십가지인 직업군이 있다. 장관, 수석비서관, 사외이사, 각종 단체의 요직을 하다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는 대학 정교수다. 10년에 논문 1편 안써도 자리를 유지하고, 대학원생들에게 갑질하며 각종 혜택을 누리는 '한국 최고의 직업' 대학 교수 사회를 짚어봤다.

사외이사 제도가 생긴 이래 교수 최고의 부업은 사외이사다. 겸직이 가능한 데다 1년에 몇 차례 열리지 않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대가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대 2개 기업에서 동시에 사외이사 직무 수행이 가능해 1억원이 넘는 부수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교수들의 사외이사 겸직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가공무원법 64조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5조는 공무원이 공무 이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사립학교법 55조는 국공립학교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었다. 자연스레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 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당시 수백 명의 교수들이 기업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에 일부 교수들은 사외이사에서 물러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며 법적으로 대학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이 가능해졌다. 다만 업체로부터 받은 보수 일체를 소속 학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법률을 근거로 현재 다수의 교수들이 사외이사로 진출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최고경영자)스코어’가 2018년 57개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 계열사 267곳 사외이사 859명의 출신 이력을 조사한 결과, 학계 출신은 282명(32.8%)에 달했다. 관료 출신 (37.4%)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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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본지가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의 20개 핵심 계열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올 1분기 분기보고서(지난 3월 말 기준)를 전수조사한 결과 각 사의 주주총회를 거쳐 선임한 사외이사는 총 94명이며, 이 중 현직 교수이거나 교수 출신은 52명(55.3%)에 달했다.

사외이사 비중이 가장 큰 그룹은 삼성이었다. 삼성전자 (76,300원 ▼2,300 -2.93%)·물산·SDI·SDS·바이오로직스 5개사의 사외이사 22명 중 무려 16명(72.7%)이 교수군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총 6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 중 4명을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와 김선옥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안규리 서울대 의대(신장내과) 교수 등으로 채웠다. 삼성물산도 사외이사 5명 중 4명이 교수였다.

LG그룹은 지주사인 ㈜LG를 포함해 LG전자 (90,600원 ▼1,600 -1.74%)·화학·디스플레이·유플러스 5개사의 사외이사 20명 중 12명(60.0%)이, SK그룹도 지주사 SK㈜를 비롯해 SK하이닉스 (170,600원 ▼9,200 -5.12%)·이노베이션·텔레콤·네트웍스 5개사의 사외이사 26명 중 14명(53.9%)이 교수군이었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현대차만 교수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절반 이하(38.5%)였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전면에 나서며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현대차는 사외이사 6명 중 1명(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만 교수로 앉혔다.

대신 국제금융계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으로 평가받는 윤치원 UBS 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세계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미국 캐피탈그룹에서 25년간 근무한 유진 오 전(前)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등 글로벌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사외이사진 5명 중 교수 출신이 2명인 현대모비스 (244,000원 ▲500 +0.21%)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미래차 부문 기술전략 분야와 투자 재무분야를 담당할 외국인 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눈길을 끌었다.

교수 출신 사외이사 가운데 삼성전자의 박재완 교수, 삼성물산의 권재철 수원대 고용서비대학원 석좌교수, LG전자의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김문수 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등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노동비서관, 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등 권력기관 고위 관료로 재직하다 학교로 옮긴 사례다.

교수가 사외이사로 인기가 높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외이사 본래 취지에 맞게 경영활동에서 전문성있는 조언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영학과, 법학과 교수들이 사외이사에 다수 포진한 것은 이같은 이유다. 여기에 교수들이 정부 위원회나 학회 등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알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교수들의 전문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부 정책 변화나 규제 등에 대응하는 대관(對官) 업무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의 교수들이 장·차관 등 고위관료를 지내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자 윤리법 시행으로 전관들의 사외이사 진출이 어려워진 것도 교수 선호도를 높였다. 공직자 윤리법은 퇴직공직자의 경우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 사외이사로 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엔 권력기관 출신 인사나 전관예우 법조인 등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면서 교수 출신 사외이사에 대한 선호 경향이 더 강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교수의 사외이사 진출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우선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으로 인해 외부활동에 신경쓰면서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외이사 본연의 업무인 경영활동에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해당 기업 연구에 투자해야해 겸직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독립성 확보 역시 쉽지 않다. 사외이사로 있는 교수들이 대학과 기업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기업 입장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재선임될 때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독립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반대를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는 당시 "성균관대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산합협력단은 삼성그룹 소속 공익법인으로 분류된다"며 "삼성그룹과 성균관대학교는 특수관계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문 영역에 대한 식견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돕고, 투명한 이사회 운영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데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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